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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협회 아이테르AITHER - 레이어드 시티 : 하마맨션]

아이테르전시 부산 범일동 294-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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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수집하고 해체하다… ‘레이어드 시티:도시 쌓기 프로젝트’ 그룹전”

부산 지역 창작자 팀 ‘하마맨션’이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아이테르(동구 범일로 65번길 21, 4층)에서 그룹전 ‘레이어드 시티: 도시 쌓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레이어드 시티’는 부산광역시와 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전시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 6인이 부산을 수집하고 해체하여 다시 기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다. 고혜진, 김청아, 김혜실, 박지형, 서상희, 엄효빈 작가 6인은 ‘기억-연결-가상’이라는 개인의 사유를 통해 기록한 부산을 영상, 사운드, 설치, 3D 그래픽, 퍼포먼스 등으로 구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에는 개인 작품 6점과 작가진 1:1 매칭을 통해 각자의 아카이빙을 콜라보하는 공동 작품 3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시시각각 변하는 부산의 흐름을 아카이브한 후, 로컬 작가들의 시각으로 확장하여 부산에 대한 공간 재해석 및 새로운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기획됐다. 해당 전시는 10월 3일, 8~9일 오후 3시에 예약자에 한해서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레이어드 시티’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layered_city)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전시는 평일 오후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시 기간에 휴무 없이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다. 관람객들이 직접 레이어를 선택하여 각자의 도록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굿즈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레이어드 시티. 층을 이룬 도시다. 팜플렛에는 6인의 예술가들이 부산을 수집하고 해체하며 다시 기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라고 소개하고 있다. 각 작품들은 작가 개개인의 시각과 개성으로 부산의 모습을 채취하고 그것들을 다시 재 조합하며 마치 새로운 가상의 부산의 모습으로 재구성 하였다. 기억과 연결, 가상 이라는 세가지 주제 아래에서 다양한 설치 미술 작품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도시 공간을 구축해낸 모습들이 흥미롭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동네만 하더라도 불과 몇 년 사이에도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많은 일상의 풍경들이 바뀌었고 또 그 변화속에서도 나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 마냥 또 빠른 속도로 적응하며 나의 태어난 동네를 익숙하게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 심지어 그런 빠른 변화 속에서도 종종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낡고 오래된 부산의 풍경들 또는 그간에 변화된 여러 모습들을 포착하여 다시 새로운 가상의 이미지를 구현한 이 작업들이 일종의 익숙한 것을 다시 한번 새롭게 발견하는, 또는 빠른 변화에 무뎌져 버린 감각들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용을 위한 전시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정된 주거공간과 활동범위 내에서 대부분의 일상을 보낸다. 특히 어릴때 부터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서 지금껏 계속 지내온 경우에는 더욱이 그렇다. 그 공간이 좋아서, 익숙해서 또는 편안하다는 이유로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도있지만 제 아무리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매일매일이 똑같은 생활과 똑같은 환경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권태로워질 수 밖에 없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당장 어디 멀리 여행을 떠나버릴 수 없는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또는 실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주거환경이 곧 모든 일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일상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해프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해프닝은 공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별 특별할게 없는 일상의 반복과 연속인 것이다.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환경은 부지런히 변화하고 새롭게 발전하고 있지만 익숙한 동네에 오랜 시간을 머무르다보면 그 변화 조차 일일히 감각하지 못한다. 10년, 20년전의 우리 동네와 지금의 우리 동네를 비교해보면 정말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왜인지 나는 그 변화들을 꽤나 무딘 감각으로 느껴오지 않았나 싶다. 이 오묘한 기분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될 지 잘 모르겠지만 내 주변 환경의 변화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나의 생활에 직접적인 변화나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일 때, 또는 그다지 나와 관계 없거나 내 관심사 밖인 경우 그 변화를 덜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권태로움이라는 감정 안에서는 새로운것들을 발견하고 인지하는 감각이 더욱 느리다.


