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개발도서를 매우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매우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있다. 요즘의 자기개발 도서들은 그냥 성공한 누군가가 자기 인생 자서전 쓰는게 아니고 뭐냐. 싶은 생각 말이다. 물론 자신의 우여곡절 인생을 나열하고 어떻게 극복하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썰을 풀면서 그 안에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치만 그냥 성공한 누군가의 '책팔이'인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sns같은 플랫폼에서 인기를 크게 끌어서 작가가 된다던지 하는 그런 사례들이 점점 많기 때문에 자기개발도서를 볼 때 이건 또 어떤 류의 자기개발도서인가? 싶은 생각에 약간 검열의 눈으로 지긋이 볼 때가 많다. 이 책도 굉장히 시선을 끌 만한, 눈길을 끌어당길 만한 카피를 적어놓았다. "하루 14알 정신과 약 먹으며 자본주의에서 상위 0.1%가 된 악인의 성공 쿠데타." 일단 여기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단연 "하루 14알의 정신과 약" 이라는 거다. 14알? 굉장히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있다고 해도 6-7알 정도 매일 먹었던 사람은 본 적 있는데 14알이면 치사량 아닌가 싶을 수준이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영화 '조커'에서도 그 미치광이 조커가 먹는 정신 질환 약도 7알 정도인데 이 분은 자그마치 14알을 먹으면서 살아가신단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악인'이 되라 말해주고 있다. '악인'. 이 책에서 설명하는 '악인'이란 뭘까. 

 

 

첫번째로 이 책은 자신에게 분노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는 곧 성잘할 에너지 자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치면 나는 굉장히 자원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많은 분노가 내제되어 있을 수록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과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다. 라는 식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책에서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첫번째 자기개발 방법으로 '분노일기'를 쓰라는 내용이 있었다. 사실 나도 그 날 하루에 대한 나의 감정과 느낌, 짧은 몇 줄 평 정도로 핸드폰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주로 내가 하던 방식은 Bad things와 Good things를 나누어 적는 것이었다. 일단은 오늘 하루 별로였던 일이나 사건, 내 감정에 대해 먼저 쓴다. 그 다음으로 오늘 하루 좋았던 것들 (매우 사소한 부분 까지도) 몇가지를 쓰는 것이다. Good things를 나중에 썼던 이유는 그래도 긍정적인 마무리를 하고싶었던 마음에서 였다.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는 되려 독자들에게 그날의 분노를 5줄 이상 매일 꼭 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분노를 적어내려가며 본인이 진짜 원하는 욕구가 뭔지 찾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만약 오늘 하루 나 자신이 게을러서 분노를 느꼈다면 그 내용을 고스란히 적고 나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적극 분노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감사인사와는 아주 다른 부분이다. 대게 오늘 하루에 내가 무엇에 감사함을 느꼈느냐에 대해서 써라는 식의 말은 많다. 저자 역시도 원래는 아무리 별 볼일 없는 하루를 보냈다해도 그날 마신 커피 한잔이 맛있었으면 된거잖아. 라는 식의 감사 인사를 스스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그냥 자기 안일함, 합리화에 불과한 멍청한 짓이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했다. 물론, 감사일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하려거든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감사만 하라고 추천하고 있다. 가령 내가 사는 곳 근처는 산책하기가 참 좋은 곳이야. 등등 말이다. 본인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섣불리 '합리화'를 저지르는 실수를 범할까봐 절대, 감사일기는 쓰지 말고 분노일기를 써라. 그것이 원동력이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부분이 인상깊은 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분노일기와 감사일기를 동시에 쓰고 있었던 샘이다. 사실 매일 매일 부정적인 글을 5줄 이상 쓰는게 정말 정신건강에 괜찮은걸까? 라는 의아함과 궁금증이 들었다. 뭐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그러니까, 감사일기를 쓰든 분노일기를 쓰든 원래의 목적에 맞는 의도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문제되지 않는 것 아닐까. 제 아무리 삶의 긍정적인 태도를 갖겠다고 감사일기를 써내려 간들, 그것이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면 무슨 좋은 영향력이 있겠으며 분노일기도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 기분나빴던 일화나 감정에 대해 줄줄 써내려 가는것이 혹시나 그저 그런 화풀이에 지나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영양가가 있겠느냔 말이다. 저자는 사실 감사일기 쓰는것을 추천하지 않고 있지만 나는 이 두가지의 긍정적인 영향에 부합하는, 어긋나지 않는 글쓰기를 한다면 둘 다 써도 괜찮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감사일기는 절대 자위가 되어서는 안되고, 분노일기는 절대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분노일기의 목적은 나의 분노 원인을 찾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것 그리고 내 삶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내게 방해되는 모든것들 또한 (사물이든 사람이든 할 것 없이) 샅샅이 찾아내서 숙청(?) 하고자 하는 목적에 있다. 반대로 감사일기는 오늘 하루 내게 일어난 긍정적인 일이나 변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으며 그 감사한 마음을 새겨 둘 수 있다는 부분이 장점인 것 같다. 아무튼, 제 목적에 맞게만 쓴다면 감사일기든 분노일기든 다 괜찮은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저자는 좀 더 독자들에게 '공격성'을 갖추기 기대 한다는 느낌이었다.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챕터들도 몇몇 구간 있었지만 미친 경쟁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공격력은 갖추고 있어야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들면서 개인적으로는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절대 오해하는사람이 없길 바란다. 저자는 건강한? 개성있는 '악인'이 되길 바라는거지 무분별한 이기주의로 똘똘뭉친 '빌런'이 되라고 추천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사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한 문장도 몇몇군데 있었다. "내가 가스라이팅 당할 것 같다면 차라리 행하는게 낫다"라는 식의 문장이 있었는데 나는 이 말을 이해하면서도  동의하긴 어려운 입장이다. 내가 세상에서 끔찍하게 싫어하는것이 바로 '내로남불' 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철없는 햇병아리같은 멘탈의 소유자가 이 책을 잘못 읽는다면 나쁘게 해석할 요소도 분명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유용하고 좋은 도구들도 누군가는 가장 나쁜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듯이, (본래의 목적과 의도가 변질된다는 의미) 책이라고 예외는 없으니 말이다. 혹여나 그를 '잘못' 추종하는 독자들은 부디 없길 바란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공격성을 곧이 곧대로 남에게 해를 끼쳐도 상관없다. 라는 식으로 머릿속에 입력하면 큰 오류가 될 것이다.

