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씩 동아신춘문예 사이트에 접속해서 수상작들을 읽어보는 취미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제 막 새로 발굴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뭔가 더 신선한 느낌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 열정/패기가 서려있는 작품들을 모니터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것이 내겐 꽤 흥미롭고 즐거운가보다. 뭔가 어디에도 없는 순수함의 날것, 결정체들을 뭐든 읽고 접하고 싶은 욕망이 마구마구 차오를 때 넌지시 이곳에 들어와보게 된다. 어쨌든 내가 읽어본 작품은 2019년 중편소설 당선작 '오즈'라는 작품이었다.
어딘가 사연이 짙어 보이는 젊은 여자 주인공 '하라'가 등장하고 그 주인공이 독거노인 할머니인 '오즈'씨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남기고 떠난 빚더미 때문에 살곳이 애매해진 주인공은 구청에서 주관하는 주거사업의 세입자로 참여하게 된다. 독거노인들의 남는 방을 청년들에게 저렴한 시세로 내주는 식인데 그곳에서 아주 깐깐하고 평소 사람과 거의 왕래하지도, 쉽사리 말을 섞지도 않는 걸로 유명했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런 할머니가 유일하게 외출을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오즈의 마법사'가 극장에 걸릴 때 이다. 그때마다 늘 극장을 찾아온다고 해서 '오즈' 할머니가 되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낯선 타인과 가족보다 끈끈한 유대관계를 그렸던 몇몇 영화가 생각이 났다. 바로 영화 '가족의 탄생'이 그러했고 '죽여주는 여자'와 같은 작품이 내게는 그랬다. 이 작품 역시도 철저히 서로 '이익관계'로 엮여 만나게 된 두 인물이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보다 서로의 상처를 묵묵히 이해하고 보듬는, 진한 우정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옛날에 어디서 들은 말인데 가족도 '남'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냉혈한 같은 소린가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말에 많은 부분을 공감하는 사람으로써 살면서 종종 피 섞인 가족들이 어쩌면 타인보다 못한 경우들을 흔히 보고 듣고 경험했다. 예전에 내 지인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기도 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가족은 똥구멍 같은거다, 드러워도 절대 못떼내. 그냥 그게 가족이다."
너무나 명쾌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가족관계가 오히려 더 곤욕스러울 때도 있다. 만날때마다 트러블이 잦거나 나와 잘 맞지 않는 타인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자주 안 만나면 되고, 연락하지 않으면 끝나는 일이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떼내어 버릴수도, 쉽사리 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낯선 타인인 두 사람이 '가족'보다 더 깊은 이해와 감정적 교류를 나누게 되는 관계를 보면서 과연 진짜 가족의 의미가 어떤건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새로운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의 낯선 것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조심스럽게 이해하는 방식들이, 어쩌면 서로가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기에 늘 실수 연발하고 쉽게 상처를 주게되는 피 섞인 '가족'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건강하고 애틋한 정서적 교류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 '하라'와 오즈 할머니는 각자 개인만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사실 '상처', '트라우마'와 같은 단어들은 영화나 문학에 수시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어떤 작품이든 이야기 속엔 갈등을 빚는 구조가 있고 그 갈등은 상처나 트라우마로 부터 시작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캐릭터를 깊게 이해함에 있어서 '상처'는 중요한 단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하며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려 심각한 애정결핍을 겪어온 '하라'와 일본군 혹은 일본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것으로 추정되는 '오즈' 할머니. 거기다 할머니는 인공 심장 박동기 삽입술을 받은 병력이 있다. 그 둘은 '타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고자 한다. 할머니는 일본어로 쿠소(똥,대변)라고 몸에 새겨진 문신이 있었다. 그 흉측한 문신을 가리기 위해 마침 취미로 몸에 타투 새기는 작업을 공부하고 있던 '하라'에게 자기 몸에도 예쁜 커버업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한참 모자란 실력이지만 '하라'는 평소 생화 꽃을 압축하여 수집하기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예쁜 꽃을 새겨드리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딱딱하고 소통이 없었던 둘 사이의 허물이 조금씩 벗겨지고 괜히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이 무심한듯 하지만 '츤데레'같은 모습이 비춰져 애틋해 보였다.
사실 소설 속 하라의 과거 기억 회상 중, 남동생의 죽음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그녀의 가해 여부가 확실치 않고 희미했다. 그러나 예상해보건데 '하라'가 형사로부터 집중적으로 심문을 받았던 경험과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봤을 때 여주인공 '하라'가 남동생의 죽음에 직접적인 가해자 일수도 있다는 소름끼치는 가능성을 어느정도 열어두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 죄책감과 본인에 대한 혐오로 허벅지에 수 차례 자해를 시도 해왔지 않았을까. 그래서 '합리적'으로 자해 할 수 있는,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타투'라는 것을 자연스레 시작해보게 되었다는 그녀의 얘기가 어느정도 그 무서운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어찌됐든, 생판 남인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가족보다 더 진한 우정을 나누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감정들을 공유하면서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야기가 조용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오즈'라는 할머니 캐릭터가 자꾸 머릿속에 그려졌다. 진한 이미지에 어딘가 강해보이는 인상. 눈빛은 쉽게 사람들에게 정을 내줄 것 같지 않은 차가운 느낌에 여름에도 터틀넥 옷으로 몸을 가리고 다니며 꽤나 야위고 마른 몸의 할머니가 캐릭터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할머니가 애착하는 영화로 '오즈의 마법사'가 나온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뭔가 신비로운 환상의 마법 세계를 그리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오즈'라는 별명을 가진 할머니. 극장 개관 이래로 줄 곧 오즈의 마법사를 보러 빠짐없이 찾아간 할머니가 이 영화를 본 횟수만 해도 수십, 수백번이 넘을텐데 불구하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흐트러짐 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며 집중하던 할머니에게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는 어떤 의미였던걸까.
