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써보는 넷플릭스 자연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 대한 리뷰이다. 내가 이 다큐를 보게된것은 굉장히 우연한 일이었다. 사실 그 처음의 시작은 뜬금없게도 '사마귀'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날 주말 오전 자다 깬 멍한 정신으로 유튜브를 켰는데 우연히 피드에 뜬 사마귀 영상이 눈에 들어왔고 재생해보니 암컷 사마귀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Please Bee" 라는 채널의 영상이었다. 암컷 사마귀의 어린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습들을 차곡차곡 모아 편집한 영상이었는데, 어린 암컷 사마귀가 먹이를 먹고 성장하는 과정, 사마귀가 수컷과 교미에 성공하고 알을 낳는 모습 등 평범한 성장 과정의 모습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다가 어느순간 사마귀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먹이를 거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제 성장 할 만큼 다 성장하고 여러번의 알도 낳은 어미 사마귀는 자연의 이치가 늘 그렇듯 바로 죽을 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예상한대로 사마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사마귀를 키워온 주인은 처음 사마귀를 데리고 왔던 장소로 찾아가 고이 묻어주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것 같은 사마귀의 성장 스토리를 보고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사마귀의 죽음이 전혀 평범하고 뻔한 죽음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평범한 사마귀의 죽음 그 자체에 새로운 어떤 슬픔을 발견 한 것이 아니라, 이 채널 주인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은 좀 더 '특별했던 사마귀'의 죽음으로 인식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과 사마귀가 맺은 '유대관계' 라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짧고도 긴 시간동안 인간과 유대관계를 쌓아온 어느 암컷 사마귀의 죽음."인 것이다. 이 서사는 내게 그냥 사마귀가 아니라 충분히 좀 더 '특별한 사마귀'로써 인식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 있었고 즉 채널 운영자의 정성 어린 마음이 평범한 사마귀를 매우 특별한 사마귀로 만들어주게 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주책맞게 눈물 쏟아내고는 우연히 추천영상으로 보게 된 것이 바로 '나의 문어 선생님'이었다. 앞서 말한 사마귀 영상과 마찬가지로 이 문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주는 감동 포인트 역시 인간과의 교감, 유대관계에 큰 포인트가 있다. 결혼을 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고있던 주인공은 어느날 문득 인생의 큰 방향성을 잃은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목적의식이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한동안 방황하다가 문득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다시마바다로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암컷 문어에 강한 호기심을 갖게되고 그는 긴 시간동안 문어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사실 문어는 바다생물 중 굉장히 지능이 높은 편에 속해서 바다속에 사는 강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데, 처음에는 잔뜩 경계하는 태세로 주인공을 대하다가 어느순간 긴장이 서서히 풀리면서 암컷 문어 역시 주인공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는 여러개의 빨판이 달린 문어 다리 하나를 슥 내밀어 인간의 손을 더듬 더듬 만져보며 주인공을 처음으로 탐색하는 순간이 나온다. 매우 경이롭고 신기한 장면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렇게 완전히 경계를 풀게된 암컷 문어는 주인공의 배 위에 올라타기까지 할 정도로 주인공과의 친밀감을 조금씩 쌓아가게 된다.



