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못 하지만 영어 원서는 읽고 싶어』는 영어 때문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도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실천 전략을 사례별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 몰라 막막한 마음에 일단 시도부터 했던 저자의 원서 읽기 방법들을 소개한다. 영어 원서 읽기는 스스로 책을 읽는 습관,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자기주도 학습, 더불어 영어 학습능력 향상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좋은 영어 학습법이다. 하지만 무작정 아무 영어 원서나 읽게 되면 너무 어려워 포기하거나, 지루함을 느끼게 되어 흥미를 잃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효율적인 원서 읽기 방법을 알려준다. 어학연수, 해외 유학, 해외 체류 경험 없이도 영어는 잘할 수 있고, 영어 원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저자는 아이를 키우고 직장에 다니며 모국어책과 영어책을 읽으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독서에서 얻은 감동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출처 : YES24.com
생일날 선물받았던 책들을 하나 하나씩 이제서야 다 읽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이 책은 마음먹으면 하루, 이틀 만에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쓰여내려간 글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직장인의 삶을 핑계로 여지껏 다 읽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오늘에야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초반에 20,30 페이지 정도 읽었을때 부터 뭔가 나한테 쿵 하고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디. 왜냐하면 영어공부를 하는데에 있어서 내게 너무나 필요했던 조언들 또는 실질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많은 팁들이 적혀있었고 또 한가지는 이 책을 쓴 작가님 역시 마찬가지로 흔히들 말하는 해외 유학파나 혹은 영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분이라던지, 즉 외국어를 잘 할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으신 분이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더더욱 동질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블로그에도 소박하게 'English'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하지만 포스팅 갯수는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고 그 뜻은 게시판을 만들어 놓았지만 거의 게시글을 올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또 그 의미는 초반에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지 않다 라고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 (...)
아무튼 왜 내가 꾸준한 언어학습에 늘 실패했는지, 언어를 학습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항상 굴뚝같았지만 어째서 매번 중도포기로 끝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다 꿰뚫어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특히 비전공자, 해외 유학파가 아닌 사람, 외국어 환경에 있지 않은 사람 등등 여러모로 어쩌면 외국어와 '무관'한 환경에 속해 있는 사람이 어떻게 공부해야하고 어떤식으로 흥미를 꾸준히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공감이 가는 꿀팁과 학습방법들을 디테일하게 서술해주셔서 그야말로 영어원서읽기의 실질적인 지침서 같은 느낌이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또 매우 공감이 갔던것은, 흔히 완벽하게 읽을려고 하지말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스킵한채로 읽어라 라던지 외국 영화 자막을 꺼놓고 듣기를 연습할때 잘 안들리는 부분이 나와도 집착하지 말고 흘려 보내고 계속 자연스럽게 들어라 라는 그런 팁들을 어디선가 나도 많이 들어봤던 것 같은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부분에 대한 모순과 오류를 정확히 집어내주신 점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런 팁들은 어디까지나 어느정도의 고수 레벨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거나 지내는 환경이 언어 학습에 아주 효율적인 환경이라던지 (유학생, 이민자 등등) 그런 분들에게는 적합한 팁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다소 척박한(?) 환경에서 외국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를 모순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부분이 컸기 때문이다. 나도 자막끄고 영어 받아쓰기를 시도해봤고, 쉬운 레벨의 영어 원서를 읽어보려 시도했을 때도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애써 무시하고 전반적 흐름을 느껴보기 위해 노력 해봤지만 오히려 급격히 흥미도가 떨어지고 쉽게 지치지만 했던 경험들이 새록새록 기억났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지적했고 그렇기에 책 한권을 온전히, 만족스럽게 이해할 만큼 천천히 완독하는 것을 추천하였다. 그리고 따로 필기 노트를 만들지 않고 책 크기 만큼 메모지를 잘라서 모르는 단어를 필기하고, 단순 단어의 뜻만 적는것이 아니라 책의 문맥상 어떤 의미였고 본인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등등 떠오르는 대로 메모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었는데 이 부분 역시도 너무나 실용적인 학습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여러권의 필기 노트를 가지고 있는데, 단어를 열심히 필기 해놓아도 결국 다시 책꽂이에만 쳐박혀 있을 뿐 그걸 다시 펼쳐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바로 이런 함정에 대해서도 콕 집어내고 그부분을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정하여 필기해둔 단어를 쉽고 자주 열어볼 수 있게끔, 그리고 단어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도록 스스로 메모하는 습관. 이런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열심히 원서를 읽고 공부 한 '마스터'이기에 가능한 조언이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들 정도다. 책 크기만한 메모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모르는 단어를 쓰고, 모르는 단어가 등장했던 페이지가 몇 페이지 였는지 함께 메모하고, 그렇게 적은 메모들을 책 맨 뒤에 넣어놓는다는게 별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니 말이다. 다들 필기노트랍시고 처음에 꽤나 두껍고 깔끔한 예쁜 노트 하나 사다놓고 한 몇장 쓰다가 나머지는 낙서장이 되거나 그냥 임시방편의 메모지로 써버리기 일쑤라. 너무 내 얘기 같아서 공감이 많이 갔다.
