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드라마 2013.02.14. 개봉 122분 미국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데이비드 O. 러셀 관객수129,554명

수상정보 22회 MTV영화제(최고의 남자배우상, 최고의 여자배우상, 최고의 키스상)

8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여우주연상)펼쳐보기

내용 눈치없는 이.남.자. 정말 답이 없다?! 연애세포 완전 파괴, 복... 줄거리더보기

 

 

 

연애는 누구에게나 복잡하고 힘들다. 세상에 연애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거다.

어떤 연애 상대를 만나던 제 아무리 '소울메이트'라고 자칭 할 만큼 맘이 잘 맞는 상대를 만나 불꽃 터지는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할지라도 서로가 살아온 다른 방식은 늘 존재하고 그 다른 부분을 맞춰 나가는데

크고 작은 트러블이 분명히 발생하는 것이 연애. 이렇게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연애는 맞춰나갈게

너무나도 많은 복잡한 구조의 관계인데 만약 내가 또라이라면? 내게 치명적 정신적 결함이 있다면?

그런 나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 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정신적 결함을 갖고 있는 미워할 수 없는 또라이들의 로맨스를 담은 영화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트라우마를 갖고있다.

극중 팻(브래들리 쿠퍼)은 아내 '니키'의 충격적인 외도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아내가 동료 교사와

함께 집에서 샤워하는 장면을 목격) 그 트라우마로 분노조절 장애를 얻은 후, 아내와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아내를 잊지 못한다.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엄청난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인해 회사의 모든 동료들과 돌아가며 관계를 가졌고 결국 회사에서 해고 당한다.

 

이렇게 심각한 멘탈 붕괴를 겪은 정신 나간(?) 두 캐릭터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듯 말 듯,

둘의 아슬아슬한 케미를 보여주는 로맨스 영화.

 

병원에서 한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팻은 퇴원 허가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오랜 친구의

저녁식사에 초대받게 된다. 그리고 친구는 팻에게 처제 '티파니'에 대해 설명하며 절대로 그녀 앞에서

트라우마를 상기 시킬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을것을 당부하는데 불구하고

팻은 그만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그녀의 죽은 남편 '토미'의 이름을 언급하며 대놓고 트라우마에 대해

거침없이 질문 해버린다.

 

 

 

 

 

 

 

 

그렇게 살얼음판 걷는 분위기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는데

우연히 티파니가 팻에게 "무슨 약 먹어요?"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처음으로 둘은 둘만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웃음을 띈다.

 

 

 

 

 

 

 

그러나 그러기도 잠시, 감정기복이 왔다갔다 심각한 티파니는 이내

저녁 식사 자리가 피곤하다며 집으로 돌아 가겠다고 난데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팻에게 자신을 데려다 주겠냐고 물어본다.

 

팻이 티파니를 데려다 주던 중 티파니는 결국 '제버릇' 고치지 못하고 어느새 또 팻을 꼬시려는 엉뚱한

수작을 걸기 시작하는데 팻은 자신은 이미 결혼한 사람이라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자 티파니는 자신 또한 결혼했다고 말하지만 팻은 또 한번 여기서 티파니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버린다.

"아니오, 당신은 남편이 죽었잖아요.." 그 말을 들은 티파니는 또 한번 트라우마에 무너지게 되고

팻에게 잠시 기대어 안기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개를 들더니 당당히 따귀 한대를 갈겨버린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티파니가 화내던 여러 수많은 장면들을 좋아한다.

아침 조깅하면서 마주친 티파니와 팻은 어제밤의 일에 대해 옥신각신 하다가

팻의 말 실수로인해 티파니가 폭발하는 장면이다. (그러고 보면 팻은 늘 말실수를 저질렀던 것 같다.)

 

"There's a part of me. that's sloppy and dirty, 

but I like that with all the other parts of myself."

 

"그게 나고 나는 내 모든 부분을 사랑해요."

 

 

 

 

 

 

 

저 장면을 보고 한동안 카카오 상태 메시지 명을 "i love all parts of my self"로 해놨던 적이 있다.

