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CODA , 2021 제작요약미국 드라마 2021.08.31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112분감독션 헤이더출연에밀리아 존스퍼디아 월시 필로에우헤니오 데르베스말리 매트린  더보기줄거리2021년, 음악의 마법에 빠질 시간! 가장 조용한 세상에서 시작된 여름.. 더보기누적관객수32,961 명 (2021.09.05,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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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이 포스팅의 제목을 뭐라고 써야할까 나름대로 여러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고민을 했다. 어쨌든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한줄평은 한 가족의 용기있고 아름다운 '독립'을 그려낸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라랜드 음악감독이 참여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고나서 알게되었는데 '라라랜드'가 로맨스를 주제로 다룬 뮤지컬 영화였다면 '코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린 영화다.  

 

그리고 또 앞서 제목에 '조금 특별한' 가족 이라고 칭한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농인'으로 등장하는데 그 유일한 한명이 바로 영화속의 주인공 '루비'이다. 루비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청력을 갖고 태어났는데 다소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로 인해서 어릴때부터 종종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일쑤였고 무엇보다도 '루비'의 존재는 가족들에게 있어서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큰 존재로 등장한다.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루비를 통해서 늘 세상과 소통해오던 가족들이기었기에 루비는 그들에게 있어서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통역사' 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의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평생 할 줄 아는게 '고기잡이' 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서 온 가족이 생업을 함께 이어나가기 위해 매일 고기잡이 배에 올라타 일을 한다. 영화 첫 장면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일하는 루비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대충 듣기에도 꽤나 노래에 소질을 타고난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루비는 내심 짝사랑하던 남자아이를 따라서 같은 써클부에 들어가게 되는데 바로 '합창단'에 지원서를 넣게된다. 그 계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갖게 된 루비는 음악 공부에 점점 더 깊숙히 빠져들게 되고 그러면서 그간에는 가족들과 겪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부딪히게 된다. 어쩌면 루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언젠가 꼭 겪을 수 밖에 없는, 애써 가족들이 외면해오고 있던 그 부분들이 루비의 음악활동을 시작으로 하나 둘 문제들을 직접 맞닥들이게 되고, 가족들은 그 불안함에 대해 여전히 회피하고 인정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가족들간에 얽히고 설킨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의 갈등들이 하나하나 공감이 가서 더욱 인상이 깊었다. 어릴때부터 가족들의 귀와 입이 되어주면서 자라온, 사실상 가족들을 이끄는 가장 역할을 해온 어린 루비의 입장과, 어른으로써 늘 인정받고 싶지만 '농인'이라는 이유로 그닥 큰 책임감을 부여받지 못한채 언제나 불만감과 의기소침한 마음을 품고 있는 루비의 오빠 '마일스'. 딸에게 항상 많은 부분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자식을 어린 아이 마냥 취급하고 대하는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 등등 그 모든 갈등들이 내게는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던 것은, 결국 저 영화에서 보여준 가족들의 용기와 사랑. 절대 한명만 노력해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가족의 화합 같은 것들이, 아직은 내가 느껴보지 못한 그 무엇.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에서 였다.

 

어쨌든 서두에서도 얘기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 받은 부분은, 결국 온 가족들이 주인공 '루비'의 꿈을 응원하고 그녀의 음악 인생의 시작을 지지하게 됨으로써 가족들이 생전 처음으로 겪어야 될 지 모르는 루비의 큰 빈자리에 대한 부담을 이겨내기로 한 것, 언제나 가족들 옆에 서서 봉사하는 것이 당연했던 루비를 결국은 놓아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인 농인 가족들의 용기와 따뜻한 마음이었다. '루비' 개인으로써의 음악 인생의 시작은 곧 가족들에게도 또 다른 '독립'의 의미였다는 것. 물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갈등과 다툼이 일어났지만, 세상과 가족 사이에서 늘 매개체 역할을해 온 루비 없이 본인들이 익숙하게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이제는 직접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갈 길을 선택한 용기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세상에 완벽한 가족은 어디에도 없다. 부족하고 모자란것 투성이인 작은 공동체. 그것이 바로 가족이 아닐까? 그리고 모자라고 부족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어야 하고 때로는 서로의 '존중'을 위해서 다같이 힘을 합치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냈을 때 그 과정에서 더 한 단계 성장하는 끈끈한 가족애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가족의 화합은 그동안 내가 너무나 바라고 바랬던 이상적인 모습의 화합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결국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다른 한사람을 위해서 끝없이 희생하거나 또 그 누군가는 그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사이에 서로 집착하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행위 같은 것들이 너무 쉽고 당연하게 일어나는것이, 내가 현실에서 더 가까이 닿아있는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모든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저마다 다 부족하지만 결국 두터운 가족애를 쌓아가는 건 오직 '용기'를 낸 가족들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의 시작은 한사람만의 노력으로 가족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였을 때 가능하다는 것. 