그리고 나름대로 규칙적인 학습을 하겠다고 블로그에 English 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놨지만 어느순간 '학습'의 목적보다 '포스팅'이 목적이 되어서, 깔끔하게 정돈하여 단어들을 포스팅 하였지만 생각보다 학습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포스팅도 잘 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 책에서 제시한 팁들을 바탕으로 다시 학습 방법을 재구성 해보고, 블로그의 English 카테고리는 좀 다른 형식으로 포스팅 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쪼록 언어학습에 꿈과 열정이 있지만 매번 실패하고 구체적으로 끈기있게 지속할 자신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본다.
2018년 11월에 출간한 책이다. 이제 벌써 2022년이 됐다. 2018년 당시 90년대생들은 이제 막 사회로 진출하는 사회초년생이거나 또는 사회 생활을 해온지 얼마안된 새내기들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에 해당하는 연령이 있겠지만 현재 90년대생 초반들은 벌써 30대에 접어들었고 90년대 중반~후반 정도에 해당하는 세대들이 현재 20대 중반에 해당한다. 어찌됐건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활발히 해 나가는 세대라는 점은 여전히 변함없다.
아마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에 90년생이라함은,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하는 파릇파릇한 어린 세대들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곧 경제활동을 가장 활발히 하게 될 주요 세대가 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업과 기성세대들은 이 미지의 '90년대생'들과 곧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드릴 준비를 해야만 했다. 바로 그들의 생각과 사고방식,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들을 빠르게 살펴보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에 이 책이 출간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하필 90년생일까? 왜 유독 90년생들이 경제활동의 주 축이 되는 세상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마치 거대한 사건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그들이 몰려온다'와 같은 뉘앙스를 풍겼던걸까. 사실 세대가 교체되는것은 꼭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흔히 '세대차이'라고 불리는 그 갭이 90년생부터 꽤나 큰 격차로 벌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60년생에서 70년생, 70년생에서 80년생으로 세대가 교체 될 당시에는 비슷한 아날로그 시대를 바탕으로 자라온 나이이기 때문에, 물론 나이차이로 인한 자연스러운 세대차이 정도는 있지만 '사상'이나 '가치관'에 있어서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던 세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80년생에서 90년생으로 교체되는 순간,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생까지 모두를 포함할수도 있겠다. 90년대생은 본격적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전환되는 시점을 경험한 세대다. 더 나아가서 90년대 후반의 세대들은 아날로그를 경험 하지도 않았다. 그런 세대가 사회 경제를 움직이는 주 축이 되는 시대가 곧 다가온다는것은 기성세대에게 있어서 어쩌면 '공포'와 '당혹감' 일지도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사실 90년대생들 보다도 기성세대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문득 한때 엄청 유행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매우 논란이 됐던 책 제목이 생각난다. 바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했을 초창기에만 해도 마치 힘들고 버거운 젊은세대들을 보듬어주는것만 같은 감성적인 말투에 다들 속아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게 얼마나 '뵹신' 같은 소린지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는 청춘이 왜 아파야되나요? 라는 반론들이 제각각 나타났었다. 어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말은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이렇게 아플 수 밖에 없는 세상을 물려준 기성세대들의 회피 혹은 외면, 또는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미안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어, 원래 젊음이란게 그런거야. 다 아픈거야." 라고 위로섞인 말로 우릴 속이려 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 말이다.
책에서는 90년대생들의 모습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묘사 했는데 대표적으로 줄임말을 선호하며, 워라벨의 가치를 추구하는 등 그 중에서도 책 표지에도 적혀있지만 '호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세대 라는 표현이 많이 와닿았다. 맞다. 우린 호구가 되길 거부한다. 그것이 개인의 공간에서든 직장에서든 관계없이 말이다. 호구가 되길 거부한다. 라는 말은 곧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는 것, 부당한 대우라던가 억울한 입장이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기업에 전적으로 희생하기보다 내 개인의 삶의 가치를 중요시 하는 것 역시, 과거처럼 기업에 헌신하는 것이 곧 내 삶의 질과 가치를 올릴 수 있는 현실이 아니란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우리의 생각을 간섭하고 침해하며 깎아내리는 사람들, 자신이 어릴적 자라온 경험에만 빗대어 평가하는 사람들 즉 '꼰대'를 극혐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나는 실제로 꼰대 알러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꼰대와 가스라이팅 알러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냄새를 조금이라도 풍긴다 싶으면 단박에 파악하는 편이다. (거의 꼰대 레이더망 수준)
아무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직장인 꼰대 체크 리스트가 있다. 만약 여기에 자신이 해당 되는 점이 많다면 진지하게 나는 왜 이따위 꼰대가 되었을까 라고 부디 깊히 반성해보길 바란다. 아, 물론 50, 60대 정도의 기성세대라면은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를 충분히 이해해 볼 수 있지만 고작 80년대생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자신에게 해당된다면 눈을감고 나는 왜 이럴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직장인 꼰대 체크 리스트>
1.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요즘 세대들 보면 참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2.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요즘 세대는 참 한심하다.
