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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야기/인간_심리_사회

조용한 폭력, 애매한 고통, 미열, 삶은 개구리 증후군, 심리적 관성의 법칙.

by Fancy_sailor 2020. 4. 17.

요즘 몸이 좋지 않다. 하루가 멀다하고 구내염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추세이다. 무엇 때문인지 요 몇일간 수시로 미열이 났다 안났다를 반복하면서 '질 떨어지는' 생활 컨디션을 계속 유지 중이다. 다행히도 수면 패턴은 조금 정상으로 돌아와서 밤9시가 되기도 전에 일찍 잠에들고 새벽 4,5시쯤 기상한다. 이정도면 거의 비구니 저리가라 할 정도의 건강한 수면패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하루 하루 견디는 중이다. 참, 이럴때마다 이것도 배부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애매하게 고통스러운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오랜 시간을 바로 그 애매하고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정신적 폭력에 시달려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짚어보고 넘어가고 싶었다. 마치 고열도 아니고 심각한 감기 몸살도 아닌 '미열' 내게 주는 불편함과 매우 비슷한 모양이다. 

 

차라리 심한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을 정도라면 얼른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해열제도 처방받고 집에와서 몇일 땀 쫙 빼고 푹-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일인데 어줍잖은 두통, 미열에 시달리게 되면 애매하게 병원가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생활하자니 컨디션 저하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집중력도 떨어지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찝찝한 상태 '질 떨어지는 생활'을 참고 견디며 유지하게 된다. 지금 나의 정신적 상황, 육체적 상황이 모두 그러한 처지인 것 같다. 

 

어릴 때 잠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밖에 나가면 도박하고 술주정뱅이에다가 집에 들어오면 물건 다 때려 부수고 폭언, 폭행을 일삼는 아빠를 둔 친구들이 차라리 부럽다(?) 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건 내가 그 친구들의 극단적 입장에 처해 본 적  없기에 범했던 오만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린 맘에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던 이유는, 그 친구들은 누가 봐도 심각한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임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타인으로 부터 동정 및 이해를 받을 수가 있지만 그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학대를 당하고 사는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타인에게 '폭력'을 인정 받기가 쉽지 않다.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적인 가정 내 트러블 정도로 생각하기 일쑤기 때문에. 물론 어릴적 그 생각은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생각이란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조용한 폭력'도 절대로 무시해선 안 될 일이란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가족들을 무시하고 폭언하고 가끔 제멋대로 크고 작은 폭력을 휘두르면서 (물건을 집어 던지려는 것, 때리려는 행동) 밖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친절해지는 아빠를 보는 일이 내게는 참으로 억울한 고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은 개구리 증후군" (Boiledfrogsyndrome) 이라는 말에 대해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나는 여지껏 심리학 용어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경제용어사전'에 나오는 단어였다. 아래 네이버 경제용어 사전에서 가져온 말에 따르면,

 


천천히 변하는 환경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면 큰 화를 당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
뜨거운 물에 던져진 개구리는 화들짝 놀라 튀어나오는 반면 개구리를 물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변화를 감지 못한 개구리가 결국엔 죽고 만다는 일화에 근거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72년에 하인즈만이라는 과학자가 실제로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섭씨 21도인 물을 37.5도까지 (분당 대략 0.2도) 90분에 걸쳐 아주 천천히 데웠는데 개구리가 물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이 용어는 사소한 환경 변화라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2002년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빅터 허치슨교수는 위의 실험결과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개구리는 분당 1.1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개구리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결국은 물에서 튀어나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삶은 개구리 증후군 [boiled frog syndrome] (한경 경제용어사전)

 


 

라고 설명하고 있다. 천천히 지속된 변화에는 감각이 둔해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큰 화를 당하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실험인데 흥미롭게도 2002년에 완전히 잘못된 실험이라고 또 누군가 지적한 바가 있었다. 기존의 실험과 그 이후의 실험의 차이점은 1872년에 과학자의 실험은 분당 대략 0.2도씩 물의 온도가 상승했으며 2002년도 실험에서는 분당 1.1도로 물의 온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인데 아무튼 분당 얼만큼의 온도를 상승 시키냐에 따라서 실험결과가 달랐지만 무튼 팩트는 분당 1.1도의 온도 상승은 개구리가 위험을 감지했지만 분당 0.2도에서는 위험을 감지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문득 전에 만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던게 생각나다. 나 혼자 우울함의 깊은 바다 속에 빠져있는데 그 마저 익숙해져 버려서 빠져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한채 그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적응해버린 것 처럼 보인다고. 꽤나 맞는 말이라 반박 하기가 어려웠다. 천천히 오래 지속된 폭력과 우울은 결국 그 과정에서 적응하는 법을 익혀버리고 그냥 그렇게 생존 하는 방식을 선택 하게 된다. 심리적인 '관성의 법칙'이 바로 이런걸 설명한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환경적 한계를 실감하면 또 한번 끝도 없이 무기력해 지는 것이다.

 

 

내가 심리적 관성의 법칙을 처음 알게 되게 17살인가 18살때였는데 그때 제 발로 찾아갔던 청소년 심리상담센터 선생님께서 나를 상담해주시면서 그 단어를 처음 설명해주셨다. 심리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해서, 나쁜 상황에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놓였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보다 그 감정에 익숙해져서 적응해버리기 쉽다는 얘기였다. 무튼 티나지 않는 듯 하지만 조용하고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오히려 그 숨은 내공이 어마어마하여 한 사람을 '무기력'에 몰아넣기 너무나 좋은 것이었다. 나는 마치 '조용한 폭력'을 보면 빙산의 일각을 보는 것 처럼 당장은 그 폭력으로 인한 변화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앞으로 5년, 10년 더 꾸준히 행해졌을 때 얼마나 한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잘 알고있다. 그리고 나도 어느정도 그에 해당하는 피해자임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천천히 끓는 냄비속에 들어있는 개구리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되었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냄비 속에 있다는 걸 부정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천천히 익어가는 걸 인지하지 못한 개구리가 아니라 운좋게 '조용한 죽음'에 다다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냄비 밖으로 튀어나왔으나 심각하게 화상 입은 피부를 보면서 후폭풍에 괴로워하는 상태가 아닐까? 라고 짐작 해 보았다. 글쎄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냄비 밖으로 뛰쳐 나왔다가 다시 또 스스로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미친 개구리 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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