 

 

문득 동시에 떠오른 다른 영화들 중에서 모두가 높은 IQ를 자랑하며 고학위 학벌을 자랑하지만 사실은 허점 투성이였던 가족 이야기 영화 '스마트피플',  자살시도를 한 게이 삼촌과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말 한마디 꺼내지 않는 오빠, 그리고 완벽주의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아빠, 뚱뚱하고 못났지만 미녀 어린이 대회에 나가기를 꿈꾸는 소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리틀 미스 선샤인',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 어느 피 섞인 가족들 못지않는 깊은 유대관계를 보여준  영화 '가족의 탄생' 그리고 '죽여주는 여자' 까지. 내가 좋아하는 가족 영화들을 나열하고 보니 하나같이 느낄 수 있는 공통점들은 바로 완벽해 보여도 완벽하지 않은, 또는 대놓고 허점 투성이에 부족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런 그들일지라도 '가족'이라는 공통체의 유대감 하나로 서로를 지켜주고 아껴준다는 점이다.

 

 

내가 바라고 그리는 가족의 이상향이란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그냥 서로를 보듬고 아껴주고 지켜주며 응원해주는 것. 그냥 그 뿐이다.

 

 

 

 

 

 

 

 

 

스틸 라이프 Still Life , 2013 제작요약영국 외 드라마 2014.06.05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88분감독우베르토 파졸리니출연에디 마산조앤 프로갯카렌 드루리앤드류 버칸  더보기줄거리나의 외로움과 쓸모를 발견해준 단 한 사람, 당신의 ‘존 메이’는 누구인.. 더보기누적관객수5,391 명 (2014.07.02,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역대 영화 순위

 

 

 

오랜만에 기억에 남을 좋은 수작을 보았다. 처음에 주제가 '고독사'에 대한 영화라고 얘기 들었을 때 굉장히 우울한 분위기를 상상했다. 하지만 다 보고 나서 느끼는 영화의 분위기는 우울하다기 보다 조용하고 평온하며 묵직한 울림이 느껴진다. 잔잔하지만 전개가 흥미로운 영화야 말로 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오랜만에 그런 취향저격의 영화를 보게되어 기쁘다. 

 

사실 살면서 고독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몇번이나 있을까 싶다. 주로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 혼자 외로이 살던 독거노인이 고독사를 맞이했다는 글을 보곤 했는데 요즘들어서는 점점 젊은 연령층의 고독사 소식도 꽤 빈번하게 접하는 추세다. 어찌됐든 '고독사' 라는 것 자체를 '저 너머 어딘가 있는 소외계층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정도로 여겨지다가 시간이 갈 수록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은 그저 기분 탓 만은 아니라고 본다. 

 

내게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깜깜한 외로움, 희망이 없는, 고독과 같은 단어들을 일상처럼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가족들과의 연락을 최대한 기피했었고 부모님께 걸려오는 전화도 종종 무시하고 그렇게 스스로 고립됨을 선택했던 우울한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이런식으로 가족들과 연락을 멀리하고 혼자서 살아가다가 어느날 내가 죽음을 맞이하면, 누군가 내 사망소식을 몇일이 훌쩍 지나고 혹은 그 보다 더 뒤에 발견한다면 그게 말 그대로 '고독사'인 셈이지 별 다른 특별한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외롭게 혼자 죽는다는 것'이 별안간 '소외계층'에게서 발생하는 죽음이 아니라 평범한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라는 생각을 아마 그때 처음 했었지 싶다.

 


 

 

 

영화에서는 '존 메이' 라는 미혼의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그는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차 공무원이며 그의 관할 구역 내에서 발생한 고독사 현장에 늘 나타나는 인물이다. 그의 주 업무는 바로 고독사로 운명을 달리한 사망자의 유품을 단서 삼아서 장례식장에서 읽힐 추도문을 작성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아마도 거기까지가 구청에서 공식적으로 그에게 지시하는 업무 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그가 더 주력을 다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고인과 관계된, 또는 관계되었던 가족이나 지인들을 여러방면으로 수소문하여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내게 되면 장례식에 참석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정중히 여쭙는 데 까지가 그의 일이었다.