3.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공적인 시간이다. 싫어도 팀원들과 함께해야 한다.
4. 윗사람의 말에는 무조건 따르는 것이 회사 생활의 지혜이다.
5.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나이나 학번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속이 편하다.
6. '정시 퇴근 제도(패밀리 데이)'는 좋은 복지 혜택이다.
7. 휴가를 다 쓰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8. 1년간 육아휴직을 다녀온 동료 사원이 못마땅하다.
9.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 사원이 거슬린다.
10. 회식 때 후배가 수저를 알아서 세팅하지 않거나, 눈 앞의 고기를 굽지 않는 모습에 화가난다.
11. '내가 왕년에', '내가 너였을때' 와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12. 편의점이나 매장에서 어려보이는 직원에게는 반말을 한다.
13. 음식점이나 매장에서 '사장 나와'를 외친 적이 있다.
14. 어린 녀석이 뭘 알아?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15. 촛불집회나 기타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6.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란 말에 동의한다.
17. 낯선 방식으로 일하는 후배에게는 친히 제대로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18.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놓고 내가 먼저 답을 제시한다.
19. 내가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연애사와 자녀계획 같은 사생활의 영역도 인생 선배로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21.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22.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에게 화가 난다.
23. 자기 계발은 입사 전에 끝내고 와야 하는 것이다.
[테스트결과]
0개 : 대단합니다. 당신은 꼰대가 아닙니다.
1~8개 : 꼰대입니다. 심각하진 않지만 꼰대가 아닌것도 아닙니다.
9~16개 : 조금 심각한 꼰대입니다.
17~23개 : 중증 꼰대입니다.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별개로 내가 진짜 암울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진짜 기성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꼰대력이 아주 만렙인 부류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바로 '젊은 꼰대'라고 표현한다. 배울게 없어서 기성세대의 나쁜 면들만 그대로 답습하고 따라하다가 벌어진 참사, 혹은 자신이 당했던 부당함을 윗 사람에게 토해내지 못하니, 그것을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되돌려주는 자기 만족 목적의 복수 행위나 또는 나쁜 버릇이라고 해야 될 듯 싶다. 또 다른 말로 '내로남불' 이라고 해도 되겠다. 내가 '을'이 되어 당할땐 기분이 더럽지만 내가 '갑'의 위치에 있을 땐 '갑질' 해도 괜찮아. 와 같은 치사한 보상심리적인 생각들.. 제발 그런 비생산적이고 어리석은 판단들은 부디 지혜롭게 생각하고 자기 발전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가장 첫번째로 버려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식의 에너지 고갈은 개인에게도 치명적이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봤을때도 비생산적이기만 하다. 에너지의 낭비이고 감정의 낭비다. 일을 하러 다같이 모였다는 것은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써야 함이 당연한 것인데 그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한낱 유치한 기싸움, 텃세 같은 것들로 감정을 소모하고 자기 과시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 말이다. 바로 우리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이 꼰대력을 답습하고 똑같이 따라하는 부류가 생긴다는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지인분께 또 소중한 책을 선물 받았다. 마침 내 생일 날짜와 겹쳐서, 더욱 더 감사한 선물이 되었는데 한달반이 지나고서야 글을 올리고 있다. 아마도 인스타에서 활동하는 청년 시인들의 시를 차곡 차곡 모아서 발간한 책으로 추정되는데 내게 이 시집을 선물 해준 분도 마찬가지로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다.
