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게 너무나 낯익은 책이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시집부문에서 워낙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책이기도하고 직간접적으로 이 책을 종종 접해왔었기에 사실은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한번도 펼쳐본적이 없었다. 그동안 소설책이나 수필집은 종종 사면서도 시집을 돈 주고 사봐야지 라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 근래 어느날 서점에서 문득 이 책을 또 발견하게됐고 드디어 처음으로 이 책을 펼쳐 읽어보게 되었는데, 나는 여지껏 이 시집이 '류시화'님의 직접 쓴 창작시인줄로 당연히 알고 지내왔건만, 사실은 이름 모를 시인, 예술가, 철학가 등등 혹은 평범한 대학생까지 작가를 알 수 없는, '작자미상'의 아름다운 글들을 하나로 모아둔 시집이었다는 점. (나혼자 엄청난 뒷북)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지칭하지 않는 사람들의 창작을 가끔 더 아름답고 고귀하게 여길때가 있다. '예술' 이라는 것의 진정한 가치는 말 그대로 진실됨과 진정성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가 아닌 창작자들의 작품이야 말로 사실은 가장 순수함에 가까운 예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이름 모를 누군가들의 잠언 시집이라는 부분이 어쩌면 내 마음을 더욱 심쿵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구절들은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 아예 눈물이 흘러내리기도하며, 아 이제 시집을 읽으면 눈물이 흐르는 나이가 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최근에 겪었던 크고 작은 여러가지 힘들었던 일들로 인해서 감수성이 많이 예민하고 야들야들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쨌거나 나는 올해 연말 꽤나 뒤숭숭했던 마음들을 그나마 이 책을 통해서 위로받고 조금이나마, 아니 잠시나마라도 평온을 찾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 받아 올 수 있었는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해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냥 그럴싸하게 써내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한철 훅 타오르다 사라지는 유행 가사들 따위가 아니라,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또 20년, 30년이 지나서도 다시금 이 책을 들여다본다면 그때는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오겠지. 혹은 그게 아닐지라도 마치 심신이완제처럼 각박한 현실에 치이고 다칠 때, 마치 긴급하게 내 마음에 수혈이 필요하다 싶을 때, 왠지 그럴때마다 꼭 한번씩 펼쳐보고 싶은, 인생 '잠언집'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한 자 한 자가 소중한 귀한 많은 잠언 시들 중에서도 내가 특히나 감동 받았던 시가 몇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를 아래에 가져왔다.
'짧은 기간 동안 살아야 한다면'
만일 단지 짧은 기간 동안 살아야 한다면
이 생에서 내가 사랑한 모든 사람들을 찾아보리라.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확실히 말하리라.
덜 후회하고 더 행동하리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두 불러 봐야지.
아, 나는 춤을 추리라.
나는 밤새도록 춤을 추리라.
하늘을 많이 바라보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리라.
밤에는 달과 별을 많이 쳐다보리라.
그 다음에는
옷, 책, 물건, 내가 가진 사소한 모든 것들에 작별을 해야겠지.
그리고 나는 삶에 커다란 선물을 준 대자연에게 감사하리라.
그의 품속에 잠들며.
작자미상(여대생)
'대자연에 감사하리라' , '그의 품속에 잠들며' 에서 거의 이 시가 전달하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얼핏 화자는 삶을 매우 허심탄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얼마나 삶을 감사히 생각하고 지극히 애정하고 있는지를. 그 마음이 깊숙히 느껴져서 나 또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은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내게도 주어진 시간과 삶을,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 이름모를 작가의 아름다운 글을 통해서 많은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건 영원하지않고, 모든건 결국 지나가리라. 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면서 결국 지금 내가 가장 크게 고통받는 있는 부분들 또한 그저 '별 것 아닌 것'이 되버리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요즘 시시콜콜하게 유튜브에서 우연히 명상 영상을 본 적 있는데, 그 중에서도 '죽음명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있다. 뭐 대단히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자기전에 침대에 가볍게 누워서 귀에 버즈를 끼고 가만히 죽음명상에서 흘러나오는 나래이션에 집중하는 것인데, 그 명상의 목적은 아마도 당장 내일 내가 죽는다는 상상을 했을 때 지금 내게 닥친 시련과 혹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 나를 분노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고 사소한것에 불과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 뭔가 초월적으로 상상을 하게 함으로써 현재의 나의 고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마치 그런 것 처럼 '짧은 시간 동안 살아야 한다면' 이라는 시가 내게 전달해준 이미지도 바로 이 '죽음명상'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죽음명상이 좀 더 초월적이고 마치 해탈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시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좀 더 인생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엔 정말로 미련도 후회도 없이 엄마처럼 포근한 자연속에서 생긋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이미지들이 그려졌다. 그래서 눈물이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너무 아름답다고 여겨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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