 

 

무튼 책 '카르마'를 읽은 사람으로써 남에게 의도적으로 행한 '악'은 분명히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모든 분노의 근원과 원인을 내게서 찾고, 내 문제점을 전투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내게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이 있다면은 반드시 숙청하라는 것이 깔끔한 정리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느슨해진 멘탈 상태에 꽤나 탄탄한 긴장감과 영감을 불어 줄만한 재밌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자기개발 도서에 비해서도 쏠쏠한 실질적 팁들, 방법들에 대해서도 많이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제 인생 썰 풀다 간 느낌 보다는 훨씬 영양가 있는 글들이 있었지 않나. 라고 평가해본다.

 

 

그리고 '돌아갈 곳을 만들지 말라'는 내용 역시 기억에 남는 부분인데, 그 순간 문득 이러한 생각이 스쳐갔다. 사실 나는 지금, 돌아갈 자리를 열심히 꾸리기 위해 그것을 다듬고 노력하는 중인건가? 라는 생각이 말이다. 이 부분도 굉장히 호불호가 나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플랜B를 구성하지 말아라. 라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플랜B가 없이 살아온 행적이 있었고 저자처럼 공격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몰라도 무모하기만 하고, 대책이 없었다. 내 모든 노빠꾸 노선들은 다 실패였었고 상처만 남았기에, 다소 저 글은 내게 무서운 문장이다. 돌아보지 말고 그냥 번지점프해!! 라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물론 돌아갈 자리가 없을 때, 그만큼 절박한 환경으로 나를 몰아넣을 때 즉 한계로 몰아넣을 때 인간의 잠재된 능력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동의하는 바 이지만, 개개인의 성격적 특성에 따라 누군가는 따라해도 좋을 법 하고 누군가는 괜히 그렇게 했다가 핵 낭패를 당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사실 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에게 좀 더 '여유'가 있는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 여유는 우리에게 숨 돌릴 틈을 주고, 그 휴식은 생각을 더 유연하게 한다고 본다. 사실 책에서 저자가 종종 '펜트하우스'에서 나를 바라보기 시점에 대해 설명 하는데, 사실 바로 그 객관적으로 거시적인 시야로 나의 상황을 관찰하는 태도가 바로 나는 '여유'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같은 사람은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면서도 그런 '메타인지'가 동시에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기가 오히려 스스로 굉장히 큰 생산성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지만 보통의 '판단력' 이라는건,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건강한 판단 또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므로 여유가 없고 빡빡한 상황,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인간의 판단력이 극도로 떨어지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극한의 상황이 자신을 매우 성장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되려 너무 큰 부담이 되어 공격력은 커녕 반대로 움츠러 드는 인간도 있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회사 대표에게 뺨을 맞아가며, 그리고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회사에서 자리를 버텨낸 저자는 대단하다면 정말 가히 대단한 사람이며, 다른 누군가가 봤을 때는 저렇게 참아내는것이 과연 정신건강에 이로운 건가?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는게 맞는거지. 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말이다. 정답이 뭐가 있을까. 모든 자기개발도서에서 제공하는 지침들을, 컴퓨터 소프트웨어 마냥 내 몸에 다 셋업해보고 안맞으면 다시 삭제. 이것이 단 몇분 몇초만에 이루어지면 너무 편안하겠지만 인간은 그럴수가 없으니, 그래도 각자 살아온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내게 잘 맞을 만한 지침들을 적용해보고 천천히 실험해보는게 옳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역시도 본인에게 맞지 않았던 흔한 자기 개발 지침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부분이 등장하니 말이다. (아침 일찍 기상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한 비판) 결국 내게 맞는 지침서는 스스로 알아서들 만들어 나야겠지만 이런 자기개발 도서들은 그나마 아예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혹은 당장 무기력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혹시 이런 방법은 어때, 나는 이렇게 했는데 이게 좋더라. 라고 몇가지 방법과 아이디어들을 추천해주는거니, 실행해보고 내게 도움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리면 된다. 저자 역시도 많은 자기개발도서들이 주장하는 청소하기와 아침형 인간이 되라는 부분을 열심히 시행해봤지만 자기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것 처럼, 일단 자기개발에 대한 바탕이나 베이스가 없다면 뭐든 시도해보고 아닌 것들을 가려내는 프로세스도 성장중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자기개발 도서를 읽는것은, 그것들을 신봉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의 경험과 이야기가 내게 일말의 영감과 작은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흥미롭고 매력적인 자기개발 도서는, 분명히 그러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많은 자기개발도서들 사이에서 내게 딱 걸맞은, 그런 주옥같은 책을 가려내고 찾기 위해서 그 많은 사기성 짙은 책들에게 배신당하면서도 또 읽는 것 아닐까. 배신의 경험도 있어야만, 진짜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생기니까 말이다. 아무튼 뭐, 이 책이 진국이다 아니다를 내가 논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이것이 그냥 내가 자기 개발도서를 읽을 때의 내 마인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저자가 말하는 '공격성'이나 다른 여러 자기개발을 위한 팁들은 굉장히 대한민국 현실에 잘 어울리는 방법들이 아니었을 까 생각한다. 그냥 흔히 생각하는 '아름다운' 방법들만을 제시하는 지침서가 아니기에, 그 부분이 흥미로운 책이다.