 

 

그렇다보니 장례식을 치르는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다소 길어졌고 업무 처리 속도가 다소 늦다는 이유로 구청에서는 그를 해고하고 다른 부임자를 고용하게 된다. 그때 마침 그가 사는 아파트 맞은 편에서 또 다른 고독사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는 마지막 의뢰인 '빌리 스토크' 씨의 사망건 까지 업무 수행을 마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상사에게 간절히 요구한다. 그리고 그는 온 힘을 다해서 그의 과거를 뒤쫓기 시작하고 그의 인생을 스쳐간 젊은 시절의 애인부터 함께 근로했던 동료, 전우들, 거리의 노숙자들 그리고 그의 남은 혈육 그의 딸 까지, 그와 관계된 과거의 지인, 가족들을 찾아서 그의 변화무쌍했던 과거 인생들을 간접적으로 접하게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들에게도 장례식에 참석 해 줄 것을 어느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요구한다.

 

 

 

 

 

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실상 유일무이했던 나름의 로맨틱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가 고인의 딸을 찾아서 장례식에 참석해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그녀의 딸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주인공이 기쁜 마음으로 장례식 준비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묘비의 색깔은 무엇으로 해야 좋을지, 관은 어떤 소재로 만들어진 것을 쓸것인지 추모곡은 무엇으로 할지 등등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과정에서 고인의 딸은 그에게 묘한 기분을 느끼는데, 아마 내가 저 입장이 되더라도 그녀와 같은 감정이지 않았을까. 오랜시간 생면부지하고 살아가던 아빠의 사망 소식을 어느날 낯선 공무원을 통해서 듣게 되고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 진심으로 장례식 절차를 준비하고 그 과정을 섬세하게 설명해주는 남자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남자 뭐지? ㅈㄴ 섹시하네" 라는 생각을 무의식으로 하게 될 것. 나이가 몇살이고 간에 일단 본능적으로 강한 호기심을 느낄 것 같다.

 

그렇게 독신으로 평생을 살아오던 '존 메이'씨 에게도 오랜만에 로맨스가 찾아오는걸까? 싶었지만 영화는 순식간에 충격적인 전개로 내리 꽂는다.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자아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결말이 더욱 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평생을 남의 장례식을 위해서 일생을 바쳐 온 그에게 갑자기 예상치 못한 그 전개는 한편으로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결말이었지만 영화적인 의미로써는 어쨌든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지 않았나. 그리고 미신적인 얘길 하나 던지자면 '사후세계'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 과 같은 존재에 대해서 어느정도 믿는 나로써는 썩 나쁘지않은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홀로 외롭게 살아갔지만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늘 위로했고 또 많은 사람들로 부터 위로를 받은 그는 결론적으로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 

 

 

 

 

 

 

 

요약 한국 | 드라마 | 2018.07.19 개봉 | 청소년관람불가 | 99분

감독 이환

출연 김가희강민아이재균이유미  더보기

줄거리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이름: 박화영 나이: 18 직업: .. 더보기

 

 

말 그대로 "리얼 10대 생존기"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보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박화영" 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졌다. 사실 영화 개봉당시에 박화영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었던게 기억이 난다. 유튜브나 여러 다른 플랫폼을 통해서 "박화영"을 맡았던 배우에 대한 기사들을 어렴풋이 접했었는데 어른들은 몰라요를 본 계기로 이제서야 영화 박화영을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 '박화영' 에서는 비행을 일삼는 '무리'들이 등장한다. 거의 가족처럼 같이 밥먹고 잠자고  함께 지내다시피 하는 아이들이지만 사실 뜯어보면 가족도, 친구도 아니다. 그들은 함께 어울려 다니지만 사실 철처한 서열관계로 이루어진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로 엮여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엄마'를 자처하는 한 아이가 등장한다. 그 아이는 바로 '박화영'. 걸핏하면 "니들은 나 없었으면 어쩔뻔 봤냐?" 라는 말을 시시콜콜하게 던지는 캐릭터인데, 친구들을 위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청소도 하며 헌신적으로 '엄마' 역할을 다하지만 언제나 서열1위 우두머리 남자 아이에게 맞아 터지는게 일상이다.  이렇게 무리지어 다니면서 나쁜짓을 일삼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복잡한 관계들을 묘사한, 소히 말하는 학교 일진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게 영화 '박화영 '이다. 그에비해 '어른들은 몰라요'의 경우에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여자아이가 가출을 감행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둘 다 청소년들의 방황과 비행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그러면서도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뻔 봤냐?"