앞에서 1.하강나선에 갇힌 뇌에 대한 리뷰를 마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chapter.2 상승나선을 만드는 뇌에 대한 리뷰를 적어볼까 한다. 말그대로 하강나선에 갇힌 뇌를 다시 어떤 방법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을 이 장에서 알려주고 있다.
#운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
"내가 아니라 뇌가 게으른 것 뿐"
이 책에서 뇌를 상승나선으로 올리는 가장 첫번째로 소개하는 방법은 바로 '운동'이다. 사실 운동만큼 확실한게 없다. 하지만 대부분 우울증에 오랫동안 빠져있는 사람들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게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바로 그 이유가 '당신이 게으른게 아니라 당신의 뇌가 게을러져서 그렇다'라고 객관적인 사실을 바로 알려주고 있다. 즉 당신의 전전두피질은 "나...아무래도 운동해야될 것 같아"라고 말하지만 이내 '배측선조체'에서 "엥? 니가 언제 운동했다고 갑자기 왠 운동? 그냥 매일 하던대로 가만히 있지그래? 그게 편한데." 라고 시비를 붙일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운동'이라는 거창한 말을 걷어버리고 "그저 몸을 조금 움직여라"라고 얘기해주고 있다. 운동해야지! 라는 압박감 가득 싣은 채찍질이 아니라 아주 따뜻하고 자상하게 "조금 움직여보렴, 꼭 트레이닝 복을 갖춰 입고 헬스장을 가란 얘기가 아니란다." 라고 꽤나 부드러운 어조로 우리의 게으른 뇌를 타일러 준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있는 유산소나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운동이 아니라도 그저 몸을 움직이고 집안일을 조금씩 해내는 것 만으로도 우리 뇌의 신경 화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1장에서 유혹을 뿌리치고 나쁜 습관을 거절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전전두피질이며 전전두피질은 세로토닌이 정상적으로 활동 할 때 제 기능과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는 세로토닌이 급감한 상태이고 그 말은 즉 전전두피질이 제 기능을 못하고 변연계로 이미 주도권이 넘어 간 상태란 걸 의미한다. 그러나 세로토닌의 공급량에는 이미 한계가 있다고 했다. 즉 '운동'을 통해 세로토닌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여기서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운동은 새로운 뉴런을 만든다."
"능동적으로 운동을 선택할 때 더 큰 해택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많은 실험 사례들을 뒷받침 하며 이론을 설명해준다. 여기서도 쥐 실험을 빼놓지 않을수가 없는데, 그들은 쥐를 자발적 달리기 그릅과 강제로 달리기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두 그룹의 모든 쥐들의 해마에 새로운 뉴런이 아주 많아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특히나 '자발적 달리기'그룹에서 더 많은 뉴런이 생겼고 이는 능동적으로 운동을 선택 할 때 더 큰 해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기 동기부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 결과는 쥐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분명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운동이 뇌에 끼치는 신경화학물질의 변화
새로운 뉴런을 만든다.
세로토닌 수치를 끌어올린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충전된다. (우울증에 걸리면 대게 집중하기 어렵고 깊은 사고가 힘들어지는데 이는 주로 노르에피네프린계가 힘없이 쳐져서 생기는 현상, 세로토닌 다음으로 가장 많이 타깃으로 삼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선물한다.
엔도르핀을 증가 시킨다. (주로 격렬한 운동을 할 때 가장 많이 분비된다)
전전두피질의 혈류량이 증가한다.
#최선의 결정이 아닌 '괜찮은' 결정
개인적으로 chapter.2 장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섹션이고 어쩌면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에게도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심어줄 수 있는 얘기가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늘 최고의 선택을 하려는 생각은 어쩌면 고집이고 욕심이다. 그리고 그 고집은 되려 '완벽'할 수 없는 결과물로부터 우리를 도망치고 회피하고 싶게 만들며 결국 '괜찮은 결정'보다도 못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꽤나 극단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란 걸 조금은 알고있다. 취향을 살펴봐도 그렇다.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겨울이며 좋아하는 시간대는 이른새벽/늦은저녁 이런식이다. 나는 어중간한것 보다 확실한 개성과 특징을 좋아하므로 늘 좋아하는 성향이나 취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가지를 동시에 좋아할 때가 많았다. 어쩌면 이런 성향의 인간들이 더욱 더 모 아니면 도를 실행하므로 '괜찮은 결정'과 '타협'이 주는 안정적인 감각에 더딘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는 한번의 쾌락이 아니라, 이 안정적인 흐름으로 상승나선을 만드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유부단함이 행복을 가로막는다."
"결정하면 습관이 조절된다."
"결정을 내리면 통제감이 생긴다."