"Sailing anywhere."책 표지를 넘기자마자 센스있게 써주신 문구가 있었는데 왠걸 저 짧은 문장 하나에 사실 꽤 깊게 감동 받았다. fancy sailor 라는 내 블로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자면 'fancy한것들을 무한하게 쫓고 찾아다니는 항해사'라는 의미로 만든 단어였는데 그 의미를 어떻게 알아채시고 "sailing anywhere" 라고 써주신 것이, 정말이지 큰 감동이었다. 그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곳,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유롭게 항해하세요. 라고 마치 나를 북돋아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총 12명의 작가분들이 쓴 시가 엮여있었고 내게 이 책을 선물 해주신 작가님의 글은 제일 첫장에 있었다. 전반적으로 내가 느끼는 바는 이 책에 참여한 작가분들의 정확한 나이나 연령대에 대해서 전혀 아는게 아무것도 없지만 추측해보건데, 대부분 젊은 작가들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 보다는 내가 글을 읽으면서 느낀 느낌이 그러했다. 특히 그들 스스로에 대한 '위로'가 느껴지는 글들이 많았다.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얘기, 혹은 타인에게 듣고싶었던 얘기들을 시로 엮어 자신에게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사랑과 죽음, 특히 죽음을 떠올리는 그들은 삶의 회의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또 그 이면에는 아직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의 작은 기대, 일말의 희망 등등 이런 부분들이 왠지 청년 작가들의 감성에서 나온 것 같은 이야기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하고싶은 것과 해야되는 것의 갈등, 가보지 않은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 이 모든 부분들이 누구나 '청춘' 이라 불릴만한 젊은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면은 꼭 한번 느끼는 나와 세상과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요소들을 통해서 세상과 한참 맞부딪혀 살아가는 청년 작가들의 고뇌에서 탄생한 작품들일거라고 확실히 느꼈던게 아닐까 싶다.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신 작가님의 글에 대해서 무어라 한마디로 감히 평가하고 정의할 수 없지만 내 개인적인 느낌을 표현하자면 되게 아방가르드적인 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패션으로 예를들어 설명하면 되게 실험적인 느낌이 충만한 하이패션, 약간은 심오하고 딥한 패션세계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분명 시라고 하기에는 다소 긴 분량으로 글을 '서술'하고 있지만 막상 읽어보면 순간 순간의 짧은 영감과 감정들을 툭툭 묘사하고 내뱉는 이미지가 많았고 그래서 사실 첫장부터 어쩌면 약간의 '난해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어떤 형상을 딥하게 '묘사'하는 부분들 또한 많아서 내가 상상하면서 읽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 종종 들기도 했다. "굉장히 서술적인 글이지만 사실 매우 언어 감각적으로 감상하며 읽어내려가야하는 시"가 아닐까? 라고 감히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그래서 읽고 또 읽을때마다 마치 처음 읽어보는 것 처럼 늘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계속해서 다른 느낌으로 해석되고,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또 다른 순간 읽었을 땐 '아니다'라고 바뀌어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오묘하고 다채로운 느낌이다.
"방이라기보다는 어느 공간에 놓여있다. 놓임의 형태는 외따로이 혹은 버려져..... 이런 잡다한 묘사만이 유일한 벗이다. 공간 안에서 자유를 보장하지만, 공간이라는 한정이 줄 대신 그를 묶고 있다."
"생각이 많은 아이처럼 겉은 고요하지만 속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워 눈의 초점은 자주 흐릿해지고, 잔잔한 호수 같은 두 눈은 깜빡일 때마다 범람해 멍함이 눈가를 적신다."
"벽은 알게모르게 서랍과 벽장을 흠모했다. 그들이 가진 손잡이는 마치 꽃다발 같았고, 가득 품에 안고 싶었지만 수중에 없음을.. 참 많이 슬퍼했다."
"벽에 문고리를 그려 넣는다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지 탈출보다는 기투(企投)에 가까운 벗어남"
<벽에 문고리를 그려넣는 법 - 양승규>
"둔탁한 파열음에 더 이상 문 두드리지 못하고 그곁을 떠났다. 설령 그것이 벽이라도 문고리를 그려 넣을 자신 있었건만..."
"나는 표준에서 얼마만큼 벗어나 있을까 라는 의문은 곧 그리 가깝지도 멀리도 않은 어중간한 위치일 것이라는 답을 맞닥뜨리게된다. 마치 무언가를 씹는 행위가 곧 삼킴으로 연결되는 수순처럼 몹시 자연스러워, 그것은 훼손하는 게 꼭 죄악처럼 느껴진다. 자연스러움을 보호하는 성기사라도 된 마냥. 도중에 뱉지 못함은 허기진 자의 숙명이요, 맞닥뜨림을 주저하는 것은 반역을 꿰함과 같으니..."
"날이라고 규정된 시간의 다발은 가지각색의 묵묵함을 품었고, 그렇게 세계는 묵묵함을 축적해나갔다. 어딜 가나 곳곳엔 묵함을 목도할 수 있었으며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조용히 목도하는 것뿐이다. 이를 두고 조율사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완벽히 일치하는 사례라며, 담담히 말했다."