 

라는 이 대사는 영화 내내 자주 등장한다. 말했다시피 화영이는 '엄마' 역할을 자처하면서 친구들 무리에 끼어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엄마'라는 역할의 의미가 좀 이상하다. 친구들을 꼭 자식 챙기는 것 마냥 먹여주고 청소해주고 빨래해주며 허드랫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어째 '호구'라는 말이 '엄마' 라는 단어로 둔갑된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 근데 당사자가 본인 스스로를 '엄마' 역할 이라고 하니 할말이 없다. 여기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었겠지만 화영이가 하는 '엄마'라는 역할은 사실 '시다바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엄마'라는 뻔뻔한 단어는 화영이 본인의 '정신승리' 라는 걸 알 수가 있고 그 정신승리에 주변 친구들까지 모두 동참하고 있는 샘이다. '괴롭힘' , '왕따' , '시다바리' , '호구' 와 같은 단어들은 화영이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기에 너무 초라하고 자존심 상하기 그지없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엄마' 라는 그럴싸한 단어는 그 어떤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난 엄마 역할이니까" 라는 말로 쿨한 척을 가능토록 하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단어였던 것이다.

 

 

 

 

 

잠깐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영화에 나오는 저 추억의 노스페이스 잠바를 보니 문득 생각난 얘기가 하나 있다. 영화 주제와는 별개의 얘기이긴 하지만 옛날에 어떤 짤 중에 노스페이스 해외본사 창업주가 한국에서 노스페이스 브랜드 성공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한국은 산지가 발달해 등산을 즐겨 한다고 들었다. 아마 그 때문에 노스페이스가 사랑받는 것 같다" 라는 대답을 했었다고 하는데, 저 당시에 노스페이스 잠바 주류 소비층이 거의 10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굉장히 유행이었고 당시에도  50~70만원 하는 나름 고가의 잠바였어서 '노스페이스 패딩' 사달라고 부모님한테 찡찡대는 애들을 두고 "등꼴브레이커"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약간 폐륜을 상징하는 잠바였다. 그 '노스페이스' 소비 유행 문화를 선도한 아이들 중엔 꽤나 "일진" 애들이 적잖이... 아니,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노스페이스 창업주는 집-학교-집-학교만 반복하는, 산행 할 시간이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 한국 10대 아이들이 바로 주 소비층이었다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과연 알고 있을까.

 

 

 

 

 

아무튼 노스페이스 잠바가 나오는걸로 봐서 2005~2007년도 10대 고등학생들 감성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 것 같았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영화 '박화영'도 그렇고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도 그렇듯이 나는 공통적으로 '관계'의 아이러니함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본래의 '친구'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행하지 못할 법한 행위들을 저지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포장한다는 것이다. 옛날을 돌이켜보면 10대 아이들만의 이런 알수없는 모호한 관계들은 무수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은근한 폭력들 또한 꽤나 빈번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예는 극단적으로 꽤나 수위가 높은편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은근한 '갑' , '을' 과 같은 서열은 조금씩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특히 극중에 '은미정' 이라는 캐릭터가 또래 중에 우두머리인 남자친구를 등에 업고 친구들 사이에서 '여왕벌'이 되어 군림하고자 했던 부분 역시도 그들의 '서열'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화영이처럼 일명 '호구를 자처하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너무 좋은 먹잇감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화영이와 진짜 엄마와의 관계를 조금씩 엿볼수 있는데 화영이에게 차지하고 있는 결핍의 요소 중 많은 부분들이 친엄마로부터 파생된게 아닐까 라고 추측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나의 결핍을 남에게 대신 행해줄 때  - 대리 보상 받는 마음"

 

  

나는 화영이를 보면서 '정신승리' 와 더불어 '대리 보상' 같은 마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화영이는 친엄마의 보살핌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면 알 수가 있는데 거기서 파생된 결핍으로 인해 자신이 받았어야 했지만 받지 못했던 엄마의 관심과 보살핌들을 자신이 누군가에게 행하면서 마치 '대리만족' 내지는 '대리보상'을 느끼고자 했던 화영이의 무의식적 행동이 아니었을까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보았다.

 

 

 

 

 

그리고 화영이의 이런 헌신적 태도는 영화가 전개될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영화 후반부에는 도저히 겉잡을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사건이 발생 하는데 화영이의 이런 헌신적 태도도 이 부분에서 더욱 절정에 치닫으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된다. (더이상 헌신적이기도 불가능하기에) '헌신'을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가학적인 수준에 이르기 까지도 자기만의 합리화된 역할놀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화영이. 이쯤되면 그녀의 헌신은 어쩌다 이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타적마음=양보하는마음 < 봉사하는 마음 < 헌신하는 마음 < 나를 희생하는 마음 < 손해보는 것 < 이용당하는 것.... 