흔히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은 막연한 목표만을 세우는 경향이 다분하다. 예를들어 "운동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적어도 일주일에 2번. 구체적으로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꼭 운동하는 날. 이런식으로 막연한 목표를 구체적인 계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직장을 구한다"라는 목표가 너무 부담스럽다면 한 주에 이력서를 몇군데 보내본다. 라던지 이력서를 수정한다. 또는 10분간 온라인으로 직장을 물색하겠다. 라는 더 작은 구체적 목표를 재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에서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대한 쥐 실험이 또 한번 등장한다. 이 연구에서는 쥐 두마리를 짝지어 놓고 무작위로 꼬리에 작은 충격을 가했다. 쥐들의 꼬리는 하나의 전선에 연결되어 있어 두 쥐 모두 동일한 충격을 경험했고 A쥐는 충격이 왔을 때 쳇바퀴를 돌려 두 쥐 모두에게 오는 충격을 멈 출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B쥐가 쳇바퀴를 돌렸을 때는 충격을 멈출 수 없도록 하였고 결국 B쥐는 A쥐가 충격을 멈춰주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두 쥐 모두 동일한 무작위 충격을 동시에 받았음에도 실험이 끝 난 뒤 A쥐는 상당히 잘 지냈지만 B쥐에게는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자신이 상황을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결정을 하는 행위 만으로 우리는 통제감을 느낄 수 있고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인 것 처럼 느껴지더라도 당장에 내 의지로 조절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 부터 결정/실행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잘못되고 틀리게 되더라도 '통제감'을 느끼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않는다. 그 결정이 실패했더라도 당신은 통제감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게는 '매일 매일 어떤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쓸까'라는 생각과 결정이, 내 상승나선을 움직이는 작은 시작과 큰 움직임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도무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겠다면, 책에서는 당장 오늘 점심엔 뭘 먹을지, 어떤 tv프로그램을 시청할지 정도의 아주 단순한 선택부터 시작 하라고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수면의 신경과학
질 좋은 수면이 신경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그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지 않아도 몸소 느끼고 겪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도 어쩌면 바로 이 '수면' 문제에 있다. 그 이유는 나는 전혀 '아침형'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라고 되묻는다면 그것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뇌의 모양과 신경 회로들도 제각각 다른 모양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는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으로 구분 할 수 있고 마침 내가 아침형 두뇌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지 염두해야 될 부분은, '저녁형' 혹은 '새벽형' 타입에 속하는 사람들 일수록 질 낮은 수면을 취할 확률이 높고 그로인해 우울증을 유발하는 빈도나 확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인지 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마땅한 대응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흔히 감정적인 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저녁형/새벽형에 많이 포함되는데 예를들어 잘나가는 작곡가나 아티스트들의 경우 밤을 새어가며 영감을 받을 때 마다 작곡했던 곡들로 히트를 치고 그로 인해 대중들로 피드백을 받고 그런 과정에서 이미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감에 대한, 질 높은 수면을 일부 포기하는 삶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등단하지 않은 작가, 혹은 그림작가, 그 외 수많은 아티스트들은 밤을 지새워 가며 열정을 쏟는 작업을 해도 그들에게 '보상'은 확실치 않다. 그런 이들에게 '우울'과 하강나선은 어쩌면 늘 뒤에서 언제나 대기중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위기에 봉착할 수 있고 그때마다 대응 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보상과 위로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직장이 없는 백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실 책에서는 '질 좋은 수면'을 취하도록 노력하라는 얘기를 쭉 하고 있지만 직업 특성향, 그리고 타고난 성향상 그러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될까 라는 생각이 들어, 위와 같이 나름 생각을 해보았다. '저녁형'인간인 내가 하고 있는 내 스스로에 대한 보상과 위로는 어쩌면 '글쓰기'다. 어쨌건 생산적인 무언가를 행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비록 나는 '아침형'인간은 되지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간대를 이용해서 생산적인 뭔가를 한다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그것만으로도 최소한의 능동적으로 통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은....... '질 좋은 수면'을 포기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는 영원히... 건강한 수면을 하지 못할거야! 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합리화를 늘어놓으려 했다기 보다는, 어느정도는 타고난 점을 인정하되, 대신 만족 할 수 있는 뭔가를 하자는 말을 쓰고 싶었다. 어쨌거나 팩트는 '뇌'는 낮에 일하고 밤에 깊은 수면을 취하는 패턴을 가장 좋아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잠은 뇌의 청소부다.
-잠은 명료한 사고력과 걱정을 줄여준다.
-잠은 학습력과 기억력을 향상한다.
-잠은 뇌 회로의 의사소통을 개선한다.
-잠은 멜라토닌을 만든다.
-잠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도파민을 생성한다.
뇌를 푹 잠재우는 7가지 요령
내리 8시간을 잔다.
침대 또는 침실을 자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자기 전 준비단계로 반복적 일과를 만들자.
잠 시간이 가까워 올 땐 카페인을 피한다.
자기 전 3시간 이내에는 많은 양의 식사를 피한다.
술을 수면 보조제로 쓰지말라.
운동하라.
그 외 뇌를 상승나선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습관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들기", "바이오피드백의 힘", "감사 회로가 부정적 감정을 밀어낸다", "그저 사람들 속에 있기", "전문가라는 도구" 등으로 다른 많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습관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드는것은 chapter.1에 말한 좋은 습관 들이는 방법에 대한 얘기와 반복되는 부분이 많고 결국은 역시 같은 맥락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오 피드백 또한 몸이 움직이는 대로 뇌가 반응하고 움직인다는 것. 반복적으로 운동의 중요성을 강요하고 있고 감사회로는 평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감사 메모나 감사 일기를 작성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소한것의 가치를 찾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그저 사람들 속에 있기.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지나치게 고립되는 상황을 방지 하기 위한것으로, 꼭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교활동을 벌이는 게 아니라도 혼자 그저 사람이 많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것. 사람들이 많은 공원에서 홀로 산책 하는 것 등등 쉬운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사소한 노력이 극단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키려는 상황을 그나마 모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전문가라는 도구는 말 그대로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약물의 힘을 빌리는 것, 또는 그 외 심리상담에 대한 것도 포함한다.
chapter.1을 통해서 전반적으로 뇌가 '우울함'으로 빠지는 과정과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 그리고 각 신경들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설명들을 알 수 있었고 chapter.2는 하강나선에 갇힌 뇌를 다시 상승나선으로 끌어올리는 방법과 그 노력들에 대한 얘기들을 알아 보았다.
