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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이야기/예술_전시_공연

부산현대미술관 <경이로운 전환> <그 후, 그 뒤> 전시 리뷰

by Fancy_sailor 2022. 1. 20.

 

1월 2일부터 현대미술관을 다녀왔었다. 물론 전시를 보기위해서.. 그러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이제서야 포스팅을 올린다. 2022년의 첫 전시회 방문이었고 안타깝게도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방역패스가 실시중이라 전시회도 예외없이 방역패스를 적용중이었고 (물론 지금은 카페, 식당을 제외한 영화관, 전시회 등등은 방역패스가 해지되었다.) 미접종자인 나는 pcr 검사를 통해 음성 확인증을 문자로 발급 받고서 찾아갈 수 있었다. 이 포스팅은 <경이로운 전환>과 <그 후, 그 뒤>  이 두 전시에 대한 나의 기록이다.

 

 

 

 

<경이로운 전환 :  The phenomenal Transition>

 

 

 

전시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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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에 대한 뉴스들이 폭발하고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노동현장에서의 사고들이 연일 보도되며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동시대적 현상들 간의 공백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경이로운 전환》은 돈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과 노동 없는 소득이 생긴다는 믿음이 상승하는 것에 반해 점차 아래로 꺼지는 인간노동과 그러한 노동력을 발휘하는 노동자의 재등장에서 감지되는 현실 세계의 작동원리를 우리 시대의 주요한 운동성으로 주목한다. 이 전시는 우리 눈앞에 나타난 현상의 반복적인 운동성에 대해 서술하는 13점의 작품을 상호 연결하여 우리 시대의 현실 이해에 재도달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에 소득을 얻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노동자가 되어 임금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노동하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임금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 사용권을 넘겨줌으로써 받게 된다. 그에 반해 불로소득은 그 노동력의 사용자로서 얻게 되는 자본가의 소득이다. 자본가는 자신이 투입한 것들, 예를 들면 기계. 땅, 건물 등으로부터 소득을 얻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빈 공장이나 작동하지 않는 기계가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이윤은 노동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불로소득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노동력 혹은 타인의 노동소득을 그 원천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자본가가 투입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이 회수되면서 생기는 불로소득은 그 관계 안에서 다시 자본이 된다. 자본이 된 돈은 이처럼 태생적으로 타인의 노동력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한편 자본의 투입과 회수는 즉각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상품이 생산되고 판매되어 이윤, 즉 돈으로 돌아오려면 그 사이사이에 시간적·공간적 공백이 필요하다. 이 공백을 이어주는 것은 상업 어음, 담보, 대부 등의 신용거래이다. 자본가는 당장 돈이 없더라도 신용을 통해 이러한 가공의 자본을 사용할 수 있다. 가공의 자본은 애초부터 노동자와의 관계 안에서 생산한(할) 상품에 근거한다. 이러한 관계의 반복이 상품을 돈으로, 돈을 자본으로 만들어주고, 자본은 무한 증식할 수 있게 한다. 상품에서 돈으로, 돈에서 자본으로의 무차별한 교환관계와 이동 속에서 인간 노동력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그것이 자본의 기원이라는 사실은 잊혀 진다. 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을 통해 자본이 된 돈은 산업자본가를 거쳐 상업자본가, 대부자본가, 지주 등에게 분할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대신 기계, 주식, 땅, 건물 그리고 화폐가 그 가치를 낳은 것으로 오인된다. 여기에서 ‘놀랍고도 신비로운’ 믿음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허상이지만 가상-현실로서 우리 시대를 이끄는 주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전세계적인 감염병의 도래와 그로 인한 격리와 봉쇄 속에서 자본의 투입과 이윤 회수 사이의 공백은 더 커지고 이 공백을 회피하기 위해 또 다른 자본을 끌어오는 방식의 반복으로부터 자본은 끊임없이 자본이 되어 간다. 그럴수록 이와 맞물려 있는 노동력 또한 위기를 면치 못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노동 혹은 노동소득의 끊임없는 가치 하락이다. 감염병으로 인해 다양한 위기에 대한 인식이 커지는 가운데 전방위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자본주의가 초래한 생태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환의 시도들이 목격되지만, 전지구적으로 맞이한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곳은 자본 축적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의 자기증식이 불러온 모순과 그로 인한 인간의 위기이다.