< 가학적 상황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 < 자학적 쾌감 

 

 

화영이는 스스로에게 가학적인 상황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려 애쓰는 아이였고 그 마음의 아주 작은 씨앗,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마도 너무나도 평범하고도 정상적인 "이타적인 마음"에서 비롯될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가학적 쾌감'의 원인이 '이타적인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너무나도 정상적인 마음 상태라 할지라도 어떤 계기로 큰 충격과 결핍을 한꺼번에 안게 됐을 때 인간이 비약적으로 갑자기 비정상적 심리상태에 빠르게 도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영이는 타의적으로 폭력을 당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자학함으로써 그것이 마치 내 '책임'을 다한다는 거짓 소명에 빠져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고자 했던 불쌍한 아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자학적 쾌감은 자해와도 매우 가까운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비정상적인 쾌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위태롭다고 생각 될 때, 희망이 가장 최저치에 있을때, 그리고 도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어떠한 감정적 기쁨도 누리지 못할 때 되려 최악의 상황에서 쾌락을 찾고자 하는 역발상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감정적 경험은 살면서 하지 않는게 좋지만 더욱이 아직 한참 어려도 어린  10대 시절에 이런 절망적 감정을 느낀다면 누구라도 지혜롭고 의연하게 대처하긴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화영이처럼. 어떤식으로든 이 죽을 것 같은 불행을 '기쁨'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을까.

 

 

 

 

 

 

 

 

 

 

 

Young Adult Matters, 2020

개봉 2021.04.15

장르 드라마

국가 한국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127분

평점7.7

누적관객10,934명

박스오피스14위

수상내역25회 부산국제영화제, 2020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보고왔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담고있지만 어쨌든 자극적인 장면들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의 영화다. 코로나19 이후로 영화관을 찾는 횟수가 대폭 줄어든만큼 실로 엄청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다. 어른들은 몰라요 라고 적힌 포스터 맨 위에는 "Young Adult Matters"라는 영어 제목이 적혀있다. 직역해보면 '청소년들의 문제' 라고 해석되는데 실제로 'young adult'는 청소년이기도 하고 22에서 25세까지의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트렌드에따라 조금씩 차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는 청소년에서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청춘들까지 두루두루 아우르는 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18세의 두 동갑내기 여자아이 두명과 20대 초반의 두 청년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에피소드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있고 각자 그들만의 말못할 고민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청소년들의 방황은 거의 어린 청소년들이 저지를 수 있는 타락 중에서도 가장 맨 밑, 더이상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끝이 아닐까 싶을 수준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고 보는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정도로 우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학교폭력, 가출, 절도, 성매매, 마약 등등 나쁜짓이라는 나쁜짓은 거의 죄다 등장하는데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나쁜짓들 그 바탕에는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들이 잘못'을 함께 투영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영화는 세진, 주영, 재필, 신지 이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18살 여고생 세진이 팔에 자해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피로 범벅된 자해 흔적들을 그대로 인스타 라이브로 내보낸다. 이 세진이라는 아이는 여동생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데 학교에서 소히 '일진'으로 불리는 무리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아이러한 부분은 일진 무리중에서도 괴롭힘을 주도했던 여자아이와 방과후에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락볼링장에 놀러가기도고 같이 보드를 타는 등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며 친하게 지내는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세진'은 학교폭력을 겪음과 동시에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함께 당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청소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소 '이상한' 친구관계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보여 준 장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라는 명목아래 사실 그 관계 사이에서 '갑' , '을' 관계가 존재하고 심각하게는 폭력이 오갈 정도가 되지만 가볍게 사과한마디 건네면 그만인 것이다.  세진이를 괴롭히는 일진 여자아이는 친구들 앞에서는 '세진'의 괴롭힘과 폭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즐거움과  필요에 의해 세진과 밖에서 어울려 다니기도 하고, 자신의 괴롭힘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둥 굉장히 이중적 면모를 보여준다.

 

 

 

 

락볼링장에서 자신을 늘 괴롭히는 친구과 언제그랬냐는 듯 함께 놀고있는 세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베시시 바보같은 웃음을 보여준다. 친구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일진 여자아이가 자신을 향해 소리지르고 윽박지르는 상황 속에서도 되려 또 베시시 웃으며 그 친구의 입에 입을 맞추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줬는데 나는 사실 이 단락에서 세진이가 갖고있는 극한의 '애정결핍' 증상이 느껴졌는데 친구의 폭력과 폭언에도 자신의 막무가내식 '애정표현'으로  그 폭력을 무참히 상쇄시키려는 듯 시도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세진이 선생님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덜컥 임신을 하게되고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그 상태로 가출을 감행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진은 이미 4년째 길거리를 떠돌며 가출 생활을 하고있는 '주영(하니)'을 우연히 만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는데 마트인지 전자상가인지 아무튼 상가내 화장실 천장에서 내내 잠적하고 있다가 불이 꺼지고 상가가 문을 닫으면 그제서야 나와서 상가 내에 판매하는 진열상품들을 가방속에 모조리 넣고 훔쳐 달아난다. 주영은 이런 방식으로 길거리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고 '주영'은 세진이가 어떻게든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돕는 사이가 된다.