책을 읽고서도 당장 모든 걸 완벽하게 숙지하긴 어렵더라도 전반적인 뇌의 흐름이 어떤식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한 개념과 감이 잡힌다면 충분하다고 본다.이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들을 나의 '뇌'에 구체적으로 대입해보고 단, 무리하지 않게 시도해보는 일만 남았다.
나를 궁지에 몰아 채찍질 하지 않는 것, 변화의 시작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이 책의 리뷰가 우울증을 힘들게 앓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감사할 것 같다.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예전에 지인이 이 책을 추천 해줬었는데 그게 벌써 1년이 훨씬 넘었지 싶다. 그 말은 즉, 그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시간을 이 책을 읽기 위해 고군분투 했왔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책에서도 얘기하다시피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 우울증의 진행방향을 뒤집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라고 표현 했는데 사실 나는 집중력 저하로 여러번 책읽기에 실패했고 좌절했었다. 이것은 흔한 '우울증 환자'가 겪는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끝없는 재 시도 끝에 드디어 chapter.1까지 온전한 집중력으로 완독할 수 있었고 그 자체로도 지금 매우 뿌듯한 상황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리뷰를 두번에 나누어 포스팅 할 생각이다.
chapter.1_하강나선에 갇힌 뇌.
챕터.1은 하강나선으로 빠져드는 뇌에 대한 이론적 설명과 뇌에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에 대한 설명을 주로 하고있다. 뇌의 구조적인 부분과 이론적 명칭, 신경전달 물질에 대한 정의 설명들이 많아서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나처럼 '하강나선'을 타는 뇌가 아닌 '건강한' 뇌를 가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나보다 훨씬 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나는 chapter.2보다 1을 개인적으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우울증의 뇌지도
우울증의 뇌 지도 부분의 대한 설명은 이 책을 읽기에 앞서서, '내 뇌가 왜 이모양 이꼬라지로 생겼나'에 대한 불필요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주는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토네이도와 우울증의 닮은점'이었다.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주로 오클라호마에는 토네이도가 나타나는데 뉴욕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오클라호마는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평한 지형, 기온 변화, 습도, 풍향, 풍속에 이르기까지. 그렇다고 오클라호마에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뇌의 경우도 똑같다. 우울증 상태일 때도 뇌 자체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뇌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건 없다는 뜻이다. 오클라호마에 토네이도가 자주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클라호마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 할 수있을까? 전혀 아니다. 그저 토네이도가 일어나기 쉬운 모든 지형적, 기온적 조건들을 완벽히 갖추었기 때문인것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로 뇌가 담당하는 역할들은 누구나 똑같지만 뇌 회로, 신경전달물질 등등 각각의 뇌에서 반응하는 정도에는 제 각각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치 각자의 개성이 다르고 다른 성격, 외모를 갖추고 있는 것 처럼 뇌의 모양도 그러하다고 받아 들여야 되는 얘기인 부분이라는 것.
"내 뇌는 왜 이 모양 이꼬라지인거지?" , "남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유독 나만 이렇지?"와 같이 뇌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마치 내가 거울을 보고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 내 눈은 왜이래? 내 코는 왜이래?" 라고 얘기하면서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들고 불평하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게 어울리는 옷이 뭔지, 헤어스타일이 뭔지, 어떤 메이크업이 잘 어울릴지를 고민하며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고 이로운 방법 아닐까. (성형도 포함) 바로 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뇌의 반응은 제 각각 다르다.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우울증'을 수시로 앓는 사람들은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춘 '오클라호마'같은 뇌를 가졌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하지만 남보다 예민한 걸 부정않되, 그런 나의 뇌에게 처방할 수 있는 일들과 옷들을 적절히 맞게끔 꾸며주고 입혀주는 방법을 바로 이 책에서 앞으로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책을 이해하기에 앞서 뇌의 기본 신경회로에 대해 간단히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크게 '전전두피질'과 '변연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초 간단히 정의하자면 전전두피질은 뇌의 가장 앞부분에 있고 감정에 관해 '생각'하는 역할을 한다면 변연계는 바로 그 감정을 '느끼는' 역할을 하는 아이이다. 즉 더 쉽게 말해, 전전두피질이 계산과 이성적 사고를 담당한다면 변연계는 아주 감정적인 처리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함이 맞을 것이다. 우울증은 바로 이 전전두피질, 변연계의 의사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행복했던 때를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슬픈 사건은 아무런 문제없이 떠올릴 수 있다."
위 글에 더욱이 불행한 팩트를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일반적으로 뇌는 불행의 경험을 훨씬 자극적으로 기억하고 그 기억을 잊기 위해서는 적어도 훨씬 더 많은 긍정적 경험을 가져야 그 나쁜 기억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왜? 라고 한다면 글쎄, 우리의 뇌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불공평 한 것 같지만 어쨌든 그게 진실이다. 한번의 불평을 들으면 적어도 세번 이상의 칭찬을 들어야만 그 기분 나쁜 감정이 온전히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정적인 기억, 아픈 기억이 훨씬 머릿속에 오래 남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므로 더이상 그 부분에 대해 스스로 자책 할 필요가 없게되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인생이 빌어먹을 사건으로 채워진 이유
"우울증은 하루종일 뉴스만 보는 것과 같다."
