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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한줄도 너무 길다.' 이후로 오랜만에 읽어보는 류시화님의 책이다. 어린시절에 류시화님의 인도 여행기를 읽고 한때 나도 인도에 대해 환상을 가득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이 책에서도 류시화님은 인도 사상과 철학, 그리고 오랜 인도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많은 얘깃거리들을 흥미롭게 소개해주고 있는데, 나는 인도의 잔인한 현실을 알게된 후 부터 인도에 대한 환상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고유 문화와 명상, 철학, 깨달음 등등 많은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엿볼수 있었다. 류시화님의 오랜 여행 경험과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엮은 그의 에세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어쩌다보니 내가 이 책을 두번, 세번에 걸쳐 나눠읽게 되었는데 처음에 읽을 때는 속도감 있게 책 전체를 빠르게 훑어 읽었고 두번째 , 세번째 읽을때는 한 챕터 한 챕터 짧은 이야기들을 곱씹으면서 아주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전에 또 한번 책을 음미하며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신념과 정의에 대해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부딪힐 때 그럴 때도 이 책에서 류시화님이 전하는 주옥같은 얘기들을 다시금 꺼내어 회상해봐야지. 라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그런 책. 그 만큼 이 책에서 류시화님이 전하는 얘기들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력을 제시하면서 우리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만한 '삶의 철학'들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전달 해준다. 그런 점에서 언제고 또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싶을 때마다 다시금 펼쳐 읽으면서 맘속에 되새기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숫자에 포함시킬수 없는 사람 _ 나와 너>
"독일의 사상가 마르틴 부버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라고 썼다.
부버는 인간이 맺는 두 종류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관계이다."
인간이 맺는 관계의 두 종류 나-너, 나-그것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고 싶은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나 뿐만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언제나 맘속에 타인과 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고 그것에 대해 정의 내리고 어디까지가 얼마나 진심의 관계인지를 마치 늘 점검하는 것 같다. 특히나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면서도 오히려 고독함, 외로움 따위의 감정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흔하게 널리고 널렸다. 중요한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게 소통하느냐 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고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하더라도 내 마음을 온전히 털어놓을 그릇 하나가 없다면 결국 군중속에서도 나홀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거다.
나-너, 나-그것.
'나-너'가 순수한 존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진짜 관계라면 '나-그것'은 존재의 가치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기능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것이라고 했다. 즉 얼마든지 내가 아니어도 비슷한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그런 흔한 자리. 그게 '나-그것'의 관계다. 공적인 상황에서 맺어지는 나-그것의 관계는 어쩔수 없이 당연한 것이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 내 연인, 가족, 친구들까지 나-그것의 관점으로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 얼마나 외롭고 공허한 일일까. 그럼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소중한 사람들을 수시로 '나-그것'의 잣대로 평가하고 매기는데에 익숙해져 간다. 스스로 고독한 관계를 맺어가면서 너무 외롭다고들 호소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나-그것'의 관계는 상상만해도 공기가 얼음장 같이 차갑다. 아니,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 마치 서로 완벽한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또 다른 예로, 내가 상대방을 '나-너'의 존재로 대했으나 상대방은 나를 '나-그것'으로써 대해왔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 때 느끼는 상처와 상실감도 우리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겨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또 상대방에게 주기도 한다. 관계는 상황에 따라 '나-너'로 정의 할 때가 있고 '나-그것'이어야할 때를 구분지어야 하지만 내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건 '나-너'로 유지되어야 하는 깊숙하고도 사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다.
나 역시도 '나-너' , '나-그것' 이 두가지 사이에서 미친듯이 혼란을 겪으며 왔다갔다 하는 사람, 아예 둘 중 하나에만 꽂혀 거기에 모든 의미를 다 쏟아붓는 사람 등등 여러가지들을 보았고 경험했다. '나-너'의 관계는 그야말로 아주 이상적이면서 따뜻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그것'의 관계에 모든걸 쏟아붓는 사람을 상상하면 마치 허울 좋은 껍데기들을 열심히 쓸어모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그들은 외로움을 끊지 못한다. 당연히 그건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나-그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만큼이나 안타까운 건, '나-너'와 '나-그것'의 관계 사이에서 줏대없이 왔다갔다 자기 자신을 계속 시험에 빠뜨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을 보고있노라면 나 마저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 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들은 자주 횡설수설하며 하는 말마다 일관되지 못하고 관계에 대한 평가도 언제나 늘 극단적이고 심지어 수시로 바뀌기까지 한다. 어떤날은 나를 최고로 칭찬해주지만 어떤날은 나를 최악의 인간으로 평가매기는 것 처럼. 그것은 나를 보는 평가 기준을 '나-너'로 보았다가 다시 어느날은 '나-그것'으로 보았다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수시로 관점을 달리하여 계속 평가 매긴다면 그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일까. 그렇게 언제든지 뒤집어 질 수 있는 종잇장 같은 관계를 가면을 쓰고 유지해 나간다는게 얼마나 큰 에너지 소모이며 낭비인지. 결국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 되어 스스로에게 비수 꽂는 일이 될거라는 걸,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내가 자초한 일이란걸 알아야만 할 것이다.