실로 문어가 바다속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굉장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몸의 색깔과 질감을 수시로 변경하며 은폐하는 것은 기본이고, 마치 사람이 두 발로 걷는 것 처럼 문어 역시 다리 두개를 지탱해서 바다속 지면 위를 걸어가기도 하고 주변의 조개더미들을 모아서 몸을 둥글게 공처럼 말아 덕지덕지 조개 껍대기로 몸을 감싸 보호하는 등 굉장히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천적의 공격을 피해가며 생존해 나가고 있었다. 사실 그보다도 가장 놀라운 부분은 문어가 생존을 위한 먹이 활동이나 천적을 피해 도망가는 본능적인 모습들 외에, 굉장히 사회지능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주인공은 어느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문어를 관찰하다가 독특한 모습을 발견한다. 마침 지나가는 물고기 떼들을 향해 문어가 두 팔을 벌려 물살을 휘젓는 행동이었는데 처음에는 사냥을 시도하려는 건가 생각했지만 문어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으로 사냥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저렇게 단순한 방법이 사냥을 하고자 하는 행동일리가 없었다. 결국 한참에 이르러서야 그가 깨달은 것은 문어가 그저 물고기들을 향해 장난을 치는 행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문어에게도 여지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문어는 여러번이나 백상아리와 같은 천적들을 피해 살아남았지만 수컷 문어와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한 후부터 급격히 기력이 퇴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주인공이 어느날 문어의 상태를 살피러 찾아갔을 때는 이미 온 몸이 불어 죽기 일보직전,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태의 문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물고기들에게 살점을 뜯기고 결국은 상어가 나타나 기력없이 늘어져 있는 문어를 단숨에 낚아채 물어가버린다. 그 모습을 본 주인공은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지만 자신이 개입함으로써 생태계의 질서를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현상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문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대해 얘기하던 주인공은 마치 절친한 친구를 잃은 것 같은 깊은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결국 인간이 자연 생태계 속에 존속되어 있다는 것, 자연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느끼는 감동과 경이로움도 물론이지만 그보다도 주인공이 문어라는 연체동물에게 큰 호기심을 느끼면서 암컷 문어에게 관심과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순수한 집중력에 더욱 큰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우리는 사실 굉장히 사소하지만 뜻깊은 무언가에 깊게 매료되고 집중 할 수 있을 때 심리적인 만족감과 행복의 가치를 깨닫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작지만 의미있는 무엇에 깊히 집중할 수 있는 순수함은 점점 사라져가기에, 그 공허함과 상실감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써는 앞서 말한 사마귀를 키운 유튜버나, 문어를 오랜시간 들여다본 이 다큐의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 얼마나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더욱 사무친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듬에도 불구하고 순수하다 라는건 과연 나이값을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한적이 있었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 순수함을 잃는다는 것 역시 얼마나 삶에 있어서 소중한 원동력과 에너지를 잃어가는 행위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결국 누가 뭐라해도 대상이 뭐가됐든 내가 온전히 집중하고 빠질 수 있는, 내게 영감을 주는 무엇을 통해서 삶의 활력을 얻고 의미를 찾아간다. 그말은 즉 순수하게 뭔가를 사랑할 수 있는 열정을 잃어 간다는것은 분명 삶의 목적을 잃은것과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마귀를 온 진심을 다하여 키울 수 있었던 것과 문어를 진심을 다해 관찰 할 수 있었던 이 두사람의 열정이 내게는 단순히 생태계의 신비함 그 이상의 특별한 감동이었다. 사소하고 하찮을 수 있는 작은 생명체에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저 두 사람의 순수한 에너지가 내게는 너무나 부러운 어떤 '것'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요

BORN TO BE FREE is a revelatory investigation by three intrepid free-diving journalists, Gaya, Tanya and Julia, into the global trade in wild sea mammals. Their journey takes us to the most remote corners of Russia and witnesses, for the very first time, the shocking treatment that whales, dolphins and walruses are subjected to and discovers the corruption at the heart of this cruel international business.

 

BORN TO FREE는 가야, 타냐, 줄리아 등 세 명의 대담한 자유 다이빙 언론인이 야생 해양 포유류의 세계 무역에 대해 조사한 내용입니다. 그들의 여정은 우리를 러시아의 가장 외딴 구석으로 데려가고 고래, 돌고래, 바다코끼리의 충격적인 처우를 목격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국제 비즈니스의 핵심에서 부패를 발견하게 됩니다.

 

 


 

 

 

 

2013년 프리 다이버인 가야, 타냐, 줄리아는 포획되어 사라진 18마리의 벨루가의 흔적을 찾아 쫓아간다. 그 과정에서 벨루가를 포획하고 사육하는 처참한 방식들을 목격하게되고 인간의 비즈니스로 인해 잔인하게 학대 당하고 희생되는 벨루가들,  또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부패한 시스템들의 민낯을 파헤치고 고발한다. 한낱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그들은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원초적 자유를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BORN TO BE FREE" "자유로워지기 위해 태어나다" 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들은 그저 자연에서 태어난 순수한 존재들일 뿐인데 말이다.

 

 

 

 

 

국제 프리 다이빙 챔피언쉽의 최초 여성 우승자인 '줄리아'는 종종 백해(러시아유럽권 북부, 바렌츠해로 열려있는 바다)로 나가 벨루가들과 함께 수영을 했었는데 어느날 그녀와 함께 수영을 했던 벨루가 2마리가 결국 돌고래 아쿠아리움으로 팔려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과학 연구센터였던 곳은 점점 돌고래 산업의 한 부분이 되어갔고 그들은 새로운 벨루가들을 포획하여 링을 통과하기, 공을 가져오기 등과 같은 묘기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벨루가들과 함께 수영하는 체험을 하기위해서 관광객들은 돈을 지불했고 그렇게 과학연구소는 점점 큰 사업의 장으로 변모해갔다. 