<조율사 調律師 - 양승규>
한 자 한 자 열정과 정성으로 창작하신, 소중하고 뜻깊은 책을 선뜻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하루하루가 사실 심난하다. 하지만 너무 우울함의 굴레로 빠지면 일상생활 마저 힘들어지므로 나름대로 스스로 멘탈 관리해가며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애워싸고있는 주변과 그리고 매일매일 확인하는 새로운 뉴스거리들까지 포함해서 어느것 하나 제대로 신뢰가는 것들이 없는, 엉망진창의 상태라고 느끼다보니 신경이 곤두서고 매우 예민해져 있는 시점이다. 그간 인터넷을 통해서 코로나와 백신 관련한 많은 자료들을 접하고 읽어왔는데 인터넷상에 떠도는 모든 자료들이 모두 허위사실이라느니, 조작이며 음므론이라고 주장하는 일명 백신을 믿고 찬성하는 사람들의 거센 반발을 숱하게 보고 듣다보니 스스로 좀 더 논리정연하게 이 문제를 공부해보고 탐구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고 그래서 바로 베스트셀러인 '플랜데믹' 이라는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서두는 간단히 하고 나는 이 책에 대한 소감 정도를 쓰기 위해 포스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간단하게 요약, 정리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백신에 대해서 찬성하든 반대하든 일단 그렇다면 먼저 이 부분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펴보고 알아보는건 어떨까? 라는 생각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단 제대로된 정보를 알고나야 그 다음에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정치적으로 어떤 '편'을 들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 특정 당을 무한 신뢰하고 지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없다. 단지 근본적으로 상식과 비상식을 따져보고 싶은 사람일 뿐이라는 말을 꼭 하고싶다. 즉 내 말은 정치적으로 어느 편에 서서 백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수많은 자료와 기사들을 보고 무조건적으로 그것은 음모론이다, 헛소리다, 정치질이다 따위의 말로 '안물안궁' 식의 태도를 취할건 적어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싶다. 그리고 또 확실한건 지금과 같은 강력한 백신패스 제도는 결국 직간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밀어부치고 있는 셈이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쯤은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개인의 권리와 영역을 침해하면서 까지 백신 접종을 집요하게 진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계속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가지 부작용 현상들에 대해서도 최소 한번쯤은 의구심을 갖고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것이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본다. 그저 문제를 생각해보고 따져보는 것, 주도 면밀히 살펴보는것, 이런 태도에 대해서 시비걸고 따질 사람은 분명히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1장 - 코로나19 팬데믹의 서막>
"나는 국민을 굳게 믿는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주면 그들은 어떤 국가적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장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이것을 'WIVI1"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고한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이 바이러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메르스에 한창 집중되던 시기) 이후 2015년, 미국의 '랠프 배릴' 박사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센터장 '스정리' 박사는 이 바이러스가 사람도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라고 발표하게된다. 2017년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4400만 달러를 들여 새로운 실험실을 공식적으로 개장했을 때 중국 정부는 실험실 안전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 결국 그들의 충분치 못한 안전 조치에 미국측에서는 문제를 제시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실험실의 여러건의 사건 사고발생에 대해 중국 언론 또한 문제 제기를 한 사실이 있으며 평소 중국 자국의 정책에 늘 우호적이었던 중국언론이, 이 일에 대해 비판적인 의문을 제시했다는 것은 자체로 이것은 괴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연구원들은 박쥐의 공격을 받아 자신들의 피부에 박쥐 혈액과 배설물이 묻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외부 세계가 우려한 것이 바로 그런 박쥐와 인간 사이의 접촉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매우 중요한것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박쥐가 보유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해서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 끊임없는 재정적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안정성 문제로 이러한 실험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인데, 마치 하청업체를 두는 것 처럼 중국에 실험실을 세워놓고 꾸준히 투자를 해 준 셈이다. 그리고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바이러스로 개조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포함되어있었다는 것. 결론적으로 현 상황은 미국과 중국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바이러스 자체의 유전자 정보에 대한 여러건의 특허를 서둘러 출원했고 자연적인 발생현상은 특허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그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적인 절차와 방법은 특허 출원이 가능하다. 즉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면 '백신'을 포함한 향후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를 통제할 수 있다."
"NIAID, 제약사 모더나는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기 위한 물질 이전 계약(MTA)을 2019년 12월 12일 체결했다. 여기서 시점이 중요하다. 그 계약이 체결된 날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식 확인되기 몇 주 전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윌리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오하이에 그의 아내와 함께 '엘리베이트 프로덕션스' 라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911 테러 이후의 트라우마로 헐리우드 영화감독으로써의 유망한 경력을 내던지고 새로운 일을 하게되는데 특히 그가 제작했던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인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그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게 된 사례를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진실을 고발하고 알리는 영상 제작에 더욱 포커스를 맞추게된다. 그렇게 그는 코로나19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플랜데믹1> <플랜데믹2>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제2장 - 플랜데믹1>
윌리스는 '미코비츠'박사와 플랜데믹1을 함께 제작하게되었는데 미코비츠 박사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서 시험실 연구원으로 과학자 경력을 시작한 분이다. (에이즈와 인체면역 바이러스에 대한 초기 연구는 대부분 NCI에서 실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코로나 19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이 현상을 옆에서 지켜본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전횡과 음모를 지금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와 자유만이 아니라 인류도 사라질 수 있어요. 이 문제로 우리 모두가 죽기 때문이죠."