나-너, 나-그것의 관계에 대해 읽으면서 너무 많은 슬픈 인연과 이별과 관계들이 떠올랐다. 내가 진심이더라도 상대방은 내게 그렇지 않은 관계들은 살아가면서 언제가 또 다시 겪을 수 있도 있다. 아마 내 마음대로 그것들을 미리 알아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느날 그 실체를 깨달았을 때 혹시라도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나-너'라는 순수한 마음이 너무 아깝고 가슴이 아프다는 이유로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해선 안될 것이다. 냉정하게 그들을 끊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살면서 계속 수많은 관계를 맺고 이별을 겪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를 '나-그것'의 관계로써 대하며 상처를 준 사람들을 끊어내는 일에 계속 맘 아파 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이별에 담담해지고 끊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참다운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나가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 물론 그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닭이 몇 마리인가_생명들에 값하는 삶>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닭과 소와 돼지를 먹는가? 매일 얼마나 많은 순수한 생명들을!
그 목숨에 값하는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것만큼 중요한 명상은 없다."
마치 이 글을 쓰면 내가 당장이라도 채식주의를 선언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 나로써는 종종 육식을 하는 것,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한 고찰에 불현듯 빠지곤 하는데 그럴때 마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가치관에 따른 자유 선택이라는 결론을 늘 내린다. 그치만 또 다시 '정말 채식이라도 해야되는걸까'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 바로 유튜브로 야생동물 구조 관련 컨텐츠를 보거나 아니면 반려동물로써 강아지, 고양이가 아닌 오리, 돼지와 같은 동물을 키우는 유튜버 영상을 볼 때도 그렇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잠시 뿐,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언제나 '고기는 사랑입니다.'와 같은 얘길 하게 된다는게 꽤나 나 자신이 이중적이게 느껴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야생동물 영상같은걸 보면서 공감이나 하지나 말던가)
그런 와중에 닭이 몇 마리인가. 라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읽게 되었는데 통합의학 선구자라는 의사 레이첼 나오미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든여덟살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겪은 이야기다. 레이첼은 어머니에게 아침마다 15분씩 함께 명상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고 레이첼도 옆에 앉아 명상을 함께 했다. 그러고 한참 후 눈을 뜬 어머니가 레이첼을 바라보자 레이첼은 어머니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닭을 세고 있었지." 라고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명상을 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소 실망하고 당황한 레이첼에게 어머니가 이렇게 다시 말한다. 저녁 식사 때 닭고기를 먹고나서, 불현듯 평생 동안 매주 한번이나 두번은 닭고기를 먹었다는 생각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머리로 계산하기 시작했고 두마리의 닭을 52주에 84년을 곱하니 8천 마리가 넘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그 많은 순수한 생명들을!"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이 그 많은 동물들의 희생의 가치가 있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때때로 남에게 아픔을 준 적은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한 적은 없으며, 누군가에게 거짓말이나 비난을 한 적도 없음을 알아냈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인생은 그 닭들의 희생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어머니는 대답했다고 한다.
"매일 얼마나 많은 순수한 생명들을!"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기를 원하고 행복을 갈망하는 생명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그 삶을 잘 사는 것 만이 그 생명들에게 값하는 길이다."
"그들이 어느날 꿈속에서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수많은 희생에 값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채식과 육식에 대한 생각과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에 대해 조금 도움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채식을 선택하든 육식을 선택하든 가치관에 따라 판단 할 일이며 뭘 선택해도 틀린건 없지만, 채식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순수한 생명들의 희생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희생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인간으로써 그 희생에 헛되지 않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책임감을 갖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채식주의를 한다는게 그냥 풀만 뜯어먹는 간단한 일인것 같지만 영양소 불균형을 맞춰줘야 되기 때문에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까다롭다. 그리고 알다시피 인스턴트나 가공식품에 육류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거의 없고 라면스프만 해도 이미 육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쩌면 가난한 사람이 채식주의를 하겠다는 것은 굶어 죽겠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의 경우엔 오히려 채식을 하거나 healthy food를 지향하는 경우 대부분 상류층인 경우가 많고 그 외 서민들은 맥도날드에서 저렴한 값의 햄버거를 사먹거나 하는것이 일상인 것이다. 우리도 편의점에서 간단한 컵라면 한끼 떼우는게 가장 저렴한 한끼 식사이듯이 말이다.
어쨌든 채식을 한다는것은 정말 만만치 않는 부분이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더욱 '회식'문화를 생각해보면 나 홀로 '채식주의'를 선언하면서 매번 고깃집 회식 자리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 지인, 친구들과 만날때도 식당을 찾을 때 마다 채식 레스토랑 찾아야 하거나 혹은 일반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주문하면서도 '육류'를 빼줄것을 당부하는 것 등등. 채식주의가 한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이렇듯 막대한 수준인데 희생되는 동물들이 그저 '불쌍해서, 가엾어서.' 라는 공감대 만으로 채식주의를 선언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았다. 특히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면 더욱이 채식주의 생활은 불가능 하다고 본다. (산속에서 자급자족을 하는 인간이 아니고서야) 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순간의 감정으로 책임지지도 못 할 '우발적인' 채식주의 선언을 한다거나 채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과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육식주의자 라는게 외람되고 이상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들의 희생의 값어치 만큼 나는 가치 있는 삶을 나는 살고있는가"를 질문 한다는것이, 채식과 육식을 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많은 생명체들의 희생을 존중함에 있어서 충분한 명상의 가치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다면, 건강을 해칠 수준으로 과도하게 육식을 섭취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채식주의자가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 건강을 해칠 수준의 불필요한 육류 섭취는 피할 수 있는 것. 바로 '채식지향'이 어느정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외에도, 책의 제목처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 '두번째 화살' 등등 마음속에 깊이 와닿는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배울 수 있는 책이었고 내 삶에서 명상의 시간이 필요할 때, 고독의 시간이 필요 할 때, 또 다시 내가 방향성을 잃었다고 생각 될 때마다 이 책을 집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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