비록 나는 Slut 이었지만 그런 내 모습 마저 난 숨김없이 사랑해. 넌 그럴 수 있어? 가당키나 하니?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반해 오랫동안 계속 떠올랐던 대사.

 

이 후, 팻과 티파니가 할로윈날 만나 식사를 하게 되고 혹여나 누군가 데이트로 오해 할것을 계산해,

철저히 '데이트 스럽지 않은 메뉴' 씨리얼을 당당하게 주문하고 그런 팻 을 보고 티파니 역시도 홍차를 주문한다.

팻의 목적은 그저 옛 와이프와 어떻게 다시 재회 할 수 있을지를 티파니를 통해 도움을 받고 싶었고

티파니 역시도 그런 팻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약속한 만남이었지만 이내 또다시 싸움으로 번져버린 만남.

 

티파니는 자신의 트라우마 이후의 문란했던 이야기들을 팻에게 여과없이 털어놓았고 팻은 자기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나서 팻의 와이프 '니키'에 대한 얘길 하던 중 티파니의 친언니

'베로니카'가 혹시 니키에게 자신(팻)에 대한 어떠한 얘기를 전달했는지 궁금해 했고 티파니는

"네 일단은 쿨하다고 했어요"라고 대답해주었지만 팻은 용납하기 어려워 한다.

"그럼 쿨하지 않은 점도 있었단 건가?" 라고 되묻고 티파니는 "댁이 좀 그렇잖아요."라고 대답해준다.

(즉, 너가 좀 아팠잖아. 그동안. 정상적이지 않았잖아) 나름 썩 괜찮은 칭찬 이란걸 말해주지만 팻은

표정을 확 구겨버린다. "당신 나랑 비슷해요"라는 티파니의 말에 팻은 더욱 더 납득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선을 긋는 행동을 취한다. 내가 뭘? 난 전혀 너 같진 않은데, 설마 우리가 동급?"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두 또라이 끼리 '누가 더 또라이냐'를 두고 한치 양보 없이 싸우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니,  냉정히 따지면 사실 자존심 싸움이라기보다 전적으로 '팻'의 잘못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걸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털어 놓은 그녀를 무의식 적으로 '자신과는 또 다른 정신병자'

취급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본인은 마치 정신병에 전혀 걸리지 않은 사람인것 처럼.

 

그 위선적인 모습에 한 껏 비위상한 티파니는 멋있게 쌍뻐큐를 날려주고 자리를 떠난다.

(짝짝짝)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팻의 모습에 또 한차례 큰 상처를 받아버린 티파니는 뒤쫒아온 팻을 향해 

더욱 더 큰 소리로 분노한다. "도와주려 했는데 날 평가해? 넌 아주 나쁜 자식이야!"

 

똑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팻에게 동정 어린 마음을 느끼고 도움을 선처 해 주려고 했지만

말 한마디로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준 팻에게 일말의 동정심 마저 사라진 티파니는 악담을 퍼부어 버린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감이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두 또라이의 캐릭터도 물론이지만

같은 아픔을 느꼈던 사람들 끼리도 서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위선적인 행동을 하며

동시에 자신과 차별을 두는 행위를 함으로써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는

인간의 이기심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선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부딪히는 티파니라는 캐릭터는말 그대로 걸 크러쉬 그 자체.

 

자기 자신의 그 어떤 모습도 회피 하지 않으려는 티파니.

그에 비해 자기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팻의 큰 차이랄까.

 

티파니는 팻의 편지를 니키에게 전달해주는 조건으로 자신과 함께 댄스 경연에

나가줄것을 부탁한다. 썩 내키지 않지만 니키에게 편지를 전달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재회 할 수만 있다면... 그 희망 하나로 팻은 티파니의 조건을 수락하고 그렇게 둘은

댄스 경연을 위한 춤 연습에 매진하게 된다.

 

여기서 그럼 이 영화의 제목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이라는 제목이 갖는 의미가 뭘까.