 

 

 

 

 

 

 

요즘 '용서' 라는 키워드에 조금 꽂혀있다. 나는 종교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종교에서도 그렇고 심리학자들도 그렇고 모두가 하나같이 '원수를 용서하라' 라는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사실 굉장히 익숙하지만 어찌 하나같이 저런 답답한 소릴 하는걸까 그냥 호구가 되라는 소리 아닌가. 라고 의아한적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이 말이 전달하는 의미와 깊이를 몸소 느끼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온전히 와닿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냥 흔히 말하는 '져주는게 이기는거다' 같은, 그런 소리 아니야? 즉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자가 되어라. 따위의 의미로써 주로 해석했었는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말 역시도 맞는 말이지만 '카르마'에서 설명하는 이 문장은 좀 더 추가적인 다른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카르마가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줄 때. 쉽게 말해서 의도적인 어떤 나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심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관계 안에서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 피드백이 발생 했을 때 '카르마'가 발생한다 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카르마는 언젠가 돌고 돌아서 내가 행한 나쁜 행동의 결과가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용서'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누군가 내게 몹씁짓을 했다고 치자. 그로인해 나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고통에 신음했다. 여기서 나의 행동은 두갈레로 나뉜다. 내가 받은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고 다시 나 자신을 다 잡고 일어서는데 초점을 맞추는 사람, 또는 나에게 그런 상처를 준 사람을 끊임없이 증오하고 미워하며 언젠가 복수를 하겠다며 칼날을 가는 사람. 누가봐도 전자의 경우가 건전하고 건강한 행동이라고 느끼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피해를 준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다. 물론 그 시간 역시도 어쩌면 필요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찌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나. 단,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분노를 느끼는것은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지만 그 마음을 질질 끌고 오랜시간 동안 나를 더욱 더 고통에 빠지게 하느냐 혹은 빨리 그 고통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느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카르마'에서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은, 그 원수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그 감정을 오래도록 내 마음에 품고 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카르마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내가 상대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나 역시 똑같은 행동으로,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 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도 어느정도 정당하긴 하지만 정도에 따라서 이 말이 적용이 되기도하며 때로는 부적절하기도 하다. 

 

 