 

 

 

 

 

 

 

주인공 '세진'이가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한 힘겨운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목적을 달성하게 위해 결국 나중에는 4인이 힘을 합치게 되는데 갖은 고생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예를들면 매일 담배를 피는 건 다반사고 약에도 손을 대고 임신 상태로 계단에 굴러 떨어지는 등) 쉽사리 유산되지 않는 설정이 좀 아이러니 하기도 했지만 아직 영화에서 보여줄 이들의 타락이 훨씬 더 많이 남았는가보다 생각하며 일단은 묵묵히 영화를 관람했다.

 

세진, 주영은 20대 청년인 재필, 신지를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데 바로 세진의 낙태약을 불법으로 구매하려는 과정에서 직거래 목적으로 만난 수상한 아저씨와 모텔에 동행하게 되고 그 현장에서 세진이 강간을 당하자, 깜짝 놀란 주영은 맨발로 곧바로 뛰쳐나와 마침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재필이와 신지를 발견한다. 주영은 온 몸을 던져 막무가내로 그들 앞을 막아서서 도와달라고 호소하게 되는데 바로 그 장면이 그들의 첫 만남이다.

 

 

 

 

 

 

 

새파란 머리의 재필, 그리고 마치 커트코베인 안경을 따라쓴 것 같은 신지. 두 청년도 세진, 주영과 다를 바 없이 방황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청년들이었다. 넷은 그 계기로 어울려 다니며 동고동락 하다시피 하는데, 어느순간 세진이의 낙태 수술을  성공시키기 위한 여정에 그들도 자연스레 동참하게 된다. 나는 사실 초반부에 재필이라는 캐릭터를 타락했지만서도 내면에는 일말의 책임감과 최소한의 정의감, 고집이 있는 성격의 소유자 라고 생각했었는데 ( 세진이의 낙태를 물심양면 도우려는 모습을 통해서 ) 그렇게 동거동락하며 서로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결국 서로를 배신하고 등쳐먹고 이용게되고 애초에도 '신뢰'가 있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더욱 겉잡을 수 없는 타락의 관계로  떨어져간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정말 잔인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재필이가 외친 대사 "너 하나 때문에 도대체 몇명이 X되야 되는건데!" 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재필에게 잠재되어있던 폭력성과 광기, 분노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신이 아니었나 라고 생각한다. 물심양면 세진을 돕는 듯 해 보였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된 일은 없었고 그 모든 분노들을 결국 어디에도 해소하지 못한 채 이 모든 갈등과 문제의 시작이 마치 '세진'이었던 것 처럼 화를 뒤집어씌워 표출 하는 모습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도 요즘말로 '앰생인생' 전전하고 살던 재필이, 마치 세진을 만나고 모든게 엉킨 것 마냥 자기 인생의 화풀이를 그녀에게 쏟아내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게되면 요즘 힙합씬에서 핫하다는 젊고 어린 랩퍼들의 많은 노래들이 ost로 흘러나오는데 굉장히 이 영화의 감성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 사실 '힙합'이라는 장르도 반항과 분노의 표출과도 아주 가까운 연관이 있다면 있는 장르여서 그런지 몰라도 어린 청소년들의 방황과 갈등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에 아주 찰떡이었지 않았나 싶다. 특히 여주인공이 보드를 타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선선한 바람을 가르면서 보드를 타는 장면과 또 그 장면과 적절하게 어울리는 힙합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느낄 수 있는 우울하면서도 센치한 감성이 매력적이라면 매력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타락의 소재나 방황의 계기 등등 주인공이 여동생과 단 둘이 살게 된 이유라던지 배경 정보 제공이 조금 부족하기도 하고 스토리가 그렇게 디테일하게 잘 짜였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의 감독 '이환' 감독의 첫번째 화제작 '박화영' 이라는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그 영화와 비교 할 순 없지만 어쨌든 현실적이면서도 어둠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자극적이긴 하지만 여과없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딘가에는 저렇게 바닥 인생을 처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음지에 분명 존재할 것이고 결국 어른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일어난 결과라는 것은 영화를 보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 같다. 어른들과 사회의 관심의 부재, 그리고 무책임함과 그들의 더러운 욕망 따위가 만들어 낸 타락의 끝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이다.