기분일치주의편향 = 기분이 나빠지면 뇌의 부정 편향이 악화된다는 사실.
기분일치주의 편향은 말 그대로 기분이 안좋을 때면 세상과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더욱 더 잘 포착하게된다는 특징인데, 이는 점점 행복한 사건을 기억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슬픈 사건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진다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싶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아무렇지 않은 단어에도 '편도체'가 반응한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단어게임을 하도록 했는데 '악몽'처럼 부정적인 단어들만 사용하게 하였고 그 결과 부정적인 단어를 보기만 했는데도 편도체의 감정 반응성이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즉 우울증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더욱 부정적인 사건에 감정을 기울이고 세상의 슬픔을 더 예민하게 감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이다. 바로 하루종일 심각한 뉴스만 보고 있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적절하다. '그저 채널만 바꾸면 다른 즐거운 것들도 감상 할 수 있는데 불구하고 절대로 채널을 바꾸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울증인 것이다.'
"뇌는 모르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왜곡한다."
"행복한 기억에도 어둠과 슬픔을 덧칠하는 우울증"
변연계의 뇌구조 ↓
앞서말한 나쁜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은 편도체와 해마의 의사소통 이상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편도체와 해마는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변연계'에 해당하는 아이들이다. 바로 앞서 말한 '감정을 느끼는' 부분에 해당하는 아이들인데,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save 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해마는 감정이 실린 기억들을 좋아해서 동시에 '맥락의존적'인 기억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해마에 저장된 기억의 데이터들과 유사성을 가진 상황이나 환경들을 귀신처럼 잘 캐치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들어, 과거에 감정적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곳과 비슷한 장소를 간다거나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그때의 기분이 쉽게 떠오르고 연상되는 경우 말이다. 우리의 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해마에게 "그 기억을 저장하라."고 명령하고 이것이 뇌가 '위험'으로 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해온 방식이다. 사실 해마는 그저 제 할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것이다.
전전두피질과 변연계의 디테일한 뇌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아래 주소 출처의 해당 블로그에서 아주 자세히 정리해주고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는 해마의 이런 역할은 결코 이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알다시피 우울증의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사건들을 훨씬 많이 인지하고 결국 그 부정적인 사건은 또 편도체를 자극하여 이를 해마에 저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에 저장되어 있는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들은 괜찮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오래된 기억은 오래된 이메일처럼 처음 모습 그대로 열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래된 이메일은 첨부된 파일이나 내용이 훼손되기 일쑤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 마다 조각조각 모여 재구성 된다. 부정적인 기분은 이 재구성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옛 기억에도 어둠과 슬픔이 덧칠되는 것이다. 과거마저 지금 끼고있는 '우울증'이라는 선글라스를 통해 보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이 사실을 적어도 인지하고 있다면, 우리의 삶이 우리가 느끼는 것 만큼 그렇게 나쁜 기억들로만 꽉 찬 것은 아니라는 걸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우울증'의 필터로 행복했던 기억마저 위협당하고 훼손되고 있다는 비극적인 상황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최애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에 나왔던 장면을 단숨에 떠올릴 수 있었는데, 주인공이 우울함의 선글라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행복했던 기억마저 슬픔으로 덧칠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주 적절한 장면이 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일리'가 새로운 학교로 전학오면서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라일리는 미네소타에 살면서 겪었던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들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그 순간 '슬픔이' 필터가 적용이 되면서, 행복했던 추억이 순식간에 슬픈 기억으로 재구성/훼손되는 모습을 아주 적절하게 잘 보여준다.그리고 이 영화의 말미에는 슬픔이 필터로 훼손되었던 주인공의 기억들이 다시 슬픔과 기쁨이 공존된핵심 코어 기억으로 재구성 되고 그로인해 주인공이 더욱 섬세하고 디테일한 감정을 통해서 한 층 성숙하게 됨을 보여준다.
즉 우울함의 필터를 인지하면, 그 필터를 벗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슬프고 기쁜 복합적인 감정의 공존은 우리를 심리적으로 더욱 성숙캐 하도록 한다.
#나쁜습관에 갇힌 사람
뇌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을 구분하지 않는다."
"뇌는 늘 가던 길만 가고싶어 한다."
습관은 뇌 깊은 곳에 자리한 오래된 처리 중추인 '선조체'가 통제하고 충동은 측좌핵이 촉발한다. 뇌가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나 어째서 왜 우리는 '나쁜습관'을 들이는 것이 더 쉬울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 해 답은 바로 '도파민'에 있었다. 주로 자극적인 나쁜 습관이 훨씬 도파민 분비가 많고 쉽기 때문이라는 것. 섹스, 마약, 담배, 폭식 등이 그러하다.
거기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더욱 더 그 나쁜 습관에 중독 될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쾌락을 주는 모든 것은 측좌핵에서 도파민을 분비시키는데 바로 이 도파민 활동이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크게 감소 한 상태이므로 예전에 즐거웠던 일들이 더이상 즐겁지 않고 어떤 자극에도 도파민 활성을 담당하는 뇌가 더디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결국 마약,도박,포르노 처럼 다량의 도파민을 분비하는 행위만이 측좌핵을 움직 일 수 있다는 설명이 된다. (즉각적, 일시적인 기쁨의 중독)
스트레스는 더욱 습관을 강화한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스트레스는 뇌가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 보다 오래된 습관을 선택하도록 편향 시킨다는 것이다. 각각의 뇌가 담당하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래 책에서 발췌해온 '뇌의 대화'를 읽으면 바로 이해하기 쉽다. 조금 더 친근하고 바로 이해하기 쉽도록 말투를 내 임의로 바꾸어 써보았다. 어쨌든 말하자면 우리 머릿속의 뇌가 나쁜 습관의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마치 아래와 같은 대화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배측 선조체 : "야, 우리 항상 이 방식으로 해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냥 이렇게 하자ㅎㅎㅎ"
-전전두피질 : " ㄴㄴ 그건 우리 목적지로 가는데 전혀 도움 안됨 ㅇㅋ? 우리 목적과 무관함. 그러면 안됨" -측좌핵 : "와, 저 떡볶이 ㅈㄴ 맛있겠다."