 

실버라이닝은 "구름의 흰 가장자리"라는 뜻으로 구름 뒤에 태양이 숨어 있는

한 줄기의 빛을 의미하고 플레이북은 미식축구에서 쓰는 "작전노트"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희망을 위한 작전 노트. '한줄기 희망을 위한 노트'라고 해석 된다. 

 

팻과 티파니의 한 줄기 희망을 위한 노트.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과도 같은 댄스 경연대회가 과연 한줄기 희망이 되어줄까.

 

여러번 매력적인 두 "도라이"라는 표현을 써서 강조했지만 사실은 그저 상처받은 

평범한 사람들일뿐.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쉽진 않지만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따뜻하게

들의 삶을 천천히 변화시켜 나가는 장면들이 진정 진정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로맨스에 가까운 영화였다. 

 

 

 

 

 

 

 

 

 

 

 

 

사람은 가난하고 절박한 순간에 되려 멍청한 짓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서 멍청한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고 했다.

 

 

실제로 하버드에서 연구해본 바 있는 논문 이라고 한다.

사람이 여유가 없고 절박한 순간에 일시적으로 아이큐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력이 흐려져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결국 멍청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전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어려움에 빠뜨리고 그것이 쌓여서

결국 인생 전체가 암울한 그림자에 드리우게 되는 지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저 말을 "연애의 참견"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너튜브로 다시보기 하면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논문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나로써는 매우 크게 공감이 갔다.

 

 

내 얘긴가? 그래서 내가 멍청하게살아온건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혹시, 똥인지 된장인지 지금도 꼭 찍어 먹어봐야만 알고 왠지 나는 옛날에 저질렀던 실수를

지금도 반복하고 후회했던 결정이나 실수들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은 오랜시간동안 절박하고 척박한 환경속에서 문제 해결 방법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져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그랬던 적이 매우 많다.

'무기력'과 '우울'은 늘 내 옆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부정적 경험은 또 부정을 낳고, 트라우마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만들기에.

병이 또 병을 낳는것 처럼. 

 

그러나 실제로도 아이큐가 떨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꽤 놀랍다.

머리가 정말로 멍청해지는거였구나.

 

 

 

 

 

 

 

코미디, 뮤지컬 2007.04.12. 개봉 129분 일본 15세 관람가

감독나카시마 테츠야관객수23,546명수상정보

11회 판타지아 영화제(슈발누아경쟁 - 최고 작품상)1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여우주연상)

3회 독일 아시아 영화제(인기상영작)펼쳐보기

내용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카가와 ... 줄거리더보기

 

 

가난과 절박함은 애정결핍과도 커다란 관련성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 전체를 우울함의 구더기로 빠뜨린 영화 속 캐릭터 마츠코가 문득 생각이 났다.

바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이라는 일본영화였는데 그 주인공이야 말로 절박한 순간마다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송두리째 갉아먹어버린, 극단적이긴 하지만

인간은 "가난하고 절박한 순간에 되려 멍청한 짓을 한다" 라는 말의 적절한 예시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순간의 충격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한 인간의 끝도 없는 불행과 우울함의 정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일본 영화 중 내가 본 최고의 비급 정서 무비. 그러나 전혀 비급이 아닌 마츠코의 삶의 이야기.

 

"그렇게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질기도록 끝나지 않는 마츠코의 인생.

 

사실 맨 처음에 보았을때는 정말로 가장 혐오스런 영화라고 생각했고

두번째로 보았을때는 너무나 슬프기 그지없었다.

정말 최악으로 치닫는 그녀의 일생을 아무렇지 않은듯 코믹한 연출로 그려나가는 이 영화가

굉장히 기괴하게 느껴져, 처음 감상했을 땐 일본의 전형적인 B급 병맛 코믹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두번째로 다시 본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슬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희화하고 있었다.

아마 이 영화가 쉽게 와닿을수 없었던건 같은 인간으로써 그녀를 동정하고 연민하기엔 그녀의 삶이 너무나 파격적이었고

어쩌면 너무 열심히 인생을 살다간 그녀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매우 불편했던게 아닐까 싶다.

