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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이야기/영화_드라마_미디어

다큐멘터리 영화 <BORN TO BE FREE, 2016 본 투 비 프리 : 벨루가 고래들 이야기> - 그저 자유롭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

by Fancy_sailor 2022. 1. 3.

 

 

개요

BORN TO BE FREE is a revelatory investigation by three intrepid free-diving journalists, Gaya, Tanya and Julia, into the global trade in wild sea mammals. Their journey takes us to the most remote corners of Russia and witnesses, for the very first time, the shocking treatment that whales, dolphins and walruses are subjected to and discovers the corruption at the heart of this cruel international business.

 

BORN TO FREE는 가야, 타냐, 줄리아 등 세 명의 대담한 자유 다이빙 언론인이 야생 해양 포유류의 세계 무역에 대해 조사한 내용입니다. 그들의 여정은 우리를 러시아의 가장 외딴 구석으로 데려가고 고래, 돌고래, 바다코끼리의 충격적인 처우를 목격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국제 비즈니스의 핵심에서 부패를 발견하게 됩니다.

 

 


 

 

 

 

2013년 프리 다이버인 가야, 타냐, 줄리아는 포획되어 사라진 18마리의 벨루가의 흔적을 찾아 쫓아간다. 그 과정에서 벨루가를 포획하고 사육하는 처참한 방식들을 목격하게되고 인간의 비즈니스로 인해 잔인하게 학대 당하고 희생되는 벨루가들,  또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부패한 시스템들의 민낯을 파헤치고 고발한다. 한낱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그들은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원초적 자유를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BORN TO BE FREE" "자유로워지기 위해 태어나다" 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들은 그저 자연에서 태어난 순수한 존재들일 뿐인데 말이다.

 

 

 

 

 

국제 프리 다이빙 챔피언쉽의 최초 여성 우승자인 '줄리아'는 종종 백해(러시아유럽권 북부, 바렌츠해로 열려있는 바다)로 나가 벨루가들과 함께 수영을 했었는데 어느날 그녀와 함께 수영을 했던 벨루가 2마리가 결국 돌고래 아쿠아리움으로 팔려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과학 연구센터였던 곳은 점점 돌고래 산업의 한 부분이 되어갔고 그들은 새로운 벨루가들을 포획하여 링을 통과하기, 공을 가져오기 등과 같은 묘기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벨루가들과 함께 수영하는 체험을 하기위해서 관광객들은 돈을 지불했고 그렇게 과학연구소는 점점 큰 사업의 장으로 변모해갔다. 

 

러시아에서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벨루가들은 여러 임시 수용소를 거쳐야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벨루가들이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결국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살아남게된 벨루가 몇마리만이 아쿠아리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이빙 챔피언쉽의 최초 여성 우승자 '줄리아'의 말에 의하면 벨루가들은 주로 북극해에 서식하는 동물로써 차가운 온도의 물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잘 관리가 되지 않는 임시 수용소의 높은 물 온도로 인해서 벨루가들이 화상을 입거나 또는 피부병을 얻는 등 동물 학대를 의심해볼 수 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과 시스템들이 벨루가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Utrish Marine station에 잡혀있는 벨루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Kim Basinger 라는 배우에 의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그녀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직접 벨루가들을 자연으로 다시 풀어주길 바란다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이 사건이후, 그녀들은 제일 먼저 Utrish로 가서 벨루가들의 흔적을 쫓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7마리의 벨루가들이 포획되어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한다. 

 

 

 

 

이곳  Utrish의 사육사의 말에 따르면 주로 아직 덜 성장한 어린 벨루가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어린 벨루가를 교육하고 길들이는 것이 다 큰 성인 벨루가를 길들이는 것 보다 훨씬 쉽기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애초에 흰색을 띄는 성체 벨루가는 통관료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주로 아직 덜 성숙한 회색빛을 띄는 아기 벨루가들을 잡아서 각국의 아쿠아리움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벨루가가 포획되고부터 임시수용소로 거치는 과정까지 그 통관 현장을 지켜보며 촬영하고 기록을 남겼던 수의사 "Tagiltsev"를 만나 자료를 얻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앞서도 말했듯이 흰 벨루가의 통관료가 너무 비싸 주로 어린 회색 벨루가들을 포획하며, 그물로 채집하는 과정에서 종종 이미 사망해버린 벨루가가 발견되곤 한다고. 사망한 벨루가의 배를 갈라 부검을 해본 결과, 벨루가의 기관지 쪽에서 물이 흘러나왔고 아마도 예상해보기를, 어린 벨루가가 그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다가 그물망이 목에 걸려 익사된 걸로 보인다는 내용 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이 벨루가 포획을 진두지휘하는 감독관이 염려하는 부분은 오로지 포획 물량을 다 채울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부분 뿐이었다. 그들에게 벨루가 포획은 그저 돈을 벌어야 하는 수단의 일부이며 사업일 뿐이다.

 


 

 

 

 

포획된 아이들은 각국의 아쿠아리움에 도착하기 전부터 미리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생태계의 감옥 안에서 살아있는게 아닌, 난생 처음 죽은 물고기 먹는 방법에 익숙해지도록 강요당한다. 그 장면이 너무나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인간들 못지않은 고도의 사회적 동물인 벨루가들은 실제로도 다양한 소리로 의사소통 할 만큼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데,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부모를 포함한 그들의 이모, 삼촌들과 집단을 이루며 사회성을 배우고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어린 벨루가들이 그들 세계의 사회성을 채 배우기도 전에 인간들에게 포획 당하고, 그들의 활동 반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좁은 아쿠아리움에서 인간에게 길들여 지면서 많은 멘탈적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기존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벨루가들에 비해 짧은 생을 살아간다. 얼핏 보기에는 그들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모가 늘 웃고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쿠아리움에서 살아가는 벨루가 고래들이 마치 행복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지만, 사실은 크게 고통받고 있음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럼에도 왜, 벨루가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는 이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연방 청사 미국 법원에 출석하던 법률 고문의 말에 의하면 해양포유류보호법의 모든 기준을 적용했다가 다시 번복하게 된 것은 벨루가 고래의 개체군이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도대체 어째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가? 라는 물음에 아주 간단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 이유는 멸종위기종 목록에 없기 때문입니다." 

 

 

 

 

 

쥴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This is their world, their life, and we can only come for a visit.  Freedom for modern people lies in seeing themselves as the kings of nature. I think man is not a king. Man is a part of it all. Man has no right to destroy the harmony of this world."

 

"여기는 그들의 세계, 그들의 삶이고, 우리는 오직 방문 하는 것이다. 현대인의 자유는 자신을 자연의 왕으로 보는 데 있습니다. 나는 인간이 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든 것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조화를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벨루가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들을 가족의 품에서 빼앗아 오는 것도 모자라 학대하며,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고 그저 훈련시키기를 반복하면서 인간의 산업 수단으로써만 이용하는 이 동물 산업 시스템에 많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과연 이것을 단순히 약육강식의 흐름이며, 또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인간의 당연한 능력이자 권리, 자연의 섭리라는 뻔뻔한 이름으로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사고'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비롯되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깊이 있는 생각과 통찰을 하는 인간이라면 자연의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있는 '인간'이 가진 지능과 능력을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 절대로 당연한 권리이자 능력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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