 

 

 

 

 

 

 

 

 

 

 

 

클로저 Closer , 2004

제작 요약미국 | 로맨스/멜로 | 2021.02.18 (재) | 청소년관람불가 (재) | 103분 (재)

감독마이크 니콜스 출연 나탈리 포트만주드 로줄리아 로버츠클라이브 오웬  더보기

줄거리“Hello, Stranger!” 런던의 도심 한복판, 부고 기사를 쓰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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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장면 하나 나오지 않지만 '섹스'에 대한 얘기는 주구장창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한때 유행하던 심리테스트중에  A랑 B랑 C랑 D가 있는데 넷이 얽히고 설켜서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누가 누굴 배신하고 누가 누구를 이용하고 결론은 이 네사람중 당신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답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어떤것인지를 유추해보는 그런 심리테스트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네명의 등장인물들 중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누군가가 '서양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말했듯이 나중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만큼 파국으로 치닫는 네 인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물론 그중에서도 꼭 가장 나쁜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거의 높은 확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댄'을 가장 나쁜 인물로 뽑는데 나도 거기에 매우 동의하는 바다. 사실 가장 '나쁘다' 라는 평범한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 부족할 정도로 그는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찌질한' 면모까지 갖춘 최악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본능적 이끌림에 매우 충실한 성격인 '댄'은 타고난 바람기를 여과없이 보여주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바람기 만큼이나 추해보였던 것은 '래리'와의 기싸움 장면들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겉보기에는 진짜 '사랑'을 쟁취하려 갈망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사실 '사랑'을 찾고자 함이 아니라 두 남자가 서로에게 경쟁과 승부욕으로 더욱 심취하여 들끓어 오른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진심으로 그 사랑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흔히 우리가 '진짜 사랑'에 대해서 얘기할때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까지 안아줄 수 있는것이 진짜라고 얘기한다. 이하이 노래 Rose의 노래가사에 나오듯이

 

"내 사랑은 새빨간 rose 지금은 아름답겠지만 날카로운 가시로 널 아프게 할걸, 난 향기롭겠지만 가까이 할수록 널 다치게 할걸"

 

이라는 노랫말처럼 그저 아름답기만 한 사랑을 상상하고 기대하기에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가시'들을 가지고 있기에 결국은 그 고통까지 안아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상대방의 '고통'을 진심으로 안아주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게 문제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충분히 그런 '척' 해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수십번, 수백번씩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저울질 하고 따져보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진실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며 추궁한다. 그리고 바로 영화속에서 '댄'이 저질렀던 치명적인 실수도 이런것과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추하다고 느꼈던 댄의 행적을 몇가지 꼽자면 '앨리스'와 이미 동거중이었던 '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한 전적이 있는 섹시한 여성 포토그래퍼 '안나'에게 추파를 건다. 그러나 정식으로 만나보자는 그의 제안을 안나가 거절하자 '댄'은 집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데, 느닷없이 '랜덤채팅' 사이트에 접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안나'라고 하며 여자인 척 위장하고 상대방 남자인 '래리'를 흥분시키고 꼬셔낸다. 그리고 둘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그곳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하는데, 그곳은 바로 안나가 평소 즐겨 찾는 장소인 한 아쿠아리움 이었다.  '댄'은 그녀가 이 엉뚱한 장난에 꼬이는 상상을 하며 소심한 복수의 잔머리를 굴린 것인데, 어쨌거나 랜덤채팅에서 '댄'이 꼬셔낸 피부과 전문의 '래리'를 그녀에게 꼬이도록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댄의 장난이었지만 결국 실제로 안나와 래리는 교제를 하게 되고 또 그 모습은 또 다시 댄에게 질투심과 승부욕을 유발하는 요소가 된다.

 

그 외에도 댄이 앨리스와 다시 재회하게 된 순간마저 그녀를 계속해서 추궁하던 장면, 그 순간 화가나서 뛰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텔 복도에 버려져 있는 꽃을 한송이 주워 마치 자신이 준비해온 것인 마냥 그녀에게 건네던 모습, 그리고 어느샌가 '사랑'은 온데간데 없고 '래리'와의 승부욕에 몰두하며 그에게 조금도 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열등감을 내비췄던 모습 등등. 

 