 




어찌됐던 이 오래되고 낡은 도시를, 그리고 빠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 도시 곳곳의 모습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재조명 한 오브제들이 매우 사랑스럽기도 하고 익숙하며 또한 아름답다. 위 작품은 어디든지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정체 불명의 수상한(?) 가방이 불특정 다수의 부산 시민들의 발걸음에 이끌려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정처 없이 방랑한다. 그리고 가방에 부착된 카메라로 예측할 수 없이 마주치는 풍경들을 기록한다. 우리는 가방의 다사다난한 경로들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주로 친근하고 낯익은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고양이를 포착한 시선, 낡고 오래된 골목길이나 택시와 버스같은 이동수단을 타고 여행하는 모습들이 꽤나 귀엽다. 외에도 부산 시내 곳곳에서 포착한 여러 흥미로운 글들을 채취하여 매달아 놓은 작품 역시 웃음을 유발한다. 그 출처는 아마 현수막이나 옥외간판, 스티커 또는 하찮은 벽보라던지 여기저기 휘갈겨진 낙서들 등등 도시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실상 우리를 에워싸다시피 하는 많은 광고 메시지들 틈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발췌해 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리는 도시에 흩뿌려진 많은 문자들 사이에 과부하가 걸려 허덕이고 있지만 또 그 와중에 눈길을 사로잡는 특정한 글귀에 시선을 뺏기기도 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것들을 감상하고 되뇌어 보기도 하며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남기도 한다. 모두 우리가 의도하고 의식한 행동들이 아니지만 도시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은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 전시장에서는 그와 반대로 도심속에 흩뿌려져 있던 여러 글귀들을 의식적으로 관람해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개연성이 없는 맥락들을 재조합한 글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음미하는 즐거운 재미가 있었다.


사실 이 무인 전시관 (아이테르) 역시 아주 낡고 오래된 목조 주택 건물을 재 가공하여 탄생한 갤러리이기 때문에, 이번 전시 주제와도 아주 일맥상통하는 묘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 부분을 포착해 낸 작가가 이 곳 갤러리를 3D 모델링하여 새로운 가상 공간으로 창조하고 그 가상 공간의 갤러리 안에서 또 다른 작품을 전시하며, 마치 액자식 구성처럼 독특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한 기획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마치 게임을 즐기듯이 관람자가 직접 가상 세계를 구현한 작품속을 체험 할 수 있으며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며 그 안에서 출구를 찾아 나가는 여정을 그려준다. 실제 갤러리 안에서 또 다시 가상의 갤러리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전시 중인 가상의 작품을 본다는 개념이 마치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것 처럼 신선한 관람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이런 익숙한 풍경들을 재 조립, 창조하여 그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기록 한다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그 장소에 대한 오랜 애정과 사랑을 입증하는 실험적 태도가 아닐까. 오랜시간 똑같은 환경에 놓여 권태로움에 지쳐있는 나에게 조금 더 익숙한 것들을 창의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할 영감을 제시 해 주는 전시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다고 이 권태로움을 하루 아침에 벗어 던지는 해방감을 느끼지는 않겠지만 뭐랄까 오랫동안 지내온, 내가 자라온 동네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는 따뜻한 부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가상 공간 갤러리 탐험중

나만의 방식으로 조립, 가공하는 굿즈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

 

 

 

인류대멸종 : 1. 개인의 멸종

2022.04.01. - 2022.04.20

기신

김정훈

Schreiben

부산 아이테르

[인류 대멸종 : 1. 개인의 멸종]은 아이테르의 인류대멸종 기획전시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이다.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가치, 기술, 지식, 규범들을 학습하고 끝내 획일화되어 개인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재 세상을 기신, 김정훈, Schreiben 3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해석으로 아이테르 전시공간을 채운다.

'기신' 작가는 멸종되고 있는 개인의 모습을 상상력을 더한 일러스트로 작업하였다. 작가는 특유의 살결과 근육의 질감을 표현하는 붉은 선들로 이번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가의 그림 속에는 피사체들은 특별한 개념을 지니고 있는 물건과 함께 등장하게 되는데, 이 물건이 어떤 상상을 통해 피사체 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며 작가의 전시에 깊이 빠지게 된다.

