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난하고 절박한 순간에 되려 멍청한 짓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서 멍청한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고 했다.

 

 

실제로 하버드에서 연구해본 바 있는 논문 이라고 한다.

사람이 여유가 없고 절박한 순간에 일시적으로 아이큐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력이 흐려져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결국 멍청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전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그것이 쌓여서

결국 인생 전체가 암울한 그림자에 드리우게 되는 지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저 말을 "연애의 참견"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너튜브로 다시보기 하면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논문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나로써는 매우 크게 공감이 갔다.

 

 

내 얘긴가? 그래서 내가 멍청하게살아온건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혹시, 똥인지 된장인지 지금도 꼭 찍어 먹어봐야만 알고 왠지 나는 옛날에 저질렀던 실수를

지금도 반복하고 후회했던 결정이나 실수들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은 오랜시간동안 절박하고 척박한 환경속에서 문제 해결 방법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져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그랬던 적이 매우 많다.

'무기력'과 '우울'은 늘 내 옆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부정적 경험은 또 부정을 낳고, 트라우마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만들기에.

병이 또 병을 낳는것 처럼. 

 

그러나 실제로도 아이큐가 떨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꽤 놀랍다.

머리가 정말로 멍청해지는거였구나.

 

 

 

 

 

 

 

코미디, 뮤지컬 2007.04.12. 개봉 129분 일본 15세 관람가

감독나카시마 테츠야관객수23,546명수상정보

11회 판타지아 영화제(슈발누아경쟁 - 최고 작품상)1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여우주연상)

3회 독일 아시아 영화제(인기상영작)펼쳐보기

내용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카가와 ... 줄거리더보기

 

 

가난과 절박함은 애정결핍과도 커다란 관련성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 전체를 우울함의 구더기로 빠뜨린 영화 속 캐릭터 마츠코가 문득 생각이 났다.

바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이라는 일본영화였는데 그 주인공이야 말로 절박한 순간마다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송두리째 갉아먹어버린, 극단적이긴 하지만

인간은 "가난하고 절박한 순간에 되려 멍청한 짓을 한다" 라는 말의 적절한 예시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순간의 충격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한 인간의 끝도 없는 불행과 우울함의 정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일본 영화 중 내가 본 최고의 비급 정서 무비. 그러나 전혀 비급이 아닌 마츠코의 삶의 이야기.

 

"그렇게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질기도록 끝나지 않는 마츠코의 인생.

 

사실 맨 처음에 보았을때는 정말로 가장 혐오스런 영화라고 생각했고

두번째로 보았을때는 너무나 슬프기 그지없었다.

정말 최악으로 치닫는 그녀의 일생을 아무렇지 않은듯 코믹한 연출로 그려나가는 이 영화가

굉장히 기괴하게 느껴져, 처음 감상했을 땐 일본의 전형적인 B급 병맛 코믹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두번째로 다시 본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슬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희화하고 있었다.

아마 이 영화가 쉽게 와닿을수 없었던건 같은 인간으로써 그녀를 동정하고 연민하기엔 그녀의 삶이 너무나 파격적이었고

어쩌면 너무 열심히 인생을 살다간 그녀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매우 불편했던게 아닐까 싶다.

다시 본 이 영화에서 마츠코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며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사랑스러웠고 열정적이면서 아름다운,

그리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여자였다.

 

 

 

 

 

 

그 영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앞서 말한대로 전형적인 "불행이 불행을 낳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의 불행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관심받지 못한 애정결핍으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그작은 결핍이 나아가서는 어느새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버릴 정도의 큰 괴물이 되어 버린다.

 

 

 

 

 

 

 

 

 

포스터에 보이는것 처럼 그녀는 일생동안 여러 남자를 만나고 여러 직업을 가진다.

교사로 시작했던 그녀의 인생이 어느순간 성매매 업소까지 전전하면서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안타깝고 그녀가 가엽게 느껴졌던 부분은 그녀는 여러 남자를 사귀면서 늘상 똑같이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거나 버림받기를 반복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 받는것 보다 맞고서라도 함께 살아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사랑에도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그 데이트 폭력의 대상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내내 얽메이며 집착하는 부분이다.

 

마츠코가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이 애정결핍이 되어 결국 그녀 인생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까지의

처절한 과정들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Happy wedesday 노래를 부르는 마츠코

 

 

 

마츠코의 순수한 마음, 끊임없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밝아지고 행복해 하던 마츠코, 어떤 일을 하든 늘 열정적이었던 그녀. 

이 모든 모습에서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고 동시에 사랑에 모든것에 올인하는

그녀의 열정과 순수함이 아깝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앞서 멍청한 선택을 늘 반복하는 이유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츠코가 생각이 나서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그녀를 멍청한 선택으로 자기 인생을 망쳐버린 여자라고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진 않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어느 한켠에 자기 자신만이 아는

깊은 결핍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 연속된 선택은 결국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쳐 버리기 때문에...

그 과정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로 '마츠코'라는 영화속 캐릭터가 생각이 난거였지만

그냥 멍청한 선택으로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망쳐버렸다. 라고 하기에

그녀는 그저 너무 순수했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녀는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되려 밝은 웃음과 신나고 통통 튀는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좌절스러운 상황들을 매우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마츠코는 어째서 왜 건강한 사랑을 단 한번도 찾을 수가 없었을까?

원래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고도 했지만 가족도 친구도 등진채 살아가던 마츠코의 존재는

'외로움' 그 자체였다. 아버지로부터 생성된 애정결핍이 마츠코의 마음속엔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었고 

그것을 채우는 그녀만의 방법은 너무 혹독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애정에 대한 그리움이나 결핍의 감정을 강하게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무모한 행동과 순간순간의 처치들이, 그저 비정상적이다고 손가락질 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순수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마츠코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녀가 저렇게까지 지독하게 외로워야하는 이유가 뭐지?

 

 

 

 

 

 

 

 

 

스스로의 결핍을 타인에게서 찾는 사랑은 어찌됐든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한다.

마츠코가 건강한 사랑을 영원히 하지 못했던 첫번째 이유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낮은 자존감과 스스로를 아끼는 방법을 몰랐던 마츠코.

그렇지만 나는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했던 마츠코에게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도않다.

그녀는 자유로웠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들을 바꿔놓을 만큼 '사랑'이란 가치가 그녀에게는 절대적이고

커다란 영향력을 쥔 무언가였다면 누가 그녀에게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늘 착하고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시련일수 밖에 없는걸까?

어쨌든 연속된 좌절의 시간속에서 똑부러지게 이성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랜 좌절과 시련은 사람을 한순간에 멍청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사실 인 것 같다.

과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증명된 바 있다는게 참 흥미로운 사실이면서도

우리가 어려운 순간에 되려 이성적이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랄까.

 

멍청한 선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그 우울의 굴레에 영원히 빠져 버리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결핍의 구멍을 채우는건 누구에게든 참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이용하려드는 악한 사람들은 늘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에.

최소한 그로부터는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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