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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이야기/예술_전시_공연

DRIFTING IN THE BALCHIC SEA - 전포 ‘별일’ 갤러리/부산전시/미술전시

by Fancy_sailor 2022. 10. 1.

 

 

 

 

 


여행이나 휴식 따위의 것과 비교되지 않는 새로운 환기 방법을 제안한다. 세 명의 작가는 당신을 평화로운 일상으로부터 강하게 나꿔챈 장대비이자, 폭풍우다. 우리는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이 전시를 디자인하였는데, 발칙하게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는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도록 전시를 기획했다. 당신은 목적으로부터 멀어질 때 불안을 느낀다. 이루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멀어진 일이 중요한 일 일수록 불안은 더욱 커진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쓸모없는 정보들로 가득한 이 전시를 감상하는 시간 동안 그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더 큰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전시는 그대를 위해 휴식과 감상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 전시를 보는 것에 드는 에너지는 이 전시를 탈출하는 것에만 쓰이길 바라며, 아무 짝에 쓸모없는 정보들은 그대에게 견딜만한 스트레스를 선물하길 원한다. 폭풍우를 만난 배처럼 예기치 못한 전시를 만나 전시장에 어쩔 수 없이 표류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당신은 항해 중 표류했다. 작품을 보기 전에 당신의 캘린더를 보길 바란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당신의 목표를 끊임없이 떠올리길 바란다. 당신은 이곳에서 끊임없이 원하지 않는 무언인가를 끊임없이 알게 되지만 당신에게는 감상할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며 쓸모없는 것을 긍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 전시에 대한 호기심보다 쓸모없는 감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크길 바란다.

결국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과 목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길 바란다.

지금 발전이 멈춰있는 당신이 불안과 평안 중 무엇을 느끼는지 감각하고 전시장을 나가길 원한다.

 

 


 

 

 

8월에 관람하고 온 전시 리뷰를 뒤늦게 작성해보고자 한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한 작가님의 초대를 받아 찾아가게 되었는데 장소는 전포동에 위치한 ‘별일’이라는 작은 갤러리이다. 이곳에서 진행했던 전시 제목은 “Drifting in the balchic sea”이다. “발칙해로 표류하다, 떠다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표류’라는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전시다. 전시 팜플렛을 보면 독특한 표류수칙이 몇가지 적혀있다. 그 첫번째, 표류자라는 것을 잊지 말 것. (전시장을 나갈 때 까지) 두번째, 작품을 보기 전에 내 할일을 상기 할 것. 세번째, 작품이 쓸 데 없다고 느낄 것. 네번째, 전시장에서 작은 휴식도 갖지 말 것. 다섯번째, 작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지 말 것. 이라는 총 다섯가지의 수칙이 적혀있다. 이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부디 이 조항을 염두하며 관람을 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번째, 다섯번째 조항 때문에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이 수칙을 실패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특히 다섯번째 조항은 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조건이 아닌가. 아무튼 팜플렛부터 발칙하기 그지없는, 도대체 이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표류’가 무엇일까 상상하며 이 난파호에 발을 딛어보았다.

 

 

 

 

 