'김정훈' 작가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보고 영감을 얻어 대추가 익어가는 현상을 사회화에 빗대 표현한다. 우리들이 시련을 받으면서 모두 비슷해져 가는 모습을 대추 한 알 시와 대추 프린팅, 모형을 전시하였고 인간의 형상을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설치작품 'no/achromatic'을 통해 마네킹 두 개에 각각 개성인과 몰개성인을 표현하여 대비되는 이미지 속에서 개인의 존재성 대하여 고민하게 한다.

'Schreiben' 작가는 멸종된 개인의 개성을 전시공간에 살려낸다. 대부분의 인류가 내보이지 못하고 숨기는 것을 작품으로 선보이며 서브컬처를 무시하는 주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비주류 장르에서 탄생한 수준 높은 설치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비주류 장르가 주류보다 못하다."라는 관념을 뒤집는다. 그리고 벽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가져야할 선택기준은 장르가 아니라 개인의 진심과 시간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개인의 멸종 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보고왔다. 즉 인류 대멸종. 요즘 몇몇 전시를 가보면 지구종말, 멸종, 환경파괴와 관련된 주제들이 꽤 많은데, 이 전시 주제 역시 '인류 대멸종'이라고 하기에 환경과 관련한 멸종을 얘기하는 것일까? 했는데 그건 아니고 개인의 개성과 특색이 사라진다는 의미로써의 멸종이었다. 

 

회화부터 설치미술까지 두루 전시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설치미술 작품이 제일 임팩트 있게 다가온 부분이 있다. 물론 저 위에 마치 사이보그를 형상화 한것 같은 회화 그림도 내 취향저격이긴 했는데 설치미술 작품이 아무래도 압도적 임팩트가 있지 않았나. 이 무인 전시관을 방문한것은 이번이 아마도 세번째인데 처음 방문 했을때는 화장실 문이 닫혀있었다. 물론 열어보고픈 호기심도 꽤 들었었지만 문닫힌 방은 열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있었으므로 허튼 짓거리는 삼가하고 조용히 관람하고 왔었다. 무튼 이번에는 화장실 공간이 개방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대추 한 알' 이라는 시에 영감을 받고 만들어진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대추가 익어가는 현상을 사회에 빗대어 표현했다는데, 과연 그건 익어가는건가 곪아 가는건가. 아마도 후자의 느낌이 좀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당신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보상 : 승리를 제외한 모든것을 잃음

 


 

포스터에 적힌 문구가 꽤나 인상적이다. 당신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그러나 보상은 승리를 제외한 모든것을 잃는 것. 여기서 의미하는 '승리'라는건 사회의 척박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걸 의미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승리를 제외한 모든것을 잃는다고 한다. 즉 '생존'은 하였으나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은 모두 앗아가버린다는 참혹한 결말을 뜻하는 것 같다. 치열한 현대 사회의 경쟁속에서 그저 부지런한 일꾼으로써 '존버' 한다는것은 결국 전속력으로 색깔을 잃어간다는 의미를 반영하는 것 아닐까. 

 

그럼 결국 부지런히 존버 할것인가 VS 존버를 거부하고 색깔을 잃지 않는 노력을 할 것인가 이 두가지 줄다리기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이 평범한 현대사회인의, 또는 젊은이들의 고민인것이다. 우스갯 소리로, 종종 하루하루 썩어간다는 기분이 드는게 정말 하루이틀 일이 아니므로 평범한 직장인으로써는 저 고민과 갈등이 굉장히 크게 와닿는 편이다. 뭔가 '획일화' 되어 간다는 기분이 두려워 계속해서 새로운것을 시도해보고 적극적으로 생산적인 활동들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전반적인 삶의 질이나 큰 틀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도돌이표 같은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을것이 분명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또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이 계속되는 갈등 사이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찾고자 하고 지키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굉장히 숭고하게마저 느껴진다. 누군가는 그런 노력을 우습게 여기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차가운 시선들 사이에서 굳건히 내 색깔을 지키고자 한다는게 그 얼마나 대단한 노력인가.