어느 누군가 내게 악심을 품고 피해를 줬을 때, 나 역시 똑같은 행위로 되갚아 준다면 나 역시도 나쁜 짓을 행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이 받을 카르마는 나도 똑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내게도 카르마가 발생하게 되버린다. 즉 가장 통쾌한 복수는 그냥 나 자신이 더 건강하고 발전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거다. 즉 죄 값을 받는 사람은 굳이 내가 나서서 똑같은 복수를 행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멸할 것이고 나는 멀리 저만치서 그 사람이 자멸하는, 혹은 파멸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아, 물론 망해라, 자멸해라 라는 식의 앙심을 내 맘속에 품고 있는 것 역시도 카르마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신경 쓰지 않고' 내 할일에 집중하고 내 삶을 열심히 사는 것, 그렇게 한다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원리 아닐까. 처음에는 나 역시도 이런 설명이 굉장히 종교적인 해석처럼 다가왔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니, 놀랍게도 과학적으로 이런 일들이 원리원칙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내가 타고 태어난 환경, 내가 결정 지을 수 없는 운명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카르마'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즉 내가 어떤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랄것이며 어떤 경험들을 하고 나중에 어떤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등등 내가 태어나기 전 부터 꽤 많은 옵션들을 미리 결정하고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가 바로 '카르마'이며, 내가 전생에 해소 하지 못했던, 혹은 그 전생에 지었던 죄나 업보 등등의 카르마를 해결 하기 위해서 그 카르마와 연관된 인물과 이번 생에 어떠한 또 다른 밀접한 관계로써 다시 연을 맺게 된다 라는 이야기였다. 여기서부터 꽤나 불교 정서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아예 전생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허무맹랑하거나 근거없는 실망스러운 내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생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느정도 호기심을 갖고있고 아예 불신하지는 않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결국 '카르마'라는 단어의 근원 자체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영적인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지어 지므로,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모든것이, 모든 굵직한 운명들이 카르마에 의해 이미 결정된 채로 태어난다면 카르마 라는 것은 결국 '결정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냐. 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책에서는 결정론 보다는 인과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운명이 결정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우리의 삶을 개척할 수 없다. 라고 말할 순 없다. 애초에 '카르마'를 해소한다는 거는, 내게 주어진 운명과 인연, 관계들 속에서 더 이상의 카르마를 발생시키지 않고 소멸시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현상이 카르마의 해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더 나은 건강한 삶은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건에는 이유와 원인이 있고 그것을 단순 결정론으로 단정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 의지와 상관 없는 불행에 대한 것도 '카르마'에 의한 것인가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예를들면 전쟁이나, 사고, 자연재해 등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공업에 의한 '카르마'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에 비해 많은 자연재해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인류가  피해 입는 것 역시도,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많은 피해들이 예를들면 환경파괴 같은 것들이 카르마로 발생하여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는데, 어찌보면 내 개인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써 내가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카르마가 있기에 모두가 함께 그 카르마의 영향을 받는다. 라는 독특한 개념의 이야기였다. 

 

 

예를들어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도 해당되지 않을까.  누군가 산을 깎아 무리하게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높은 고층 아파트를 짓도록 하였을 때 이 경우에 직접적으로 나쁜 짓을 행한 사람은 아마 그 산을 깎아서 아파트를 짓자. 라는 결정적 역할을 한 국회의원일 것이고, 그리고 그 아파트를 지은 인부들은 시킨 대로 한 결과지만 어쨌거나 산을 파괴하고 아파트를 짓는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는 입주민들 역시도, 직접적인 업을 행하진 않았지만 그 곳에 거주함으로써 환경 파괴에 간접적으로 행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나쁜 기업의 제품을 잘 모르고 소비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예를들어 가학적인 동물 실험으로 제품을 생산해내는 화장품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역시도 간접적으로 동물 학대에 동조하는 것이 되 버린 것 처럼) 그리고 또 이런것과도 연관지을 수 있는 부분일지는 모르겠으나, 부모나 조상이 세상에 많은 죄와 업보를 저질렀을 때 그 자손에게까지 악영향이 가는 것도, 사실 그 자손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잘못한 뭔가가 있지는 않지만 그 윗세대의 '카르마'가 너무 강력하여 자손에게 까지 그 책임이 떠안겨 가는 현상과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즉 직접적으로 내가 가담한 '업'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카르마의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모두가 타고난, 부여받은 환경과 운명은 제 각각 다르지만 그것이 인과관계에 의한, '카르마'와 연관지어 설명 할 수 있다는 부분은 꽤나 흥미로운 얘기거리인 것 같다. 뭔가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어야 될 부분 역시도 없지않아 존재하지만, 그게 나의 운명이라면 사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생의 출발점과 난이도가 제 각각 다른 것은 각자가 타고난 운명인 것을 뭐 어떻게 하겠는가? 중요한것은, 그렇게 부여 받은 카르마를 내가 이 생에서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소하며 살아가는가. 어쩌면은 인생이란게 넓은 의미로 보았을 때 카르마의 해소에 삶의 목적이 있는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마저 문득 들었다. 그만큼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생에서 해소해야만 하는, 이겨내야만하는 카르마는 무엇이며 그 카르마의 영향력이 크면 클 수록 힘들고 험난한 과정이겠지만 그게 우리가 해결하고 풀어야 할 숙제라면 기꺼이 해야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고 나를 성숙하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감, 그들이 현명하게 독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무사히 할머니되기"라는 목표에 초점을 둔 비혼 여성 2인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비혼주의든 비혼주의가 아니든 사회 구성원으로써, 그리고 독립된 개체로써 이 험난하고 고생스러울 인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똑똑하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한 그녀들의 귀여운 고민들과실질적인 목표들을 천천히 조금씩, 성실히 실행해 나가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나 비혼주의를 선언한 혹은 지향하는 여성들이라면은 더욱 더 깊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는 특별히 비혼주의자다. 라고 단박에 정의 할 순 없지만 인생에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은 꼭 필요한걸까? 라는 물음을 던져 본 적 있는 사람으로써 왠지 어느정도 결혼을 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삶도 염두 해 두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이 사회적 거세이든 그냥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결정이든 어쨌거나 요즘 '비혼주의' 라는 단어가 점점 더 사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는, 또는 좀 유별나거나 독특한 부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어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주변으로부터 쉽게 어떤 소스를 제공 받기가 어렵다.  

