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용서' 라는 키워드에 조금 꽂혀있다.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종교에서도 그렇고 심리학자들도 그렇고 모두가 하나같이 '원수를 용서하라' 라는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사실 굉장히 익숙하지만 어찌 하나같이 저런 답답한 소릴 하는걸까 그냥 호구가 되라는 소리 아닌가. 라고 의아한적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이 말이 전달하는 의미와 깊이를 몸소 느끼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온전히 와닿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냥 흔히 말하는 '져주는게 이기는거다' 같은, 그런 소리 아니야? 즉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라. 따위의 의미로써 주로 해석했었는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말 역시도 맞는 말이지만 '카르마'에서 설명하는 이 문장은 좀 더 추가적인 다른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카르마가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줄 때. 쉽게 말해서 의도적인 어떤 나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심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관계 안에서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 피드백이 발생 했을 때 '카르마'가 발생한다 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카르마는 언젠가 돌고 돌아서 내가 행한 나쁜 행동의 결과가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용서'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누군가 내게 몹씁짓을 했다고 치자. 그로인해 나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고통에 신음했다. 여기서 나의 행동은 두갈레로 나뉜다. 내가 받은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고 다시 나 자신을 다 잡고 일어서는데 초점을 맞추는 사람, 또는 나에게 그런 상처를 준 사람을 끊임없이 증오하고 미워하며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며 칼날을 가는 사람. 누가봐도 전자의 경우가 건전하고 건강한 행동이라고 느끼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피해를 준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다. 물론 그 시간 역시도 어쩌면 필요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단,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분노를 느끼는것은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지만 그 마음을 질질 끌고 오랜시간 동안 나를 더욱 더 고통에 빠지게 하느냐 혹은 빨리 그 고통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느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카르마'에서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은, 그 원수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그 감정을 오래도록 내 마음에 품고 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카르마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내가 상대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나 역시 똑같은 행동으로,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 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도 어느정도 정당하긴 하지만 정도에 따라서 이 말이 적용이 되기도하며 때로는 부적절하기도 하다. 

 

 

어느 누군가 내게 악심을 품고 피해를 줬을 때, 나 역시 똑같은 행위로 되갚아 준다면 나 역시도 나쁜 짓을 행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이 받을 카르마는 나도 똑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내게도 카르마가 발생하게 되버린다. 즉 가장 통쾌한 복수는 그냥 나 자신이 더 건강하고 발전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거다. 즉 죄 값을 받는 사람은 굳이 내가 나서서 똑같은 복수를 행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멸할 것이고 나는 멀리 저만치서 그 사람이 자멸하는, 혹은 파멸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아, 물론 망해라, 자멸해라 라는 식의 앙심을 내 맘속에 품고 있는 것 역시도 카르마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신경 쓰지 않고' 내 할일에 집중하고 내 삶을 열심히 사는 것, 그렇게 한다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원리 아닐까. 처음에는 나 역시도 이런 설명이 굉장히 종교적인 해석처럼 다가왔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니, 놀랍게도 과학적으로 이런 일들이 원리원칙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내가 타고 태어난 환경, 내가 결정 지을 수 없는 운명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카르마'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즉 내가 어떤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랄것이며 어떤 경험들을 하고 나중에 어떤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등등 내가 태어나기 전 부터 꽤 많은 옵션들을 미리 결정하고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가 바로 '카르마'이며, 내가 전생에 해소 하지 못했던, 혹은 그 전생에 지었던 죄나 업보 등등의 카르마를 해결 하기 위해서 그 카르마와 연관된 인물과 이번 생에 어떠한 또 다른 밀접한 관계로써 다시 연을 맺게 된다 라는 이야기였다. 여기서부터 꽤나 불교 정서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아예 전생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허무맹랑하거나 근거없는 실망스러운 내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생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느정도 호기심을 갖고있고 아예 불신하지는 않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결국 '카르마'라는 단어의 근원 자체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영적인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지어 지므로,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모든것이, 모든 굵직한 운명들이 카르마에 의해 이미 결정된 채로 태어난다면 카르마 라는 것은 결국 '결정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책에서는 결정론 보다는 인과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운명이 결정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우리의 삶을 개척할 수 없다. 라고 말할 순 없다. 애초에 '카르마'를 해소한다는 거는, 내게 주어진 운명과 인연, 관계들 속에서 더 이상의 카르마를 발생시키지 않고 소멸시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현상이 카르마의 해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더 나은 건강한 삶은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건에는 이유와 원인이 있고 그것을 단순 결정론으로 단정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 의지와 상관 없는 불행에 대한 것도 '카르마'에 의한 것인가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예를들면 전쟁이나, 사고, 자연재해 등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공업에 의한 '카르마'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에 비해 많은 자연재해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인류가  피해 입는 것 역시도,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많은 피해들이 예를들면 환경파괴 같은 것들이 카르마로 발생하여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는데, 어찌보면 내 개인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써 내가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카르마가 있기에 모두가 함께 그 카르마의 영향을 받는다. 라는 독특한 개념의 이야기였다. 

 

 

예를들어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도 해당되지 않을까.  누군가 산을 깎아 무리하게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높은 고층 아파트를 짓도록 하였을 때 이 경우에 직접적으로 나쁜 짓을 행한 사람은 아마 그 산을 깎아서 아파트를 짓자. 라는 결정적 역할을 한 국회의원일 것이고, 그리고 그 아파트를 지은 인부들은 시킨 대로 한 결과지만 어쨌거나 산을 파괴하고 아파트를 짓는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는 입주민들 역시도, 직접적인 업을 행하진 않았지만 그 곳에 거주함으로써 환경 파괴에 간접적으로 행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나쁜 기업의 제품을 잘 모르고 소비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예를들어 가학적인 동물 실험으로 제품을 생산해내는 화장품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역시도 간접적으로 동물 학대에 동조하는 것이 되 버린 것 처럼) 그리고 또 이런것과도 연관지을 수 있는 부분일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나 조상이 세상에 많은 죄와 업보를 저질렀을 때 그 자손에게까지 악영향이 가는 것도, 사실 그 자손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잘못한 뭔가가 있지는 않지만 그 윗세대의 '카르마'가 너무 강력하여 자손에게 까지 그 책임이 떠안겨 가는 현상과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즉 직접적으로 내가 가담한 '업'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카르마의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모두가 타고난, 부여받은 환경과 운명은 제 각각 다르지만 그것이 인과관계에 의한, '카르마'와 연관지어 설명 할 수 있다는 부분은 꽤나 흥미로운 얘기거리인 것 같다. 뭔가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어야 될 부분 역시도 없지않아 존재하지만, 그게 나의 운명이라면 사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생의 출발점과 난이도가 제 각각 다른 것은 각자가 타고난 운명인 것을 뭐 어떻게 하겠는가? 중요한것은, 그렇게 부여 받은 카르마를 내가 이 생에서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소하며 살아가는가. 어쩌면은 인생이란게 넓은 의미로 보았을 때 카르마의 해소에 삶의 목적이 있는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마저 문득 들었다. 그만큼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생에서 해소해야만 하는, 이겨내야만하는 카르마는 무엇이며 그 카르마의 영향력이 크면 클 수록 힘들고 험난한 과정이겠지만 그게 우리가 해결하고 풀어야 할 숙제라면 기꺼이 해야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고 나를 성숙하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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