그러나 안타까운것은 불안과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파워의 힘이 배측 선조체와 측좌핵 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난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애인과 싸우거나 가족과 갈등이 생기면 의식적으로 규칙적으로 행하고 노력하던 것들이 또 다시 무너지게 되고 내팽개쳐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것이다. 만약 전전두피질의 세로토닌이 급감소하여 제 기능을 잃고 배측 선조체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면 뇌의 대화는 마치 아래와 같지 않을까.
-배측 선조체 : "야야야, 하던대로 할거지? 늘 하던 방식이니까 이게 편하고 쉬움 그냥." -전전두피질 : ".....그러든지 말든지... 나 힘 없음... 관심없음......"
-측좌핵 : "와씨, 이건 꼭 사야대ㅋㅋㅋ (결제중) "
그래서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 '좋은습관'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노력은 '전전두피질'을 활성화 하여 다소 의식적으로 행동 패턴을 만들어야 하고 장기적인 습관으로 장착 되기까지 아마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반복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습관으로 정착되고 나면, 더이상 의식적으로 동기부여를 하지 않아도 이미 이 패턴이 배측 선조체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쾌락의 여부와 상관없이 늘 하던 행동을 또 반복 하고싶게끔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아래의 대화처럼 만들어지도록 뇌를 구성하는 것이다.
-배측 선조체 : "야야, 맨날 운동했으니까 오늘도 해야지. 빨리 운동하자." -전전두피질 : "ㅇㅋㅇㅋ 좋은 생각임. 해야쥐 당욘" -측좌핵 : "와 저거 핵 맛있겠다." -전전두피질 : "ㅇㅋㅇㅋ 일단 그건 운동하고 생각해보자."
"배측 선조체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일에만 신경 쓴다."
(나쁜 습관인지 좋은 습관인지 애초에 얘는 관심이 없다)
"선조체는 일단 길들이고 나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충동을 촉발하는 역할을 하는 측좌핵은 마치 '파티광'을 보는 것 같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아주 큰 전전두피질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의지적 행위를 통해 나쁜 상태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
즉 브레이크를 밟아 습관에 따라 행동하는 걸 멈출 수 있다. 이것은 전전두피질의 '세로토닌'이 제 기능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로토닌의 공급량에는 한계가 있다고 책에서는 설명한다. 위의 대화처럼 충동에 저항하는 전전두피질의 올바른 기능은 마치 제한된 수의 총알 갖고 좀비떼에 맞서 싸워야 하는것과도 비슷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전전두피질에만 의지하지 않고 세로토닌을 촉진을 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은 어떤게 있을까. 바로 그 설명을 Chapter.2에서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 Chapter.2 리뷰로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어쨌든 Chapter.1 에서는 '하강나선에 갇힌 뇌'에 대한 모든 구석구석을 살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지만 이미 심각한 우울함의 굴레 속에 빠져버린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시도조차 두렵고 버거울 것이다. 나 역시도 분명히 그랬고 끝 없는 여러번의 시도 끝에야 챕터.1을 온전히 정독 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동안 머릿속을 방해하는 많은 잡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하여 늘 포기하고 실패하기 일쑤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의식적' 노력 끝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 자체로 나에게는 만족스럽고 뿌듯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 책은 꽤나 우울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정신적 이성의 '끈'을 힘들게나마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될 시기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다.
『나이든 고양이와 살아가기』는 마지막 순간을 맞은 고양이 반려인의 현명한 선택을 돕는 지침서로, 고양이의 ‘쇠약’과 ‘죽음’에 대해 다룬다. 노쇠뿐 아니라 질병과 사고로 인해 자신의 고양이가 고통에 시달릴 때, 질병은 어떻게 진행되고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또 집에서는 어떻게 돌봐줘야 하는지 항목별로 사례를 들어 알려준다. 고양이가 반려인의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고양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건강 정보를 알차게 담았다.
특히 이 책에는 신장 질환, 간 질환, 치과 질환 암, 심장마비, 뇌졸중, 실금, 관절염, 치매 등 나이든 고양이가 걸리기 쉬운 질병 20여 가지를 수록하여 예방과 치료를 도왔다. 수의사와 동물 영양학자, 동물 전문가의 따뜻한 조언과 꼼꼼한 감수를 더했으며, 무엇보다 질병과 상황에 따른 풍부한 에피소드는 애묘인들의 고민과 지혜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내린 마지막 결정을 통해 진정 고양이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책 소개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우리 냥이가 올해로 9세에 접어들었다. 어찌어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9세라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처음에 발견당시에 차 밑에서 우렁차게 야옹야옹 우는 소리를 듣고 꺼내보니 손바닥 만한 새끼 고양이가 혼자 울고 있던걸 데려와서 키운게 벌써 9년이라니...