 

러시아에서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벨루가들은 여러 임시 수용소를 거쳐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벨루가들이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결국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살아남게된 벨루가 몇마리만이 아쿠아리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이빙 챔피언쉽의 최초 여성 우승자 '줄리아'의 말에 의하면 벨루가들은 주로 북극해에 서식하는 동물로써 차가운 온도의 물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잘 관리가 되지 않는 임시 수용소의 높은 물 온도로 인해서 벨루가들이 화상을 입거나 또는 피부병을 얻는 등 동물 학대를 의심해볼 수 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과 시스템들이 벨루가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Utrish Marine station에 잡혀있는 벨루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Kim Basinger 라는 배우에 의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그녀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직접 벨루가들을 자연으로 다시 풀어주길 바란다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이 사건이후, 그녀들은 제일 먼저 Utrish로 가서 벨루가들의 흔적을 쫓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7마리의 벨루가들이 포획되어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한다. 

 

 

 

 

이곳  Utrish의 사육사의 말에 따르면 주로 아직 덜 성장한 어린 벨루가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어린 벨루가를 교육하고 길들이는 것이 다 큰 성인 벨루가를 길들이는 것 보다 훨씬 쉽기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애초에 흰색을 띄는 성체 벨루가는 통관료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주로 아직 덜 성숙한 회색빛을 띄는 아기 벨루가들을 잡아서 각국의 아쿠아리움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벨루가가 포획되고부터 임시수용소로 거치는 과정까지 그 통관 현장을 지켜보며 촬영하고 기록을 남겼던 수의사 "Tagiltsev"를 만나 자료를 얻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앞서도 말했듯이 흰 벨루가의 통관료가 너무 비싸 주로 어린 회색 벨루가들을 포획하며, 그물로 채집하는 과정에서 종종 이미 사망해버린 벨루가가 발견되곤 한다고. 사망한 벨루가의 배를 갈라 부검을 해본 결과, 벨루가의 기관지 쪽에서 물이 흘러나왔고 아마도 예상해보기를, 어린 벨루가가 그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다가 그물망이 목에 걸려 익사된 걸로 보인다는 내용 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이 벨루가 포획을 진두지휘하는 감독관이 염려하는 부분은 오로지 포획 물량을 다 채울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부분 뿐이었다. 그들에게 벨루가 포획은 그저 돈을 벌어야 하는 수단의 일부이며 사업일 뿐이다.

 


 

 

 

 

포획된 아이들은 각국의 아쿠아리움에 도착하기 전부터 미리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생태계의 감옥 안에서 살아있는게 아닌, 난생 처음 죽은 물고기 먹는 방법에 익숙해지도록 강요당한다. 그 장면이 너무나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 못지않은 고도의 사회적 동물인 벨루가들은 실제로도 다양한 소리로 의사소통 할 만큼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데,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부모를 포함한 그들의 이모, 삼촌들과 집단을 이루며 사회성을 배우고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어린 벨루가들이 그들 세계의 사회성을 채 배우기도 전에 인간들에게 포획 당하고, 그들의 활동 반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좁은 아쿠아리움에서 인간에게 길들여 지면서 많은 멘탈적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기존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벨루가들에 비해 짧은 생을 살아간다. 얼핏 보기에는 그들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가 늘 웃고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쿠아리움에서 살아가는 벨루가 고래들이 마치 행복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사실은 크게 고통받고 있음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럼에도 왜, 벨루가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는 이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연방 청사 미국 법원에 출석하던 법률 고문의 말에 의하면 해양포유류보호법의 모든 기준을 적용했다가 다시 번복하게 된 것은 벨루가 고래의 개체군이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도대체 어째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라는 물음에 아주 간단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 이유는 멸종위기종 목록에 없기 때문입니다." 

 

 

 

 

 

쥴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This is their world, their life, and we can only come for a visit.  Freedom for modern people lies in seeing themselves as the kings of nature. I think man is not a king. Man is a part of it all. Man has no right to destroy the harmony of this world."

 

"여기는 그들의 세계, 그들의 삶이고, 우리는 오직 방문 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자유는 자신을 자연의 왕으로 보는 데 있습니다. 나는 인간이 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든 것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조화를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벨루가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들을 가족의 품에서 빼앗아 오는 것도 모자라 학대하며,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고 그저 훈련시키기를 반복하면서 인간의 산업 수단으로써만 이용하는 이 동물 산업 시스템에 많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과연 이것을 단순히 약육강식의 흐름이며, 또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인간의 당연한 능력이자 권리, 자연의 섭리라는 뻔뻔한 이름으로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사고'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비롯되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깊이 있는 생각과 통찰을 하는 인간이라면 자연의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있는 '인간'이 가진 지능과 능력을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 절대로 당연한 권리이자 능력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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