 

작품중에 코로나 마스크로 특정 신체부위를 가린 그림이 있었다. '마스크'라는 용도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꽤나 사회적으로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많은 세계인들이 2-3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마스크를 내내 쓰고 생활을 하였다. 물론 그 목적 자체는 '방역'이라는 특수한 의미가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마스크를 쓰는 행위 뿐만 아니라 활동영역과 시간까지, 점점 개인의 사생활 깊숙히 통제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야 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지면서 그 목적이 물론 이로운 목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유'가 통제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마스크'의 특수한 목적성을 떠나서 그런 통제된 생활 패턴을 살면서 똑같은, 획일화된 일상을 살아가는게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하는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마스크 착용을 전적으로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획일화 된다는것, 똑같아진다는것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꺼리는 한 인간으로써 이 사회에서의 '승리'는 결국 색깔을 잃고 다양성을 잃는 것일까? 라는 물음에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내가 출근할때 집을 나가기 전, 옷걸이에 내 '자아'를 살짝 벗어놓고 나가야 한다. 라는 것인데 내 색깔이 강하면 보통의 직장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다지 그것이 장점으로 활용되기보다 유난스럽고 예민하고 튀는 인간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근전에는 자아를 살짝 벗어놓고 나간다.' 라는 생각으로 몇년째 그 생활을 하고있지만 어떤 날은 여전히 그 행위(?) 자체가 꽤나 울적한 기분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흔히 말하는 '현타'온다는 감정인데, 어쩌면 나는 이 '현타'스러운 감정과 계속해서 싸우는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품중에 서브컬쳐와 비주류 문화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비주류'적인 취향과 그 문화에 대한 관심, 애정 그 자체도 종종 무시되는 현상이 여전히 알게모르게 언제나 '획일성'을 강요받고 있는 모습들 중의 일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아래 '김정훈' 작가의 말 중에서 마치 우리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듯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글이 있어 그 일부를 발췌하며 마무리 해본다.

 


"이대로라면 결국 자아를 가진 인류는 멸종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굴레 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정해준 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 각자의 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되려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견뎌내봅시다. 멋지게 같이 해내봅시다.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우리는 모두 다른 숨을 쉬니까." 

 

 


 

 

작가의 말

기신

모두가 탄생을 기점으로 저마다의 시선과 기준을 가지며 바라보고 보인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다양한 환경 및 상황 속에 맞닿고 노출이 되어 자신의 모난 기준과 의도를 들켜버리고 만다. 의도치 않게 보여버린 인물들의 얼굴엔 눈가에 드리운 선들과 흔들리며 퍼져가는 동공으로 마주하고 있다. 개성이 멸종되어 보여버릴 가치를 잃어버린 지금, 인물들의 외면으로 노출되는 모습들은 굴레에 벗어나 이전과 다른 모습들인가, 그마저도 몰개성화된 일환인가.

 

사람들은 시선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만일에 시선을 대비하고 가꾸어간다. 애석하게도 노출이 될 시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시점에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로 마주하곤 하는데, 의도를 가지고 계획을 체계화할수록 떳떳함의 기준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치밀함보단 자연스러운, 극단적인 날것의 환경 속에 노출된 멋스러운 캐릭터들로 상황을 대변함으로써, 만일을 대비하는 이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다. 자신이 우려한 모습들의 의외로 나쁘지 않았음을.

 

 

김정훈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굉장히 곤란해집니다. 나에 대해 밝히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 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뭘 하고 어떤 집에 살고 옷은 어떤 것을 입고 차는 뭐고 돈이 많고 적고..... 이런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청산유수의 달변가가 됩니다.

 

정작 나 자신은 잘 모르면서 말이죠. 우리는 이렇게 빈 껍데기인 상태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강자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굴러가는 것입니다. 학교에서의 교육이나 tv속의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그게 진리인 것 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며 그렇지 않은 이들을 매도하고 비난합니다. 또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흔히 말하는 철지난 것 같은 옷차람이나 밈(meme)등을 사용하면 조롱을 당하죠. 참 비참한 현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몰개성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결국 자아를 가진 인류는 멸종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굴레 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정해준 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 각자의 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내적과 외적으로 모두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세상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되려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견뎌내봅시다. 멋지게 같이 해내봅시다.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우리는 모두 다른 숨을 쉬니까.

