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기에 앞서서 지금 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여러 전시들 중에서도 이 <능수능란한 관종> 이라는 전시가 현 시대 젊은이들의 문화와 이슈들을 잘 반영한 가장 '트렌디'하고  MZ스러운 감각적인 전시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성세대 작가들 뿐만 아니라 인스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막 떠오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따끈한 작품들이 함께 혼합되어있어 굉장히 흥미로우면서 트렌디한 센스와 감각이 돋보이는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전시란 바로 이런것이다. 그 시대에 가장 화두가 되는 이슈, 문화, 갈등, 트렌드 이런것들을 잘 자극하고 건드리면서도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런 주류 문화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점이 뭔지, 또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등등에 대해서 사고하고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만드는 그런 전시 말이다. 

 

 

 


"관심받는게 좋아요, 관종은 뭘 의미하는걸까?"

 



이 전시의 주제는 '관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있다. "능수능란한 관종". 뭔가 이름만 들어도 관종미가 뿜뿜 넘치는 느낌을 자아내는 기분이 든다. 대게는 '관종'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지 않나. 흔히 저새끼 저거 원래 좀 관종이야. 이런 식으로 관심에 굶주린 정신나간 미친사람마냥 취급하듯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아티스트, 인플루언서들은 바로 그런 '관종력'이 없다면 사실상 종사하기 불가능한 직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관종력을 잘 가꾸고 브랜딩화 하는것이 요즘 사회에서는 이것도 하나의 마케팅 능력으로써 인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관종'이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전시의 매력적인 작품들 이외에도 사실 이 주제를 매우 설명적으로 자세히 이야기 해주는 책자를 읽으며 깊은 영감을 받았다.  

 

 

 

 

위의 책자들은 전시관에서 무료로 가지고 올 수 있으니 꼭 챙겨오기를 추천한다. 위의 책자들 중 나는 '김준혁'님이 쓴 "관종은 무엇일까?"라는 글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는데 현대사회에 있어서 관종, 즉 관심을 갈구하는 행위라는 것은 결국 '생존력'에 대한 갈구로 동일시 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어쩌면 이 포스팅은 이 짧은 책자를 위주로 한 리뷰일지도 모르겠다. 

 

 


 

 

"관심을 바라는 배경은 기회의 불균형이 만든 경쟁이다."

 

첫 단락이 이렇게 시작한다. 일단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유전자 번식을 통한 자기복제라는 개념에서 매우 본능적으로 관심을 바라는 것인데 생물의 존재 이유를 '유전적 불멸'에 있다고 했을 때 매우 원초적으로 타인을 향한 관심의 근원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먼저 이해해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나의 유전자가 번식에 성공하지 못한채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흔히 요즘 말로 얘기하는 '도태'되어 멸종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관심을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쟁을 만드는 진짜 근본적인 원인을 성비의 불균형 보다 '기회의 불균형'에 더욱 더 큰 초점을 맞추고 본다는 부분이다. 사실 만약 세상의 암수의 성비가 아주 완벽한 비율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바람대로 한명에 한명씩 알맞게 서로에게 관심을 주고받는 이상적인 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월한 조건과 능력을 갖춘 자들이 관심과 인기를 독점하고 독차지한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자연의 법칙 같은것이니 말이다. 그럼으로 쓰니는 성비의 불균형 보다도 기회의 불균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불균형을 그나마 상식적으로 맞춰주기 위하여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문명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 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관심을 바라는 이유는 자기를 유지하려는 본능이다."

 

그러나 이 단락에서는 인간이 관심을 갈구하는 이유가 유전자의 불멸을 바라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다시금 주장한다. 즉 종족번식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거다.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이 겪고 있을 많은 어려움들 중에서도 몇가지 손꼽을 수 있는 것들을 말하자면 예를들면 실업난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어려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더 나아가서 국가적으로는 자원고갈과 기후 재난 등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의 미비. 이런 것들은 결국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는데 있어 '난이도'를 결정짓는 주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난이도를 버텨내지 못한 자들은 쉽게 소외되고 결국 소외된다는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그것은 또 생명유지 즉 나를 유지하려는 힘과 직결되어 심리적으로 생명 연장에 불리함, 어려움을 느낄 때 인간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삶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번식욕 뿐만이 아니라 '나를 연장하고 유지하려는 본능'으로 부터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인간은 가장 초조해지고 괴로워진다. 내가 안전하다 라고 느끼지 못하는것,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지 못한 것, 적절히 관심 받지 못하는 것 이런것들이 나의 생명 유지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이 새삼 흥미로운 부분이다. 나는 요즘의 젊은이들은 종족 번식 실패에 대한 불안함보다 바로 이 자기유지본능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부터 압도적인 스트레스를 받는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종을 가르는 기준은 부정과 악감이다."