사실 나는 우연한 계기로 덥석 주워와서 고민없이 키우게 되었지만 섣부르고 어리석은 판단일 수도 있다. 진심으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면 가까운 이비운후과를 찾아가서 "알러지 테스트"반응을 꼭 해보고 키우기를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불운한 '고양이 털 알러지를 가진 집사'가 되기 때문에.. 그 고충은 모두 다 본인 몫이라는 것. 어쨌든 우리 냥이는 지금 사람으로 치면 중년기를 지나 폐경과 은퇴를 겪는 시기에 접어드는 나이다. (9세부터 13세까지)
우리 냥이는 여전히 애기같고 귀여운데 이놈이 중년 야옹이라니... 새삼 시간이 정말 빠르구나 라고 느끼고 있다.
저 책은 사실 우리 냥이가 이제 막 5세 정도 됐을 때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고 미리 사뒀었던 책이다. 언젠가 노묘가 될 것을 예상해서 미리 읽어 봐둘려고 샀었는데 그때 그때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찾아서 꺼내어 보기 좋다. 사소한 질병부터 중증 질환까지, 기본적인 구충 관련 지식 등을 포함해, 각 질병마다 고양이에게 나타나는 증상들 또한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양이의 질병에 대한 얘기들이 많고 특히 노화가 시작됐을 때 주의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설명들이 많다. 우리 냥이는 아무래도 '요로결석'수술을 받았던 병력이 있다보니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한 케어는 꾸준히 신경쓰고 있다. 다행히도 그 외에 특별히 아직 아파하는 곳은 없어서 정말 다행이지만... 그 외에 신경 써야 될 것 같다고 느끼는 부분은 '치아관리'인데 사실 나는 규칙적으로 냥이의 양치질을 꾸준히 시켜주진 않았고 그동안 치석제거 기능이 있는 간식 급여로 편하게 케어 해왔었는데 이제 나이도 나이긴 만큼... 냥이 전용 칫솔로 양치질을 최소한 규칙적으로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더 관리를 잘 해주는 훌륭한 집사님이라면 꾸준히 냥이 스켈링으로 관리하고 있겠지만... 항상 우리 냥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는게 맘이 아프다. 어디 아프기라도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면 그렇게나 맘이 찢어진다.ㅠㅠ
아무튼 간에, 난 이녀석이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한다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 다행히 요로결석 수술 이후로 몇년동안 처방사료를 꾸준히 먹이고 있는 지금까지 재발은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중성화한 수컷 + 뚱냥 + 노묘+예민한 성격 고양이라면 정말로 요로 질환에 신경 써 줄 필요가 있다. 요로질환에 가장 잘 걸리는 필수 조건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냥이가 죽고 났을 때의 처리에 관한 부분이다. 광견병과 같이 전염병에 걸린 경우가 아니라면 이 책에서는 '땅에 묻는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국처럼 정원이나 잔디, 텃밭을 갖고 있는 사람 보다 빌라, 아파트 주거 가구가 많으므로 딱히 묻어 줄 장소를 찾기가 참 애매하다. 땅에 묻어주는 방법 외에 책에서 소개하는 것은 화장 / 소각 / 박제 / 동결건조 / 복제이다. 아니, 화장이랑 소각은 알겠는데 박제,동결건조,복제는 도대체 뭐지?
화장 : 화장은 말 그대로 고양이를 화장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고양이가 좋아했던 장소에 뿌려주거나 유골함에 담아 집으로 가져온다.
소각 : 동물병원에서 시신을 처리해주기도 한다. 동물의 시신이나 '의료 폐기물'등을 소각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회사에서 대신 화장을 해주는 것이다.
박제 : 박제사가 말 그대로 고양이를 박제해주는 것인데 어색한 표정과 느낌 때문에 결과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박제를 하면 피부, 털, 발톱 등은 진짜지만 눈은 유리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결건조 : 고양이의 시신을 동결한 상태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 완전히 건조되기 까지 약 6개월이 걸린다. 미라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한 방법.
복제 : 복제를 할 때는 소량의 피부 샘플을 떼어내 실험실에서 배양한다. 체세포 핵을 추출해서 갓 배란된 난자세포에 착상 시킨 후 수정된 세포를 대리모 고양이에게 주입해 원래 세포를 기증 한 고양이와 같은 유전자의 새끼 고양이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복제 기술은 완벽하지 않고 복제 된 동물의 약 30%는 기형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세상은 아무리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만 박제/동결건조/복제를 시도하는집사님들이 정말 있을까? 무튼 사후처리로 저런 방법을 원한다면 어쨌거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제를 했을 경우에는 아무리 똑같은 유전자로 복제 했다지만 키우는 환경에 따라서 전에 키웠던 고양이와 성격, 행동이 전혀 다를 수도 있고 그저 '복제'일 뿐이지 내가 키웠던 바로 그 똑같은 고양이라고 여기긴 힘들다. 그냥 내가 키우던 고양이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또 다른' 새로운 고양이를 키우게 되는 셈이다. 글쎄 그것이 집사로 하여금 죽은 고양이에 대한 상실감으로 부터 조금이라도 정서적 위안이 된다면 괜찮겠지만 마치 죽은 고양이가 새롭게 환생한 것 마냥 생각한다면 큰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생각으로 '복제'를 시도하려 한다면 안하는게 낫지 않을까...
'고양이를 평생 책임 진다는 것'
- 한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이 2009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이 반려동물에게 한달에 쓰는 비용은 약 9만 9000원 이라고 한다. 그 중 식비가 4만 3000원 정도로 50%에 달했고 그 다음은 의료비로 3만 1000원. 미용비로는 2만 4000원 가량 쓴느 것으로 조사 됐다.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면 현재는 매달 10만원 이상. 연간 120만원 이상이라 추정 할 수 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을 16년으로 상정하면 한 마리를 평생 키우는 데는 약 2000만원이 드는 샘이다.