다소 자극적인 이야기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대규모 음모이고 그 뿌리는 단 한사람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앤서니 파우치'박사이다. 그는 에이즈가 미국을 강타했을 당시 미국 국립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NIAID)의 소장이었고 2020년에는그 자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사업계획 달성을 위해 별도로 설치하는 임시조직)를 이끌었다. 미코비츠 박사의 말에 의하면 에이즈 유행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파우치' 소장의 정치적인 책략으로 인해 프랑스 과학자들이 HIV 에 대한 그들의 발견을 1년이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치료제를 찾는 과정이 지연되고 그 사이 많은 목숨을 잃었다. 사실상 현재 미국 의료계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파우치' 박사는 이 일 뿐만이 아니라 에이즈 , 에볼라, 조류 인플루엔자, 코로나19 팬데믹 이 중심에 늘 파우치 박사가 있었다.
전 세계 전역의 임상 의사와 감염병 전문가들은 단지 '파우치'박사의 거부 때문에 코로나19 치료제 검증된 약, 이버멕틴(구충제), 아지트로마이신(항생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HCQ 말라리아치료제) 같은 약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반발하였다. 이미 70년 전에 개발되고 검증되었으며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들을 두고 갑자기 '입증되지 않은약', '치명적인 약' 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면서 임상실험도 채 완료하지 않은 '백신'을 두고 현재로써 코로나19를 예방 할 가장 유일무이한 약인 것 처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2021년 7월 28일 이렇게 보도했다. "화이자는 바이오엔테크와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수익이 올해 '35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한다."
파우치 박사의 이 직무유기는 나쁜 약의 처방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코로나19 검사 도구로 표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PCR(중합 효소 연쇄 반응)을 또 예로 들 수 있다. 정작 1993년에 PCR을 개발하고 노벨 화학상을 받은 '캐리멀리스' 박사는 이 기술이 감염병 진단에 사용되어선 안된다고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PCR 방식을 사용하면 누구에게서나 거의 모든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PCR은 하나의 분자를 측정 가능한 수준까지 증폭할 수 있다."
즉 그렇게 계속 증폭 할 경우 우리 대다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사한 DNA의 조각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갖고있기 때문에 이 검사를 반복하다보면 음성 결과가 양성으로 바뀌어 확진으로 이어 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CDC와 WHO 같은 보건 관리 기구는 감염병 검사 기관에 'CT'값을 높이거나 낮추라고 지시함으로써 확진 건수를 얼마든지 조절 , 조작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CT값이란, 유전자 증폭 횟수 라고 이해하면 된다. CT값이 34 이상이 되면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고 대부분 감염성이 없는 죽는 성분만 확인 할 수 있는데 지금 검사 기관 다수는 CT 값을 40 이상으로 설정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의 약 90%가 사실은 어떤 바이러스도 갖고 있지 않을 확률이 더 큰 것이다.
"2015년 5월 CDC는 백신 접종자의 경우 코로나 19 검사를 할 때 PCR의 CT값을 40에서 28로 낮추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 당연히 양성 반응이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백신 옹호자들은 이런 단 하나의 작은 수정만으로 백신이 큰 성공이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CT값을 20으로 줄이면 검사받는 모든 사람이 음성으로 나오고, 50으로 늘리면 모두가 양성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이런 의학계/의료계의 부패가 왜 발생했고 이 부패의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될까 라는 질문에 미코비츠 박사는 '바이돌법(Bayh-Dole Act)을 폐지하면 된다고 간략하게 대답했다. 바이돌법이란, '특허 및 상표 법률 수정법'으로도 알려져있는데,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발명이나 발견의 성과를 올려을 경우에도 이에 대한 개인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예를들어 과학자들이 납세자들의 돈 수백만 달러를 들여 신약 물질을 발명하거나 발견했을 때도 그들이 개인적으로 특허 소유권을 갖고 그것을 제약사에 팔 수 있다. 그러면 제약사는 그 신약을 다시 납세자들에게 팔아 이익을 챙길 수 있다. 1980년대 초 이 법이 도입되면서 부터 과하계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심각한 이해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따라서 이 법은 납세자들만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만든다고 미코비츠 박사는 강조하였다. 때문에 과학자들이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를 찾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빌게이츠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웠다. 과거 IT기업가로써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로만 알려졌던 그가 2000년 아내와 함께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며 자선사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 재단은 자산 510억 달러인 세계 최대 규모로 주된 목표 중 하나가 '의료증진'이다. 게이츠 부부에게 그 표현은 주로 '백신'을 의미한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설립된 해인 2000년에 세워졌는데 2009~20015년 사이 빌&멜린다 재단으로부텅 가장 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은 기구이다. 특히 GAVI와 게이츠는 기존 질병 외에 아직 유행하지 않은 질병에 대한 백신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백신은 생명을 구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사업이다."