 

Schreiben

저는 퍼리입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시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퍼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동물 인간을 주제로 하는 장르입니다. 서브컬쳐 중에서도 꽤나 마이너한 장르이지요. 제가 왜 퍼리를 주제로 작업하는지를 말씀드리면, 사람 몸에 동물 머리가 달린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동물만이 가지는 야성미나 귀여움에, 사람만이 가지는 복잡한 서사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환상적인 조합이지요! 아쉬운 건, 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꾸 음지로 숨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

 

퍼리뿐만 아니겠지요. 아름다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지 않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내 것은 대중문화가 아니야, 하면서 숨기기만 하면 대중은 당신의 그것이 뭔지 영원히 모르게 됩니다. 그럼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건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진부한 것들뿐일 터이고, 결국 진부한 그것들만이 주류가 됩니다. 새롭고 재미있는 건 하나도 없는 세상의 탄생이지요. 저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를 당당하게 내보이겠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에게 부탁하겠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것을 보여주세요.

 

 

 

 

 

요즘 스트레스를 꽤 지속적으로 받았는지 집에오면 미친듯이 밥쳐먹고 포도주 슬쩍 꺼내서 마시고는 (와인아님. 포도주임)  골아떨어져 자곤 했다. 그러다 문득 전시를 보러 안간지가 오래된 것 같아서 포털에 '부산 전시'를 검색했다. 볼만한게 없을까 둘러보던 중에 아주 익숙한 주소에 왠 생각지도 못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매우 익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냥 거의 평생을 내가 살아오다시피한 동네였기 때문인데... (현재도 진행중) "우리 동네에 미술 전시를 하는 곳이 있다고?" 매우 생소하면서도 신기해서 더 찾아볼 것도 없이 "어,  나 내일 당장 저기 가봐야겠어." 라고 생각한 후 바로 꾸르륵 잠이 들었다.

 

 

 

보더휴먼
Border Human

2021.10.26 ~ 2021.11.19

아이테르, 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4층

 

신체 모든 부분이 '인공적'으로 대체되는 시기가 온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기준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Border Human>을 통해 가상세계 속에 공간을 구축하고, 그 안에 토피아(풍경)를 채워나간다. 한 인간의 모습을 시작점으로 다종다양한 존재물이 뒤섞이는 토피아 속에서 새로운 정의와 가치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가상세계는 과연 가상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곧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기는 도래할 것이다. 가상과 현실의 희미해져가는 경계에서 새로운 인간과 종이 탄생하며, 인간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다. 이때를 위해 나는 작품 속에 그 단서를 하나씩 남겨보려 한다.

If the time comes when all parts of the body are replaced with 'artificial', what standard 

can a human being be called a human being?
Through <Border Human>, I build a space in the virtual world and fill the topia (landscape) in it. 

New definitions and values   will be created in the topia where various beings are mixed, 

with one human figure as the starting point. But does the virtual world exist only in a virtual way? 

The time will come when the boundary between virtual and real will be broken soon. 

New humans and species are born at the blurring boundary between virtual and reality, 

and we will be able to look back on the true meaning of human beings. For this purpose, 

I try to leave the clues one by one in my artworks.

 

 


 

 

 

 

바로 위의 전시인데, 개인적으로 '무인전시'는 내게 처음이었다. 나는 전시 개요 따위 읽어볼 생각없이 그저 낯익은 주소지만 보고 그냥 일단 보러 가겠다.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위치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동네에 위치해 있었고 5F는 LOUNGE 4F는 ART SPACE라고 적혀있다. 하여튼 참 신기한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에 ART SPACE가 다 생기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 뭐 물론 거의 12년 전쯤, 삼일극장, 삼성극장이 사라지기 전에도 그곳에 미술 전시가 열리긴 했지만 그것은 사라지는 극장을 기념하여 일회적으로 열린 전시였고 이 장소는 또 의미가 약간 다른 것 같다.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아트스페이스라고 생각을 하니 어쨌든 토박이로써는 꽤나 신선한 부분.