전시에서는 '표류'를 마치 조금은 불안한 휴식과도 같이 묘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시를 보고있는 이 시간만큼은 그다지 목적성이 없는, 말 그대로 별 생각 없는, 별 의미없는 행동들을 관람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이리저리 경쟁에 치이며 숨 쉴 틈 없을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한번쯤 바다 위에 둥둥 표류하는 목적지 잃은 난파선 마냥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보자 라는 것이 이 전시의 궁극적인 목표였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표류라는것은 내게는 휴식의 의미보다는 '고립'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목적지가 있지만 잠시 쉬어가는 것과 아예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정체된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정말로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휴식의 시간으로 절대로 여기지 못할 것이고, 그 말은 즉슨 진정으로 하루하루 인생을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이 전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표류=휴식' 이라는 의미가 비로소 성립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연 이 난파호에 발을 딛어 잠깐이라도 의도적인 표류를 즐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비슷한 예로 옛날에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2008년도 쯤 이제 막 장기하와 아이들이라는 인디밴드가 '싸구려커피' 라는 곡으로 급부상 할때였다. 이 노래의 가삿말중에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라는, 누가봐도 평범한것 보다는 조금은 궁핍한 처지가 연상되는 노래가삿말이 있는데 누군가 이 노래를 듣고 이런 평을 했더랬다. 장기하가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의 이미지를 미학적이고 위트있는 가삿말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사실 가난과 전혀 무관하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인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아주  설명해주는 적절한 예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즉 인생에서 의도적인 표류의 시간 (쓸모없는 시간)을 가져보자 라고 말하는 시도가 사실은 정말로 목적지를 잃은 채로 표류해 본 적이 없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바쁜 인생을 살아가는 작가들이 모여서 이 전시를 기획 하였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로우면서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닌가 라는 감상을 해보았다. 사실 내가 지나온 표류의 시간들은 고립 그 자체였고 어쩌면은 사회,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시간이 내게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정체' 라고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영영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전시가 내게 주는 표류의 의미는 의도적인 불안한 휴식이 아니라 그냥 '불안'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표류를 즐길 자격에 대한 생각을 논하다보니 문득 또 생각나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몇년째 계속 하나의 트렌드 마냥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어로써 자리매김 해왔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번아웃'이라는 단어 역시 마치 힐링이라는 단어의 짝꿍처럼 sns나 여러 플랫폼에서 사람들의 지친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어로 종종 등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이 그동안 번아웃 상태였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는데 사실 이 번아웃이라는 단어 역시도 절대 아무에게 아무렇게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파고들어 체력을 완전히 다 소진한, 열정적으로 뭔가에 쏟아부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꽤나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었던 것이다. "당신은 그것에 진심으로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에너지를 다 소모 했으므로 번아웃 상태로 진단 할 수 있겠습니다." 라는 말은 결국 내가 가진 열정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부었다. 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일에 쉽게 질려서 끈기가 부족했거나 혹은 적성이 맞지 않아서 마음을 붙이지 못한것 그 외에도 그냥 그저 게으른 사람이라서 등등 여러가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로 사소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더군다나 그 스트레스의 근원을 찾는 노력 보다는 그저 그것들을 모른척하고 회피 해 오기만 했었던 사람들이 어느날 문득 '번아웃'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아, 내가 번아웃 이었구나." 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당신은 그렇게 말 할 자격이 없다"라고 냉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이 전시에서 작가님들이 의도하고자 했던 '표류'는 정말로 열심히 살아온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짜릿한 '일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산적인 '목적성 잃음'을 실행할 수 있는, 열심히 살아온 작가님들의 노고가 새삼 대단하고 부럽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시 맨 위 상단 전시 안내문의 일부를 가져와보자. "이 전시를 보는 것에 드는 에너지는 이 전시를 탈출하는 것에만 쓰이길 바라며, 아무 짝에 쓸모없는 정보들은 그대에게 견딜만한 스트레스를 선물하길 원한다. 폭풍우를 만난 배처럼 예기치 못한 전시를 만나 전시장에 어쩔 수 없이 표류하는 것이다." , "결국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과 목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길 바란다. 지금 발전이 멈춰있는 당신이 불안과 평안 중 무엇을 느끼는지 감각하고 전시장을 나가길 원한다." 라고 아주 단호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관람자들에게 마치 경고하는 듯 얘기하고있다. 이 난파호에 몸을 실어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편안한 정신적 안식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되려 견딜만한 스트레스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점,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길 바라며 불안과 평안 중 무엇을 더 강하게 느꼈는가를 감각하고 전시장을 나가길 바란다고 말해주고있다. 내가 이 전시에 대해 마치 '불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 같다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이  전시소개글은 관람자들에게 인위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사실 너 불편하지?" 라고 꽤 공격적인 태세로 질문을 하는 것만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위에서 다 얘기한 셈 이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내게 있어서 표류는 '불안'에 가까웠고 의도적으로 쓸모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역설적이고 독특한 발상은 그럴만한 자격이 주어진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달콤한 '일탈'이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일탈의 시간을 스스로가 누릴 자격이 있다고 판단 될 만큼, 매사를 의미있고 진정성 있는 시간들로 채워가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나 자신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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