 

신기한것은 사회적 통계자료를 보면 점점 결혼률이나 출산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매년 뚝뚝 떨어진다고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과 엄마 친구 자식들은 어째서 다들 결혼 한 커플들이 대다수인가? 하는 것이 늘 아이러니한 부분이긴 하다. 아무튼 점점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게 될 '결혼하지 않은 청년층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찰하고 탐구해봐야 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나 나 자신이 비혼으로 살아갈 확률이 더욱 높다고 여겨진다면 혼자 살아가는 삶에 대한 구상을 하루라도 빨리 해 나가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인생을 나무늘보마냥 천천히 살아가는 나 자신이 말하자니 괜시리 양심에 찔린다. 

결국 남자든 여자든 성별 불문하고 개인이 삶을 지탱해 나가는 힘은 '돈'이다. 돈과 경제력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책에서 토끼와 핫도그씨가 결국 열렬히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 가장 많은 부분이 바로 '재태크'다. 특히나 핫도그씨는 직장경력 5년차지만 통장잔고는 0. 혹은 늘 100만원대 언저리를 왔다갔다 하던 그녀였지만 토끼씨를 만나 함께 재테크를 공부 하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경제관념들을 함께 배워 나가고 천천히 투자에 대한 공부, 경제 지식들을 습득 해 나간다. 그리고 토끼씨는 꾸준한 재태크로 드디어 순 자산 1억을 달성하게 되고 물론 집 한채 사기에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자산일 수 있지만 월 200만원 버는 직장인으로써는 아주 성공 신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해보니 나도 뜬구름잡기 좋아하는 프로 망상, 공상, 거기다 방황까지 끼얹은 사람인지라 굉장히 현실 감각 떨어지는 인생을 줄 곧 살아왔다. 물론 각자 다른 환경에서 누구나 개인마다의 어려운 사정들을 갖고 있겠지만 어쨌든 경제관념이라던지 그런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해 매우 감각이 떨어진 상태로 지내온 것은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그냥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알아서 배우고 습득하게 되겠지라는 아주 막연한 생각으로 20대를 보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사실 이런 부분들을 가정에서 직접 교육해주는 부모님도 있으시겠지만 만약 우리 부모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 내가 발 벗고 나서서 공부하는 수 밖에 없다. 사실 여기저기 주변에서 한참 주식에 대해 열띄게 얘기 할때도 큰 묵돈이 마련되어 있어야 그런것도 할수가 있지.. 씨드머니가 넉넉하게 있지 않는 이상 주식은 안하는게 낫지않나? 모르는게 나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애시당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었지만 실제로 책에서는 매달 50만원 선으로 투자를 시작했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뭐든 공부해보지도 않고, 그건 아니지.. 해봤자 위험할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부터가 경제적 궁핍함을 벗어 날 자격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이 삶을 건강하게 생존해 나가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방책은 바로 '건강' 이었다. 운동. 어쨌든 기초 체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지식을 습득하든 돈을 벌든 기본적으로 일상 생활을 해 나감에 필요한 에너지들을 비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당연한 얘기지만 이 조차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해 나감에 있어서 우리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데미지를 겪을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데미지를 경험하고 특수한 경우에는 트라우마로 잡리 잡아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이 한 치 앞길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 불상사를 대비해서 멘탈(?)이든 육체적으로든 단단한 상태를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은 당연히 좋지 않겠는가...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내가... 더이상의 말은 아끼도록 하겠다.)

 

문득 데미지에 대해서 말하다보니 어쩌면은 누군가와 (이성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서 지내는 삶이 가장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윤택한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면 우리는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감정 싸움들을 경험 하게 되는데 만약 그것이 결국 해결되지 못하고 이별로 귀결된다면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느냐에 따라 인간은 한동안 굉장히 큰 상실감을 겪게 된다. 또 그로인한 후유증을 극복하는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고, 짧게는 몇개월 길게는 몇년이라는 시간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여러모로 인생에 있어서 참 비효율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가. 그렇다고 비혼을 장려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성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많은 부분들을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 감당하고 희생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이 갖고 있는 힘과 잠재력은 대단히 폭발력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지만 한 인간의 삶을 주체로 생각해봤을 때 '사랑'은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 비효율적인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사랑의 감정에 아주 충실하게 푹 빠져버리는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란걸 알지만 사랑을 할 때 누구보다 멘탈이 'fragile' 해지는 성향이 있는 나이기에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랑으로 인한 후유증과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극복의 시간들을 감당하는 것이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힘겨워 진다.