"백신 개발 사업이 실행에 옮겨졌을 때 백신 개발을 주장한 사람들이 막대한 이읻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특허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전 세계의 일반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2020년 4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즘 빌게이츠는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그는 사실 의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계 인구 전체가 대부분 백신을 접종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때는 이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수백만 달러는 지원을 한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이 책에 의하면 전형적인 특허 소유권 자체는 발명자가 갖지만 '양수인'(타인의 권리, 재산, 법률에서의 지위 따위를 넘겨받는 사람)에게 이전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즉, 빌&멜린다 재단은 이미 미국에서 여러건의 특허에 '양수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으므로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빌게이츠가 의학적인 지식과 배경이 없으면서도 백신을 해결책으로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그의 동기는 뻔하지 않을까?"
"미코비츠 박사 인터뷰는 미국에서 돈과 과학과 정치와 언론과 권련이 어떻게 서로 엮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3장 - 거짓이라는 주장의 허구>
"모든 진리는 세 단계를 거친다. 먼저 조롱거리가 되고, 그다음 그결렬한 반대에 부닥치며, 마지막에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by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2020년 5월 4일 윌리스는 열심히 제작한 26분짜리 플랜데믹1 영상을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업로드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동영상은 곧바로 수십만 뷰 에서 수백만 뷰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전 세계인들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 동영상을 퍼 나르기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엄청난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윌리스는 프랜데믹의 첫 반응에 매우 만족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비판자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됐다. 심지어 몇일 전 까지만해도 그들의 동영상을 공유하고 지지하던 사람들 마저 갑자기 플랜데믹1의 공유한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올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만든 동영상은 위험해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어요. 빌게이츠와 앤서니 파우치는 영웅이거든요. 백신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고요."
결국 기자를 포함해 20여명의 팩트체커라 불리는 사람들이 <플랜데믹> 내용에 관해 독자적으로 조사를 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허위라고 주장했지만 막상 조사해보니 그 모든 내용은 진실로 확인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허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세계 여론을 조종하는 세력들은 주류 언론을 동원해 이 영상의 내용이 '허위'라는 주장을 되풀이 함으로써 일반인들이 깊이 따져보지도 않고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엄청난 횡포였다."
대부분 백신반대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허위, 음모론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얘길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치고 본인이 직접 스스로 이 문제의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 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내가 백신성분에 대해 의사들이 조사하고 발표한 자료를 친언니에게 알려주기위해 보내준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언론의 선동에 휩쓸리지마라' 또는 '일베냐 신천지냐' 라는 황당한 반응이었다. 그냥 아예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 적어도 백신 반대 입장의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반대하고 있는것일까 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자료를 읽어보아야 '찬성'의 입장도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이거늘, 그냥 정부 지침에 반대되는 의견이라면 무조건 '음모론' , ' 허위정보' 라는 식으로 덮어두는 행동들이 도무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이 제작한 첫번째 <플랜데믹> 영상은 결국 비판자들의 여론에 못이겨 여기저기 동영상이 갑자기 사라지고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뿐만 아니라 인터넷 전체에서 <플랜데믹>이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주류 언론이 전하는 메시지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플랜데믹1>은 인터넷에서 가차없이 삭제 되었다.
여기까지 이 책에서 설명하는 <플랜데믹1>에 대한 내용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여 요약해 보았다.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들만 발췌해서 정리해 놓은 거라 더 자세하고 디테일한 정보들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 해 볼 수 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이들이 말하고 제공하는 이 이야기들은 어떠한 다른 목적이 있는 거짓이나 음모론이 아니며, 모두 '사실'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이다. 이런 부분들이 부디 백신을 그저 맹신하거나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의문점에 도달 할 수 있도록 잘 전달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치성향을 떠나서 그 어느 쪽도 아닌 입장에 서서 그저 상식적인가 상식적이지 않은가를 잣대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 상식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이 문제를 깊히 공부 해봐야 진실 여부에 대해서도 논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글쎄 뭐 모르겠고 현 정부의 정책은 무조건 옳은거니까 그냥 다 맞는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에 심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될 것 같다.