 

 

 

 

 

이곳의 아주 독특한 점은, 일반 주택을 개조한 것도 아니고 그 모습 그대로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아니 뭐..리모델링을 한다거나 그럴싸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전형적인 갤러리의 모습은 (깨끗한 흰 벽 또는 뭐 다듬어진 벽?) 온데간데 없고 그냥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아주 오래된 느낌의 집이다. 그냥 말 그대로 사람이 살던 주거환경 그 모습 그대로. 그냥 가구나 전자제품 따위만 없을 뿐인, 텅 빈 집이었는데  입구가 너무 어두워서 스위치를 켰더니 불이 들어오긴 하더라. 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전에 무인전시인것을 전혀 몰랐던 상태여서 벨을... 눌러야하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문을 살짝 밀었다가 여시오. 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아 문이 원래 열려있나보다 생각하고 들어가게된 것. 

 

 

 

 

 

안내문에 보면 열린 문 외, 닫혀있는 방은 전시 공간이 아니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발동하곤 하는데 그 일말의 호기심이 들려는 찰나에 왠지 모를 스산한 공포가 더 밀려오는 바람에 바로 그런 허튼 생각은 바로 접어뒀다. 저 때 전시를 보러온 사람은 나 혼자였고 전시 관람 도중 만약 또 다른 방문객이 갑자기 들어온다면 난 아마 놀래서 심장이 떨어질것이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관람을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혼자 있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약간의 무서움이 들었는데, 뇌피셜을 써내려가보자면 동네에서 유명한 미치광이가 혼자 사는 오래된 집에 우연히 지나가다가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내가 침입했는데, 그곳에는 알수 없는 이상한 기구들이 빛을 내면서 움직이고 있었고 심지어 문이 닫힌 곳은 열어보지 마시오. 라는 꺼림칙한 문구까지 봐버린 상황. 얼른 보고 나가야지 라는 생각을 할 때즈음에 왠지 누군가 들이닥칠 것만 같은? 그런 허접스러운 망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서두가 길어서 어렵게 등장한 작품사진. 일단은..다 필요없고 갤럭시 노트9 당장 갖다 버려야겠다. 빛번짐 효과가 아주 라식수술한 내 눈으로 직접 찍은것 마냥 화려하게 나왔다. 어찌됐든 "신체 모든 부분이 '인공적'으로 대체되는 시기가 온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기준으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전시 주제를 생각하며 감상해보았다. 뭐 지금도 신체의 일부를 인공적으로 대체하고 있기도 하고 (장애가 있는 분들) SF영화에서 흔히 자주 등장하는 로봇인간 따위를 제각각 형상화 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인간의 모든 신체 부위들이 모조리 인공적으로 대체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인간의 형상은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독특한 발상을 시작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왠지 인간의 신체 부위를 가져다가 괴상한 실험을 하는 미치광이가 사는 집에 무단 침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망상)

 

 

 

 

 

 

 

그리고 나가기전에 한번 더 열려있는 창문을 잠깐 응시했는데 이 마저도 공포영화속 한장면 마냥 스산하게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두고 커튼을 살짝 제쳐 놓은것도 아마 연출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괜히 저기서 뭔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  (몰입과다) 어쨌든 늦은 밤에 갈수록 더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울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듬.. 분명히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혼자 흉가체험이라도 하고 온 마냥 쫄깃해진 심장 느끼면서 돌아왔다. 

 

 

 

 

 

그리고 벽에 커다란 흰 종이가 붙어진 방명록을 봤는데, 지인이나 동료들이 많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난 말그대로 그저 STRANGER일뿐.... 인스타 아이디 남길려다가 왠 관종짓인가 싶어 그만뒀다. 펜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라이너로 짧은 방명록을 남기는데 또 왠지 그 순간에 뒤에서 뭔가가 훅 나타나진 않을까 싶은... (이정도면 거의 망상병인가) 아무튼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을 했던 전시였다.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들로 채워질지 궁금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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