 

아무튼 토끼씨와 핫도그씨는 이 책에서 '연애'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혼자 살아가는 '건강'한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필수불가결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그리고 또 빼먹을 수 없는 청년들의 '연애'에 대해서까지 개인적인 생각이 다다르게 되었는데 아무튼 절대로 비혼을 장려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어쩌면 열렬하게 '사랑'하고자 하는 타입에 가까워서 비혼주의 라는 삶을 혹시나 살게 되더라도 '비연애'주의 까지 지향할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다고 본다. 아무튼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주 똑 부러지고 야무진 비혼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생활상을 엿보며 요리조리 일상의 팁들을 하나 둘 건져내기에 좋은 지침서가 되 줄 책이다. 남자든 여자든, 비혼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르는 많은 청춘들이 경제적인 독립에 한 발 더 앞서 나간다면 어쩌면 비연애니, 비혼이니 하는 문제들이 오히려 완만히 해결 될 가능성이 있지도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건 결국 먹고 사는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 비혼주의를 주장하는 청년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도 사실 그 원인이 아주 본질적인 부분에서부터 자리잡고 있는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뭐가됐든 지금 청년들에게 경제적인 독립이 아주 절실한 상황인게 아닐까.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2+2=5"



지금 이 책을 읽기에 굉장히 시기 적절한 타이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 전체주의 사회가 어떤 구조적인 형상을 띄고 있고 그런 체계가 유지되기 위해서 어떤 권력의 지배하에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등등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다면 당장 이 책을 읽어보라 권유하고싶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이 책을 읽고 마치 나와는관련 없는 얘기 처럼 저런 세상이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다 혹은 저런 체제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라는식의 연민과 안도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절대 다시 공산주의 사회로 변모될 가능성은 추호도 없다 라고 확신을 가지기에는 여전히 불온전한 세상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현재 누리는 자유나 개인의 사유재산 같은 것들도 모조리 박탈 당하고 통제된 세상속에서 살아갈 그런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마 너무 과민반응 하는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책 속에 존재하는 '빅브라더'의 존재가 꼭 전체주의 사회에만 존재 하는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 순 없을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속에서는 더욱 더 교묘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제 하지 않는 듯, 통제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고있고 그 대표적인것이 바로 sns와 미디어,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소설속에나 존재 할 것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현실과 빼다 닮은 모습들이 너무나 많이 포착 된다는 부분이 내겐 공포스러웠다.

지금도 지구 건너편 어느 나라에서는 전쟁을 하고, 또 어떤 나라는 한 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면서 그 나라를 점유 해버리려 하며 이 모든게 현재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임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인지할 수 있지않나. 그들의 권력 다툼이자 사실상 전쟁의 한 모습이기 때문에 한 나라가 독립적인 힘을 잃게 되는 순간 보이지 않게 스며드는 권력의 침공으로부터 우리가 언제까지 안전하게 지금처럼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살아가는 세상도 바로 흔한 사회주의 세상의 모습인데 그들의 체제를 유지 시키기 위해서 즉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 날조하고 사람들을 매일 세뇌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사상, 가치관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기존의 사용하던 단어들을 폐기시켜 버리는 둥 체제 유지를 위해 매일 같이 조작과 날조가 빈번히 일어나는 세상이다. 단어 사용을 통제하고 억압한다는 내용은 내가 이전에 봤던 영화 "The giver"에도 동일하게 등장하는 부분인데 과연 언어가 바뀌면 사고도 함께 바뀌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대해서 나는 어느정도 '그럴것이다' 라고 동감하는 편이다. 예를들어 '노랗다' 라는 한국어 표현은 굉장히 많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샛노랗다' 등등 전부 다 노랗다는 뜻이지만 각 단어가 갖고 있는 느낌과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저 단어가 갖고 있는 성격에 대해 외국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럼 (그들은 단순히 yellow, dark yellow, bright yellow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단어 사용을 통제한다는 것은 곧 사고를 함께 통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낱말을 없애는 건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지. 물론 없애 버려야 할 낱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에도 수백 개나 있네. 그리고 없애야 할 말은 비슷한 말뿐만 아니라 반대말도 있지. 도대체 한 낱말이 단순히 다른 낱말의 반대만을 뜻한다면 굳이 있어야 할 필요가 뭐 있겠나? 한 낱말 안에는 이미 그 자체 내에 반대로 말할 수 있는 요소가 포함돼 있네. ‘좋다(good)’라는 낱말을 예로 든다면, 그 반대말을 ‘안 좋다(ungood)’라고 하면 되지. 철자도 생판 다른 ‘나쁘다(bad)’는 말이 뭣 때문에 따로 필요하겠나?‘안 좋다(ungood)’란 말이면 충분하네. 모양은 비슷하지만 오히려 이게 다른 말보다 더 정확한 반대말이지. ‘좋다’는 말의 뜻을 더욱 강조하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네. ‘탁월하다(excellent)’느니, ‘훌륭하다(splendid)’는 따위의 말이 수두룩하게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 좋다(plusgood)’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이걸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 더 좋다(doubleplusgood)’라고 하면 될 것이네. 물론 이런 형태의 낱말들이 이미 사용되고는 있지만, 신어(新語)사전의 결정판에는 ‘좋다’란 말 한마디만 남을 걸세. 그러니까 좋고 나쁘다는 개념은 여섯 개의 낱말로 나누어지지만, 실제로는 단 한 낱말로도 충분하다는 얘기지. 어때, 멋있지 않나. 윈스턴? 물론 이건 애당초 B.B.(빅 브라더)의 아이디어였다네.” -조지 오웰 <1984>에서 발췌