한마리의 고양이를 평생 키우는데 (16년을 기준으로) 약 2000만원이 든다는니, 생각보다는 많이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양이가 아파서 큰 수술을 받게 될 경우를 제외하고 통상적인 수치로 이천만원이겠지만 사람 한명 키우는 비용에 비하면, 대부분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기에 평생에 걸쳐 키우는데 2000만원이면 많이 드는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적다고 볼수도 없겠지만. 아무튼 냥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책임감은 더 커지는데 때때로 상황이 안좋아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워 질 때마다 얼마나 미안함이 몰려오는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특히, 가족이 함께 키우는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혼자 책임을 지고 키우는 거라면 그 책임감이 더욱 막중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러지를 가진 채로 9년이란 시간을 키워왔고 나머지 남은 시간들도 별 탈 없이 함께 보낼 수 있길 소망한다. 시간이 지나고 노화로 인해 냥이가 겪게 될 아픈 순간들을 불가피하게 마주하겠지만 최대한 그 고통이 없었으면 한다. 그보다 먼저 부디 아프지 않길 바라며...!
꽤 몇년전에 구매했던 책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서점에서 무심코 이 책을 발견하고 구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예술가, 창작가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사실 그 보다 '예술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예술가들이 흔히 직면하는 두려움, 그들이 작업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불안과 혼란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조언해준다. 창작을 하는 사람,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냉정히 현실세계를 알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위로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말에서 '창작'과 '예술'이 얼마나 평범한 이들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인지를... 느낄수가 있다.
한때 예술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 이제 막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 속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 예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들, 예술을 소비하는 관람객 및 대중들. 그 누가 읽게 되든, 이 책은 각자의 생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작게 나마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내가 살아 가고자 하는 방식, 열심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로 그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하지만 절대로 압박 받진 않되, 그저 지향하는 것' 이라 정했던 내 나름의 인생의 주제의식에도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생산적으로 살아감 그 자체가 곧=인생을 창작하는 것이기에.
기억에 남는 글들을 대략 발췌해서 아래에 적어 놓았는데 그중에서도 51p 완벽이라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는 질을 추구하기 위해 골똘이 고민하고 투자하는 시간과 그저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많은 창작과 습작을 시도했을 때 어느 쪽에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까. 라는 실험에 대한 내용이다. 결국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고민하고 전략을 짜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행동들이 가끔은 그저 거침없이 행동으로 추진했을 때 보다 어쩌면 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후 창작한 그룹보다 단순히 최대한 많은 작업물을 만들도록 지시했던 그룹에서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결과물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지나치게 '완벽'이라는 것을 추구하고 그 생각의 틀에 갇히게 되면 오히려 때로는 그것이 창작의 효율을 저하 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그저 행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주어지고 방법이 나타 난다는 것. 어디서 우연히 들었는데 게으른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단순 의지박약으로 게으른 것이 아니라 '완벽할 수 없다면 아예 시도 조차 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는 매우 엄격한, 혹은 겁 많은 게으름쟁이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면 어설프고 실수 남발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는게 너무 두려워 늘 외면하고 회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므로... 여러모로 공감 가는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책은 아마 그런 마인드의 창작자들에게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뭐, 창작자 뿐만이 아니라 그 누가 됐던.
"예술가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천상의 것도 아니고 영웅적인 것도 아닌, 흔하고 익숙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천재가 아닌 바로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
"예술가들은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의 고통을 넘어서야만 작업에 임하는 법이다. "
16p 예술적 재능은 학습될 수 있다. '기교'는 배울 수 있는 반면에 '예술'은 신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마법같은 선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지않다. 크게 보았을 때 예술가가 되는것은 자신을 감수하는 법을 배워 자신의 작품에 개성을 싣는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따름으로써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분명히 이러한 특성들은 학습이 가능하다. 결국 재능이라는 것도 불굴의 인내나 노력과 다른 이름이 아닌 것이다.
17p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술은 장점만을지닌 인간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결점 없는 존재는 예술을 할 필요도 없다. 이상적인 예술가는 이론상 절대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19p
예술작업은 다소 외롭고 보람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사실, 예술가 대부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품을 창조해 내는데에
자신들 시간의 일부를 (어떤 예술가들은 전부를) 쓰고있다.
예술 세계에서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반응의 결핍을 낭만화 하려고 느낄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이는 낭만적일지는 모르지만 잘못된 방식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냉혹한 진실이다.
사람들이 한 예술가의 작품 대부분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34p 예술 창조는 불확실 하며 예측할수 없는 과정으로, 불확실성은 예술 창조 욕구의 본질을 이루고 불가피하며 절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51p 훌륭한 작품은 완벽한 작품이 아니다. 완벽 그 자체가 역설적으로 결점 있는 개념
51p 완벽이라는 함정.
52p 훌륭한 작품을 완벽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에도 오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72p 예술가가 빠지게 될 딜레마는 명백하다. 즉 새로운 세계를 개척함에 따르는 대중의 거부반응의 위험을 감수하던가, 아니면 이미 다져진 길을 따름으로 인정을 구걸하던가 하는 것이다. 인정받는것이 목표인 경우에는 두번째 전략을 택하는 것이 압도적이다. 예술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라. 그러면 인정은 자동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길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그 길을 택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위험보다도 미래를 위하여 어떤 새로운 것도 남겨놓지 못할 것이라는 위험이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