버려진 꽃을 앨리스에게 주워다 준 장면에서는 그가 얼마나 노력하지 않고 손쉽게 타인의 마음을 공짜로 얻으려 하는지, 그 간사한 마음이 너무나 추접스러웠고 랜덤채팅으로 안나에게 느닷없는 상황에 꼬이도록 만든것도 그녀에게 '거절' 당했다는 것을 이유로 복수를 꾀한 다는 것 자체가 '찌질함'의 절정을 찍는모습 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앨리스'에게 끝없이 사랑을 추궁하고 집착하며 상처를 주는 것 까지. '관계'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진심인 것은 없고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본능과, 승부욕, 열등감, 소유욕 그 정도 뿐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댄'의 추접스런 모습들을 많이 설명 했다면 댄 다음으로 어쩌면 나쁜 역할이라고 언급 할 만한 캐릭터가 내 생각엔 아마 포토그래퍼 '안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안나와 댄은 첫 만남에 본능적으로 서로 이끌렸지만 그에게 동거녀가 있는걸 알고있는 안나는 정중하게 만남을 거절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쿠라리움에서 댄의 장난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래리'와 그녀는 교제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되지만 그 와중에 결국 그녀는 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불륜'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댄'을 앨리스로부터 완전히 뺏어오는데 까지 성공하게 되고 래리와의 결혼도 종지부를 찍게된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깨끗하고 깔-끔하게 종지부를 찍지는 못한다. 래리가 안나에게 이혼에 합의해주는 댓가로 무언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마지막으로 자신과 잠자리를 가져달라는 조건이었고 이 모든 상황이 지긋지긋했던 안나는 그의 마지막 제안을 수락하고 이혼 합의를 받아내게 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댄은 그녀가 내렸던 결정을 탐탁치 못하게 생각하며 그녀를 꽤나 '더러운' 존재로 까지 여기며 그 자리에서 헤어짐을 고한다.

 

사실 안나가 처음부터 끌렸던 사람은 '댄'이 맞다. 하지만 그녀가 래리와 연애하고 결혼까지 한것은 어쩌면 '래리'를 이용했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관계의 장난과 저울질 때문에 어쩌면 댄 다음으로 나쁜 실수를 저지른 캐릭터는 아마 '안나' 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결국 안나는 댄을 위해 래리와의 마지막 잠자리를 허용하면서 까지 관계를 정리하고 그를 찾아갔지만 댄에게 또 다시 버림받게 된다. 그리고 후에 그녀는 또 다시 래리와 재결합 하게 된다.  (이 무슨...난장판) 

 

 

 

 

 

 

 

그렇다면 댄의 동거녀였던 앨리스는 도대체 어떤 캐릭터 일까. 댄과 안나, 래리가 이지경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동안 그녀는 무엇을 했을까. 물론 그녀도 그 과정에서 동시에 상처받고 버림받으며 희생되는 장면들이 여러번 나온다. 이 네명의 인물들 중 가장 일관적으로 '사랑'의 감정에 충실했었고 그만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캐릭터가 바로 '앨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앨리스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녀는 언제든 타인으로부터 버림받는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불타오르며 시작했던 사랑일지라도 언젠가는 지루해지고 식어버리면 또 어느샌가 이 관계는 끝이나겠지. 라고 마치 이별을 늘 마음에 품고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타인에게 버림받는 것, 이별하는 것, 관계가 변하는 것에 대해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살아온 쓸쓸한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스트리퍼 생활로 돈을 벌어왔고 방랑하듯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변화'라는 건 그렇게 낯선 단어는 아니겠지만 여러번의 반복된 이별의 경험으로 관계에 의연한 척 행동하는 것 처럼 보여도 사실은 가장 마음이 여리고 순수한 캐릭터였다고 본다. 

 

 

 

 

 

 

 

 

결국 최악의 캐릭터 순서가 댄 > 안나 > 래리 > 앨리스 이렇게 되거나 혹은  댄 > 안나 =래리 > 앨리스 이런 모양이 아닐까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종종 유뷰트 음악채널에서 이 '클로저' 라는 영화 영상 자료가 자주 쓰이는 걸 봐왔는데, 또 특히나 가장 많이 봐왔던 유명한 캡쳐짤이 바로 위 이미지였다. 그때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저 짧은 대사가 주는 임팩트가 좋아서 카톡 프사로 지정해놓기도 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와 보기전에 느낀 앨리스의 이미지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특히 그중에서도 '댄'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볼품없는 쓰레기 캐릭터였다.  

 

살면서 댄 같은 남자는 절대 만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어쨌든 결말은 어딘가 공허한 엔딩으로 끝이났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앨리스에게 또 다른 해피엔딩 이었기를 바래본다. 이런 파국의 상황에도 래리와 안나의 관계는 재결합한 '부부'의 상태로써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들도 과연 앞으로 행복한 부부로써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는 왠지 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서는 '거짓없는' 사랑을 하고 있나요. 라는 말을 건네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그 거짓없는 사랑이라는 말에는 너무 큰 함정이 들어있었다. 영화를 보고 느낀건 사람들은 생각보다 '진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막상 진짜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진실을 온전히 받아 들일 용기도 없으면서 자꾸만 '진실'을 추궁하는 이유는 뭘까? (댄처럼) '진실'을 알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그것에 집착 하는 행위로써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진실을 알았을 때도 그 모든걸 감당해내는 사람이라면 또 의미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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