포스팅을 하면서 플랜데믹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다음 포털에서 검색을 해보니 어찌된게 전부 네이버 블로거 리뷰들만 줄줄이 검색됐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지만, 구글에서 '플랜데믹' 이라는 단어나 또는 백신을 부정한다던지 반대하는 글, 혹은 그런 해시태그들을 검열한다는 내용을 책에서 보았는데 나의 이 글도 어쩌면 구글에서 차단하여 포털 사이트에 검색 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라는 일말의 우려를 안고 어쨌든 포스팅을 완료 해 본다. 뭐, 차단이 되서 게시글이 검색 되지 않는 정도는 오히려 양반이고 이걸로 인하여 블로그 저품질에 걸리거나 하는 그런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벌써 코로나 시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길어질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 과정에서 백신접종, 백신패스 등등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정책들이 많이 시행됐는데 그 정책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또 한편으로 반대하는 소수 집단들도 존재한다. 어쨌든 이 책은 그 소수집단(?)에 소속이 되어 의도치않게 혼자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나를 위해서 친한 동생이 생일 선물로 보내준 책이었는데, 지금같은 코로나 시대에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혼자 있는 시간을 유연하게 보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위로나 지침서가 되어줄만한 책일까? 라는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대했던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내가 고작 이 책 한권으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 파악할 순 없겠지만 책의 초반부를 읽는 내내 '고독'의 시간을 건강하게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그와는 관계없이 '나르시즘'적인 감성에 심취하여 자신의 수준은 높이 사지만 타인의 수준은 깎아내리며 배척하고 쉽게 어울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런식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버텨내며 자신에게만 시간을 투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공에 바람직한 방법인 마냥, 마치 성공한 아웃사이더가 외톨이 였던 시간들을 부정하고 그것이 대단한 '멋' 이라도 되는 것 처럼 이야기 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진짜 성장은 혼자 있을 때 가능하고 최소 무언가를 학습하는경우에도 스스로 공부하고 이루는 것이지, 누군가 알려주고 가르쳐줄 순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대신 해 줄순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근데 저자가 초반부에 얘기한 고독한 시간은 뭔가 스스로에 대한 선민의식에 비롯된 생각이 많아 보였고 그런 방식의 타인과 거리둠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작가는 '자기력'이라는 단어를 얘기했는데,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힘 그것을 자기력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실제로 작가는 어린 시절 "나는 이대로 끝날 사람이 아니야.","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라."라는 생각으로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하지만 남을 미워하거나 혐오하진 않았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거만함으로 분출되고 있었고 물론 칭찬받을 일이 아니었다고 본인도 말하지만 그런 기분이 뭔지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역시 작가의 강한 나르시즘이 느껴졌다. 내가 기대한 책의 내용은 타인과 단절하고 '고립된' 시간을 잘 보내기 따위가 아니라, 타인과 잘 소통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잘 활용하기 같은 얘기들을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다보면 마치 집단에 잘 소속되고 대인관계를 잘 하는 사람들은 개인이 추구하는 성공이나 혹은 사회적 성공을 이뤄내기 어려운 것 처럼 단언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꽤나 나를 불편하게 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은 단독자는 담합으로 자신의 입찰 가격을 낮게 책정하지 않는다."
"높은 기대치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기력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힘은 '젊음'이라고 생각한다."
위 내용은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 마라' 라는 챕터에서 발췌해온 글이며, '담합'을 나 자신에 대한 '입찰' 가격을 낮게 설정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 하는 것 부터가 저자의 '오만함'을 느낄 수 있는 결정적 대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마라. 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모두에게 사랑 받으려고 너무 피곤할 정도로 애쓰지마라. 라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뜻은 담합을 함으로써 자신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짓을 하지 마라. 뭐 이런 내용이기 때문에 도대체 작가는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라는 의문만 남는 책이다. 뭐가됐든 작가는 그런 자기도취 스러운 오만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자기 성장의 주축 에너지 였던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자부심'과 '자만심'은 한 끗 차이인것을...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좋지만 그 저변에는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깔린 것이라면 과연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잘 모 르겠다.
그리고 그는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 3가지를 말했는데 1.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 2.원서를 읽거나 번역을 해본다 / 3.독서에 몰입한다. 이 세가지중 3번째 독서에 몰입한다 부분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주로 고전 소설이나 철학도서들을 즐겨 읽었는데 니체를 읽으면서 정신적 멘토로 삼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기뻐했고 그들도 본인에게 호의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내용이 나왔다.
"나는 책이 마음에 들면 '내가 책(그들)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나를 이야기 상대로 아주 흡족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분명 대화를 나누면 즐거웠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앞서 끝난 줄 알았던 그의 자아도취성 발언에 또 한번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분명 돌아가신 니체는 아무런 생각도, 이 책의 독자가 누군지 따위도 알지 못했을텐데 그들에게 자신이 선택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는 저자의 말에 조금은 낯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무튼 이 나르시즘 충만한 내용이 책의 초반부 부터 등장했고 겨우 몇 십 페이지를 읽었을 때 나는 이미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선물받은 책이기도 해서 끈기를 갖고 좀 더 읽어 보았다. 결론적으로 혼자있는 고독한 시간을 유용하게 잘 활용한 여러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 어떻게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뜻깊게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 책의 거의 끝 부분에는 외로움, 고독과 싸워 이겨내는 주제의 소설책 여러권을 서너 줄 넘짓한 짧은 글로 추천하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냥 좀 담백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지에 얘기하면서 동시에 그러면서도 쉽게 우울에 빠지거나 고립되지 않는, 건강한 밸런스 맞추기에 대한 얘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나 작가의 '자기애' 충만한 사상이 은근슬쩍 내포된 책일거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고 혹시나 이 책 역시도 그가 스스로 얼마나 수준이 높고 교양이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나는 나의 고독한 시간을 이렇게 우아하게 잘 보냈다 라는 자기 자랑질을 목적으로 출간한 책은 아닐까 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