 




https://fancysailor.tistory.com/288?category=797069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 The giver > 미래 사회주의 세상을 구현한 SF 영화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 The giver > 미래 사회주의 세상을 구현한 SF 영화 더 기버 : 기억전달자 The Giver , 2014 제작 요약미국 | 드라마 외 | 2014.08.20 개봉 | 12세이상 관람가 | 97분..

fancysailor.tistory.com



주인공은 그 나라의 실세들 즉 권력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부류인 내부 당원들의 바로 아래, 외부당원으로써 등장하는데 체제 유지를 위해 각 부서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가 존재한다. 주인공이 맡은 업무가 바로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데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일들이었는데 주로 과거의 기사들을 소각하고 단어들을 폐기시키며 과거의 진실된 역사를 상기시키는 자료들을 모조리 없애는 역할들이다. 주인공은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스스로 어렴풋이 기억하는 과거의 세상 사이에서 큰 혼란을 느끼고 진실을 날조하고 폐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당에 서서히 반감을 느끼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권력은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가 있지.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네. 괴롭히지 않고 어떻게 권력자의 의사에 복종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가운데 존재하는 걸세. 그리고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권력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뜯어 맞추는 거라네."




포스팅 맨 앞머리에 "2+2=5" 라는 글을 썼다. 이게 바로 주인공 윈스턴이 사는 세상에서 말하는 세뇌와 통제를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수식이 아닐까. 즉 책 속에는 '이중사고' 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진실의 여부와 관계 없이 당에서 주장하고 말하는 것이 곧 진리이며 설사 그것이 틀렸다 할지라도 진실이라고 믿어야하는 것이 바로 이중사고다.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당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반박의 의지 없이 그저 맞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고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인간의 자주적인 생각과 주체성을 파괴시키고 나면 당을 위한 완벽한 노예로 재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 주체성과 자발성을 잃은 인간, 즉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빼앗긴채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이미 빛을 잃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 소설이 정말로 뼛속 깊히 디스토피아적 문학이다 라고 말할수 있는 결정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책의 결말이 더욱 그 정점을 찍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중반부쯤 들어서 윈스턴은 쥴리아라는 여성을 알게되는데 사랑이나 섹스처럼 쾌락적인 감정과 오르가즘 마저 금기시 되어있는 그 사회에서 둘은 철처히 비밀리에 연애를 하게된다. 그리고 그들이 나눴던 대화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당이 세상을 억압한다고 한들) 사람의 마음 깊은 곳 까지 통제할 수 없는 법이라고. 깊은 마음속의 생각마저 그들이 빼앗아 갈 순 없다 라는 말을 하고 쥴리아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 역시도 윈스턴의 말에 백번 동의하는 입장이었지만 책의 결말에 다다르면서 유일한 '희망'과도 같았던 그가 마음 속 깊은 생각마저 당에게 세뇌를 허락하고 (세뇌 당한것이 아니라 세뇌를 허락한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결국 고통스러운 고문에 못이겨 굴복하게 됨으로써 충격적인 한 문장으로 끝 마무리 지어지는 이 소설이 내게는 뭐랄까 정말로 큰 허무함을 안겨다줬다. 앞에 첨부했던 영화 The Giver 역시 똑같은 전체주의 사상에 대해 그렸지만 그래도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가 지어졌다면 이 소설은 정말로 디스토피아의 끝을 보여준다.




아래는 1984를 쓴 조지오웰이 결핵으로 죽기 전 남긴 마지막 경고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그가 남긴 한마디가 매우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Don't let it happen, it depends on you"



https://www.youtube.com/watch?v=S83Fz3i409A



 

 

 

어제는 꿈이고 내일은 환상일 뿐이다.