다시 본 이 영화에서 마츠코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며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사랑스러웠고 열정적이면서 아름다운,

그리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여자였다.

 

 

 

 

 

 

그 영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앞서 말한대로 전형적인 "불행이 불행을 낳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녀의 불행은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관심받지 못한 애정결핍으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그작은 결핍이 나아가서는 어느새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버릴 정도의 큰 괴물이 되어 버린다.

 

 

 

 

 

 

 

 

 

포스터에 보이는것 처럼 그녀는 일생동안 여러 남자를 만나고 여러 직업을 가진다.

교사로 시작했던 그녀의 인생이 어느순간 성매매 업소까지 전전하면서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안타깝고 그녀가 가엽게 느껴졌던 부분은 그녀는 여러 남자를 사귀면서 늘상 똑같이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거나 버림받기를 반복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 받는것 보다 맞고서라도 함께 살아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사랑에도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을 그 데이트 폭력의 대상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내내 얽메이며 집착하는 부분이다.

 

마츠코가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이 애정결핍이 되어 결국 그녀 인생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까지의

처절한 과정들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Happy wedesday 노래를 부르는 마츠코

 

 

 

마츠코의 순수한 마음, 끊임없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밝아지고 행복해 하던 마츠코, 어떤 일을 하든 늘 열정적이었던 그녀. 

이 모든 모습에서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고 동시에 사랑에 모든것에 올인하는

그녀의 열정과 순수함이 아깝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앞서 멍청한 선택을 늘 반복하는 이유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츠코가 생각이 나서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그녀를 멍청한 선택으로 자기 인생을 망쳐버린 여자라고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진 않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어느 한켠에 자기 자신만이 아는

깊은 결핍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 연속된 선택은 결국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쳐 버리기 때문에...

그 과정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로 '마츠코'라는 영화속 캐릭터가 생각이 난거였지만

그냥 멍청한 선택으로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망쳐버렸다. 라고 하기에

그녀는 그저 너무 순수했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녀는 "괜찮아요"를 연발하며 되려 밝은 웃음과 신나고 통통 튀는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좌절스러운 상황들을 매우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마츠코는 어째서 왜 건강한 사랑을 단 한번도 찾을 수가 없었을까?

원래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고도 했지만 가족도 친구도 등진채 살아가던 마츠코의 존재는

'외로움' 그 자체였다. 아버지로부터 생성된 애정결핍이 마츠코의 마음속엔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었고 

그것을 채우는 그녀만의 방법은 너무 혹독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애정에 대한 그리움이나 결핍의 감정을 강하게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무모한 행동과 순간순간의 처치들이, 그저 비정상적이다고 손가락질 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순수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마츠코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녀가 저렇게까지 지독하게 외로워야하는 이유가 뭐지?

 

 

 

 

 

 

 

 

 

스스로의 결핍을 타인에게서 찾는 사랑은 어찌됐든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한다.

마츠코가 건강한 사랑을 영원히 하지 못했던 첫번째 이유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낮은 자존감과 스스로를 아끼는 방법을 몰랐던 마츠코.

그렇지만 나는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했던 마츠코에게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도않다.

그녀는 자유로웠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들을 바꿔놓을 만큼 '사랑'이란 가치가 그녀에게는 절대적이고

커다란 영향력을 쥔 무언가였다면 누가 그녀에게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늘 착하고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시련일수 밖에 없는걸까?

어쨌든 연속된 좌절의 시간속에서 똑부러지게 이성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랜 좌절과 시련은 사람을 한순간에 멍청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사실 인 것 같다.

과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증명된 바 있다는게 참 흥미로운 사실이면서도

우리가 어려운 순간에 되려 이성적이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랄까.

 

멍청한 선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그 우울의 굴레에 영원히 빠져 버리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결핍의 구멍을 채우는건 누구에게든 참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이용하려드는 악한 사람들은 늘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에.

최소한 그로부터는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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