 

이런 원인들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사실 관심을 바라는 행위 자체에는 결코 문제가 없다. 매우 본능적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과 애정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관종'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어감은 사실 부정적인 느낌에 가깝다. 흔히 도가 지나친 병적인 관심을 바라는 사람들을 향한 감정인데, 그래서 도대체 왜 이렇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관종'을 혐오하기 시작했으며,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 관심 병자, 관심 종자 라고 칭하게 된 원인이 뭘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생긴다. 여기서 바로 글쓰니가 주장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관종'의 다섯가지 조건에 대해서 나는 매우 크게 공감하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다섯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기회의 불균형이 만든 경쟁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을 유지하려는 자

2. 자기를 유지한 조건이 충분함에도 동종에게 기회를 나누지 않는 자

3. 그것이 생물로서 본능이라 여기며 자신의 지능을 그러한 본능을 억누르는데 사용하지 않는 자

4. 관심 밖에 놓인 이들을 돌보고자 지능으로 만든 질서를 어지럽히는 언행을 일삼는 자

5. 그런 삶을 사는 자기에게 긍정과 호감에 기초한 관심을 주길 바라는 자


 

 

나는 이 다섯가지 촌철살인과 같은 조건들을 나열한 글쓰니의 깊은 통찰과 예리한 관찰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껴왔지만 뚜렷하게 형용하지 못했던 '관종'에 대한 왠지모를 부정적인 감정과 불편한 생각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정확하게 다섯가지 예로 완벽하게 설명한 것이 매우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저 다섯가지 조건에 해당하는자로 높은 확률로 '나르시시스트'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내가 극도로 상종하기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어쩜 '관심종자'와 이렇게도 데칼코마니 같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있을까 라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당신은 어떠한 기준으로 '관종'을 가를것인가?에 대해서도 동시에 질문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글쓰니와 매우 밀접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인간의 성향은 각자의 개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타인에게 직, 간접적으로 불편한 영향을 주는지 정신적이든 물리적으로든 불쾌감을 주고 피해를 주는가. 그리고 그렇게 피해를 끼치는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사람, 즉 자신만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불편함과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물불 가리지 않는 비도덕적 인간인가 등등 이러한 여러 기준에 따라서 그 사람의 고유 성향을 개성으로 인정할 가치가 있냐 없냐를 판가름 하는 편이며 쓰니가 제시한 다섯가지 조건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귀여운 관종, 밉지않은 관종 이라는 것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적정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의 자유와 관심의 갈구를 추구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것이며 말 그대로 관심종자, 병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매우 양심이 없으며 뻔뻔한, 이기적인 사람들을 향해 일컫는 말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관심을 바라고자 하는건 인간의 타고난 본능과 같은 것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중에 공감도 지능이라는 말이 많지않나. 지능과 공감을 갖춘 진화한 인간이라면 건설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관심을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적절한 예로 유튜브 조회수에 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도덕적인 선을 넘는 유튜버 아니, 사기꾼들이 도처에 깔려있지 않은가. 동물 구조 영상으로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을 사서 조회수를 올리겠다는 목적으로 일부러 동물을 잡아다가 구해주는 것 처럼 자작극을 꾸미는 채널이라던지 한때는 틱장애가 있는 장애인 흉내로 돈벌이를 했던, 논란이 된 유튜버 등등.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창작활동은 매우 지적인 버전의 관종 행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종종 사회적 금기를 향한 도전 정신을 담은 도발적인 아티스트들 역시 존재하지만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파렴치한 관종들에 비교하면 그들은 매우 양반인 셈이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합리적인 선 안에서 관종력을 추구할 수 있는가에 가장 도가 튼 부류들이 바로 아티스트들 아닐까.  바로 이 전시에서 말하는 '능수능란한 관종'이란 그들은 뜻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https://www.busan.go.kr/moca/exhibition01/1610737

 

현재전시 - 능수능란한 관종 : 부산현대미술관

내용 《능수능란한 관종》은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전시는 관종이라는 다소 과격한 용어를 넘어 관심을 추구하는 행위가

www.busan.go.kr

 

애인에게 폭행을 당한 직후에 자신을 촬영한 낸골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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