꽤나 두꺼운 책이다. 책 제목이 '자기관리론' 이지만 거의 '걱정 없애는 방법' 이라고 써도 될 정도로 '걱정'이라는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흔한 얘기인거같지만 걱정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걱정 할 시간, 여유 조차 없게끔 만드는 것'을 책에서는 강력히 추천하고있다. 그 정도로 현재에 충실하게 바쁘게 살아라는 얘기겠지만 사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다. 바쁘게 살고싶지만 뭘 해야될지 모른다던지 혹은 근심 걱정이 이미 마음을 지배해버려서 그 무엇도 집중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아무튼 신경 정신적으로 '병' 적인 문제가 있는 이유로 (우울이나 불면 등등) 도저히 당장 눈앞에 일에 집중 할 수가없다면 일단은 먼저 병원을 가야 될 것이고,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대게 일상의 걱정 고민에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인생을 갉아 먹고 있는 경우라면 충분히 이 책을 한번쯤 권유하고싶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 없애는 법' 이라는게 한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고로 타고나기를 '사색적'이거나 이런 저런 공상을 즐겨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저 '생각'하는 것이 숨쉬는 것 만큼이나 빈번하고 늘상 하는 행동 중 하나일텐데 그 많은 생각들 중에는 고민도 섞여 있을 것이고 또 많은 작가들 또한 그러하듯 약간은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나 염세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무언가를 고민하고 비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걱정을 없애다' 또는 '고민을 없애다'와 같은 말은 '깊이 생각하기를 그만 두는 것'을 뜻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뭐 어찌됐던 종종 공상에 빠지는 나로써는 사색을 함이 자칫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적절한 줄다리기를 해야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이거는 거의 도를 닦는 경지가 아닐까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에서 오는 불안과 걱정을 당장 중단하라는 부분이 그러했다. 사실 이 정도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거의 뭐 나 자신이 부처나 다름이 없는 수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아직 그 정도 성인은 못 되었나보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는 너무나 'fragile'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걱정 고민으로 뭐든지 생각에 머무르고 있기보다 행동하고 움직이고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 굉장히 생산적이고 건설적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더라도 지나간 실수를 바로 잡고 '점검' 하기 위한 목적, 그 이상으로 번지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어느정도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대게 어떤 큰 사건, 큰 고민에 많은 시간을 뺏기고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사소로운 일들에 꽤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뺏기며 살아간다. 굉장히 공감갔던 부분이, 단순히 지루하고 따분하고 시간이 잘 가지 않는 일을 (스스로에게 맞지 않아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억지로 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내용이 그러했다. 그냥 지루하고 무료하다는게 뭐가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건덕지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 또는 권태로운 일을 장시간 동안 소화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활동적인 일이나 체력적 소모가 꽤 큰 스포츠 활동을 하루종일 하는 것 보다도 훨씬 정신적으로 더 큰 에너지 소모를 느끼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주어진 업무에 적응하고 무리 없이 일을 소화하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더이상 생산적일게 없는 환경에서 매일 같은 업무를 매일 반복하면서 권태로움에 신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열정적인 일은 사서 고생을 해도 정신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일들, 지루한 일들은 잠깐을 버티는 것도 정신적으로 매우 깊은 피로감을 안겨다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많이 경험하는 감정들일거라고 생각한다.

 

업무환경에서 내가 권태로운 이유는 같은 업무의 반복 때문 일수도 있고 나의 커리어와 자기 개발에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불만족스러운 업무 난이도 때문 일수도 있고 또는 단순히 일이 맞지 않는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 또 답답한 업무 시스템이나 상사에게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여러가지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은 언제나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쉽게 지치도록 만드는 원인들 중 하나 인 것이다. 내가 당장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다면 그 환경에서 빠져나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또는 더 나은 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 자기개발에 투자 하거나 적성의 문제라면 다른 일을 물색해보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방법들 일거라는게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실질적 방법이 사실 단숨에 빠르게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상황을 회피하거나 걱정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방법으로 감정을 소모해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또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분명 1년, 2년 3년이 지났을 때 나에게 다른 변화를 안겨다 줄 것임이 확실하지만 그 '몇년'이라는 장기간의 노력과 투자보다 당장의 감정적 해소, 고민해결을 사람들은 너무나 바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 책에서 우려하는 '걱정만 하는 삶'으로 뒤덮혀 어느순간 삶을 좀먹듯 갉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은 나는 내 삶에 얼마나 '집중'할수있느냐 바로 이 부분이 큰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일상의 많은 스트레스 요소들,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외부적인 요소들, 인간관계의 많은 사건 사고들 등등 인간이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여러 일들을 겪고 살아가지만 그것들을 다시금 툴툴 털어내고 나의 페이스를 찾는 것. 그런 방해 요소들이 저변에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스스로에게 다시 온전히 '집중'할수 있느냐가 쓸데없는 사소로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방법인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나의 삶에 집중 할 수 없다면 그 원인이 되는 문제점을 발 벗고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리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저 오늘에 충실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하루가 한달이되고, 한달이 1년이 되고 결국 그렇게 '삶'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나의 모습도 많은 부분 달라져있지 않을까.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7가지 자세>

 

 

1. 평화, 용기, 건강, 희망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라. "우리 생각이 우리 삶을 만든다."

 

2. 절대로 적에게 앙갚음하려 들지마라. 적을 해치기보다 자신이 훨씬 더 많이 다친다. 아이젠하워 장군처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느라 단 1분도 낭비하지 말라.

 

3-1.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쓰지 말고,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라. 예수가 나병환자 열 명을 고쳤지만, 그 중에 단 한명만 감사하다고 인사했음을 기억하라. 우리가 예수보다 더 감사를 받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3-2. 행복해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얻기 위해 베푸는 것임을 기억해라.

 

3-3. 감사란 '길러지는' 것임을 기억하라. 아이들이 감사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원한다면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4. 내가 가진 문제가 아니라 받은 복을 헤아려 보라.

 

5.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말라. 나를 찾고 내 모습대로 살라.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임을 기억하라.

 

6. 운명이 레몬을 건네면,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

 

7. 다른 사람에게 작은 행복을 주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잊으라.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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