 

  이 전시는 결국 노동력의 가치 하락이라는 위기가 이윤 창출을 통한 자본 축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내재된 운동 법칙임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다. 우리 시대는 자본의 축적과 확장을 통해 체제가 유지되는 사회다. 자본주의의 자기혁명을 위한 운동이 마치 인간과 사회를 위한 필연적인 ‘선(善)’인 것처럼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이 결코 진리일 수 없다. 그 증거는 우리 사회에 나타난 수많은 증상들을 통해 감지되고 있다. 이 운동성을 놀랍고도 신비로운 것, 나아가 기괴하고 불쾌한 것으로 읽어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전환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출처 : 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전시서문에서 읽었듯,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시장 경제가 하락하다시피 하고 그로인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서 이 사회적인 격리와 봉쇄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흘러가고 있는 시장 흐름의 변화와 모습들을 관찰하고 조명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작품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노동력이 급 하락하고 있는 현 시점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강조하고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자본의 기원'이라 불리는 인간 노동력의 가치를 밝히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시서문 일부 발췌 요약>

 

 

"자본가는 자신이 투입한 것들, 예를 들면 기계. 땅, 건물 등으로부터 소득을 얻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빈 공장이나 작동하지 않는 기계가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이윤은 노동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상품에서 돈으로, 돈에서 자본으로의 무차별한 교환관계와 이동 속에서 인간 노동력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그것이 자본의 기원이라는 사실은 잊혀 진다. 노동자가 생산하는 상품을 통해 자본이 된 돈은 산업자본가를 거쳐 상업자본가, 대부자본가, 지주 등에게 분할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대신 기계, 주식, 땅, 건물 그리고 화폐가 그 가치를 낳은 것으로 오인된다."

 

 

"전세계적인 감염병의 도래와 그로 인한 격리와 봉쇄 속에서 자본의 투입과 이윤 회수 사이의 공백은 더 커지고 이 공백을 회피하기 위해 또 다른 자본을 끌어오는 방식의 반복으로부터 자본은 끊임없이 자본이 되어 간다. 그럴수록 이와 맞물려 있는 노동력 또한 위기를 면치 못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노동 혹은 노동소득의 끊임없는 가치 하락이다."

 

 

"이 전시는 결국 노동력의 가치 하락이라는 위기가 이윤 창출을 통한 자본 축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내재된 운동 법칙임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다. "

 

 

 

A working History LU Chieh-Te : 직업의 이력, 루치에테

 

 

 

여기는 "직업의 이력 - 루치에테" 라는 책을 한데 모아서 전시중이었는데 '루치에테'라는 한 인물의 인생에 걸친 직업의 변화에 대해서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책이었다. 많은 직업의 변화와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사실상 자서전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어린시절 농사를 지었던 경험부터, 공장, 호텔 등등 나아가서 투자를 하기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인 그의 노동의 변화는 '노동과 노동력'을 주제로 얘기하는 이 전시 기획과 아주 잘 어울리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실제로 미술작가인 '저우위정'씨는 이 예술 프로젝트를 위해 생동감 넘치는 직업적 이력을 써 내기 위한 목적으로 한달간의 인터뷰를 필요로 했고 이상적으로 생각한 대상은 바로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중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3일동안 신문으로 구인광고 낸 뒤,  많은 후보자들 끝에 '루치에테'씨가 가장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결정을 짓고 그의 인생을 인터뷰 하면서 하나의 '책'으로 엮게 되었고 바로 그 책이 이 전시의 일부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 

 

이 책을 다 읽어보면서 느낀 부분은, 그가 노동력의 아주 아주 가장 기초의 단계에서 현재에 오기까지 얼마나 길고 오랜 시간을 노동에 쏟아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을 다 부었다고 해도, 아니 그의 인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노동의 가장 기초가 되는 '노동자'에서부터 '자본가'에 이르기까지 시장 경제에 존재하는 모든 노동의 단계들을 하나 하나 다 밟아 온 과정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의 인생이 곧 노동이었고, 그 노동력의 가치와 결과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파란만장하고도 화려한 이력서와 같다.

 

그는 여러 직업을 거쳐 오면서 오랜 시간을 '노동자'로써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모습은 시장 경제에서 봤을 때 아주 정직하고 성실한 방식으로 천천히 점진적인 성장을 이루어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중년이 된 지금으로써 그의 인생은 젊었을 때시절 보다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음이 당연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쉽고 빠르게 '자본가'의 단계에 이르를 수 있을까. 이 부분을 늘 요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가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과 숭고한 노력들을 보면서, 마치 불로소득만이 큰 시장을 형성하고 돈을 번다는 무의식적인 착각이 아니라, 그 밑으로는 노동의 기초가 되는 '노동자'들의 신성한 땀이 있기에 동시에 '자본'이 형성 될 수 있다는 것을.. 필히 자각하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이야기:

 

"오늘날 음식을 비롯한 여타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현 환경적 가치에 부응하는 혁신적인 요소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작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물은 매개로, 안료는 오염원으로 작용한다. 이 두 물질이 섞이면 하수가 된다. 그러면 하수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모방하고, 오염물질은 남겨져 종이 위에 침착된다. 하수구에 가까워질수록 오염이 더욱 두드러지듯, 이러한 반복적인 움직임의 결과로 종이는 색종이로 물들어 간다. 이 작품은 환경오염 과정을 모티브로 삼은 혁신적 제작 방식을 보여준다. 

