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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공상과 고찰 그 사이

그냥 편안하게 해주세요. 행복한것도 말고 그냥 편안한거.

by Fancy_sailor 2023. 2. 13.

 

Naudline Pierre - higher love

 

 

 

"그냥 편안하게 살고싶어요. 행복한것도 바라지 않아요. 맘이 편안하다면 그게 행복한거겠죠."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절규 섞인 호소의 말이다. 언제부턴가 행복이라는 정의가, 그 최소한의 기준점을 계속 낮춰가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된게 더 아득히 멀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걸까. 그 기준치를 낮추고 낮춰서 결국 그냥 편안하기만을 바래요. 라는 수준에까지 왔지만 그 조차도 많은 욕심인 것 처럼 '편안함' 마저도 내겐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행복의 최고점을 향한 지향성이 아니라, 모든걸 다 버리고 그저 최소한의 편안함을 위해서도 고군부투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비참한 것일까. 그렇게 최저치로 떨어뜨린 최소한의 행복 마저도 갈구하고 신음하며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을까를 찾아내고 고민하려면 장장 몇시간동안 자서전을 따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밟아온 길의 무수한 PTSD를 다시 마주할걸 생각하면 그저 아찔하다. 아, 그냥 하지 않는게 낫겠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관계맺음'들은 나를 초조하게 했다. 그리고 불안했고 부끄러웠으며 슬펐고 자신없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것은 그렇게 관계맺음에 어색하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막상 관계가 시작되면 미친듯이 내가 가진 모든 마음들을 또 다시 쏟아 붓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무섭고 두렵지만 나는 직진해. 와 같은 희안한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 이것도 일종의 변태적인건가 싶기도 하다. 또 한가지 절망적인 것은 그렇게 가진 모든 마음들을 쏟아넣으면서도 현재의 관계 맺음에 대한 행복을 누리기 보다 그 과정에서도 또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을까. 이 관계는 또 내게 더한 아픔을 주진 않을까. 너무 사랑해서 불안해. 너무 좋아해서 초조해. 와 같은 또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하고 모순 덩어리의 감정들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도 내가 가진 순수한 마음들을 다 쏟아부어 버린 많은 전적들이 있었기에, 그에 따르는 후유증에 의한 것이겠지. 좋게 말하면 너 정말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깊은 사랑을 해봤구나. 라고 포장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말로는 대책없이 노빠꾸로 직진 때려 박더니 거하게 망했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잊을 수 없는 참사랑의 추억으로 보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아니 세상에 저렇게나 순진무구한 인간이 있나 라고 혀를 끌끌 찰 지도.

 

 

애석하게도 사랑의 방식 같은 것들은 의식하여 노력하려 해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고 관계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결핍들을 마주할 때 마다 신음하고 아파하며 고통받았다. 비밀이 많고 상처가 많다는 것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아니, 타고난 금사빠 기질로 화려한 스타트를 끊게 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이전에 관계 맺고 상처 받았던 모든 기억들과 무수한 데이터들은 나의 머릿속에서 하루 종일 경계태세 경보만 울려 줄 뿐이었다. 그것이 이제 막 행복한 사랑을 시작한 경우에도 예외없이 어김없는 경보를 울린다. 그 윙윙대는 경보음 소리에 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사랑의 도파민이 흘러 넘치는 시기에도 초조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행복해서 심장이 터지고, 불안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마치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는 모양새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 극명한 희비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에 토할만큼 질려버려서 아찔한 것, 쾌락적인 것, 도파민 뿜뿜, 그 모든 달콤한 것들 다 포기해도 좋으니 그냥 편안하게 이 롤러코스터에서 하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어딘가 호소하고 싶은 경지에 올랐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그냥 편안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또 극단적으로 "관계맺지않음"으로 결론이 귀결 된다는 것이, 어디로 가든 무엇을 선택하든 지독한 고독함은 절대 면할 수 없으리라. 라는 형벌이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어디선가 감정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은 무수히 쌓아놓은 관계들의 데이터 안에서 가장 지배적인 색깔을 띄고 있는 방향으로 알아서 흘러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뇌는 익숙한 것에 있어서 좋고 나쁨을 구분 하지 못하니까. 그저 익숙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익숙한 성질들은 행복을 낯가려 하고 불행에 잘 적응하고 익숙해져 있는 희안한 모양새라는건 높은 확률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웃음 터지는 행복 따위 주제 넘게 바라지 않을 테니 그저 편안함이라도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나의 뇌 호르몬들에게 간신히 호소해본다. 좀 도와달라구 애들아.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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