 

 

 

 

눈물이야기:

 

"가게를 창업하려면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물색해야 한다. 사람이 가장 가치있는 자본이라는 말처럼, 투자를 할 때는 고가의 임대료를 지불하더라도 그 이상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고객이 실질적인 자본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가능한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손님은 줄었으나 임대료는 조금도 내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건물주가 최고의 투자임을 알게 된다."

 

 

 

 

 

땀이야기:

 

"하던 일이 자동화 기계로 대체되면서, 나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직업을 찾아다녔다. 배달업은 그리 어렵지 않을뿐더러, 기계가 거리를 활보할 일도 없지 않겠는가? 배달앱으로 주문을 받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오토바이로 상품을 받아서 다시 내비게이션을 따라 지정 주소로 배달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배달에 필요한 기술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또한 기계를 대체하는 것이 바로 내 몸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후, 그 뒤>

 

 

 

 

전시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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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세대에게 다음이란 있는가. 현재, 우리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담보로 하는 기후 비상 상황에 살고 있다. 진단은 분명하지만 해결책은 아직 불확실하다. 인간의 한정된 예측을 초월하는 징후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를 의식한다. 과연 이대로의 삶을 그대로 지속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시 《그 후, 그 뒤,》는 현재의 양상이 계속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그날’로 설정된 근 미래를 발굴하는 일종의 우화이자 대화이다. 반성적 시나리오로부터 출발해 보건대 과연 무엇이 남아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바다로 흘러들어온 예후적인 현상을 추적하고 미래의 흔적을 통해 그 이후의 모습을 끌어당겨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추측하는 그런 방식으로 ‘다음’은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를 재조정 할 수 있는 대안적 열망 가운데 상이한 잠재성들을 인식하고 재구성하여 도달할 ‘다음’을 감지해 본다. 작품들은 장차 다가올 미래의 이미지라기보다 어쩌면 허구적 역사로서, 익숙한 세상에서 무엇이 이상한지 포착하도록 현재를 반영하고 경험케 한다.

 

 

환경과 기후 문제를 다뤘던 전시로, 악화된 환경으로 인해 파괴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 낸 전시였고 그것은 일종의 '우화'이자 '대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과연 무엇이 남아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라는 출발점에 서서 파괴된 환경과 또 그 파괴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적응해 나가려는 놀라운 생물체들의 생존 번식을 함께 결합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열악한 환경과 함께 생존하는, 절대 '상생'이 아니라 그저 파괴된 환경에서조차 어떻게든 적응하여 번식하려는 생명체들을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오브제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앞선 전시와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깊은 고찰을 통해서 탄생한 작품들이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쓰레기 더미들에 붙어 기생하여 번식하는 생물체들의 '진화된' 모습들을 상상하게 하는 많은 전시 오브제들. 그 중 익숙하게 낯익은 물건들이 몇몇 눈에 띈다. 아이스크림 뚜껑이라던지 낡은 신발 등등 쓰레기들로 초토화되고 더렵혀진 최악의 환경 안에서도 어떻게든 생존 하기 위한 생물체들의 처참한 몸부림과 같은 모습들, 과연 그것을 '진화된 모습'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 마저도 진화된 형태라면 진화라고 볼 수 있지도 않을까. 과연 이래서 이 전시를 '우화'라고 칭했을지도 모르겠다. 

 

 

 

 


 

"<보라>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애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을 하기보다 잠재적 변화와 저항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이로써 수세기 동안의 인간 행위가 자연 순환 과정을 결정하게 될 정도로 커지면서 기후 변화에 동인이 되었음을 생생하게 목도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애도하는 20분 가량의 영상. 10개국에서 촬영하고 수백시간 기록된 장면들을 6개의 스크린으로 엮어낸 전시다. 전시 설명은 '종말론적인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글쎄 화면에서 그리는 수세기를 거쳐 흐르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종말론적 의미를 상상하게끔 만드는 무거운 아우라가 전해진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앞으로 계속해서 환경이 파괴된다면 '지구종말'이라는 예언은 더이상 예언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임을 누구나 예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가 이미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 상상하며 미리 '애도'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지 않았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나 지구에 종말이 찾아왔을 때, 그때는 이미  '애도'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 전에 '지구종말'을 상상하며 미리 지구를 애도하겠다는 예술가들의 섬세한 마음..... 이것은 과연 애도인가 선견지명인것인가.

 

 


 

 

참 아이러니하게도 심각한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마지막으로 보고 나오면서 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순간의 광경이 지구의 건강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라 할 순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꽤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보고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망해버린(?) 지구를 상상하며 이 행성을 애도 했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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