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딸이 걱정되지만 자주 연락하면 내가 싫어할게 눈치보여서 애써 무심한 척 하며 연락하시려는게 왠지 티가 났다. 전화받자마자 뭐하니? 혼자있니? 친구는 들어왔니? 라는 질문 3단 콤보를 연달아 받았고 "아니, 아직 얘는 안들어왔어." 라고 대답했다. 그때 시간이 저녁 7시쯤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 잠시 있어봐라 내가 화상으로 다시 전화 걸어볼꾸마" 라는 말을 남기시면서 전화를 뚝 끊었다. 사실 이런 생각하는게 참 나쁠수도 있지만 엄마가 순수하게 나와 얼굴을 보며 통화가 하고 싶어서 영통으로 전환을 하는걸까 아니면 내가 친구와 살고 있는곳이 어떤곳인지 궁금하고 살짝 엿보고 싶은 맘에 영통전환을 하는걸까 그 생각을 통화가 영상통화로 전환되는 몇초 짧은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하게됐고 왠지 그 생각은 내 기분을 썩 좋게 만들진 않았다. 아니, 그냥 '니 사는 집이나 한번 보자' 라고 말했으면 그게 더 아무렇지 않았을 수 있는데 애써 아닌 척 본래의 마음은 숨겨놓고 영상통화를 거는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나는 판단했고 그 짧은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는 사실이, 나의 그런 반사적이고 방어적인 생각과 태도 자체가 결국 나 스스로에게 불쾌감을 준 것이다. 영상통화를 하고자 했던 엄마의 행동은 이상할것도, 잘못된것도 없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함께 살면서 나는 종종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을 받는 경우가 너무도 허다했다. 그래서 그런지 관심을 피하려고 내가 노력하던 행동은 내 얘길 거의 하지 않거나 숨기는 것, 사소한 것도 비밀처럼 은폐해두는 것. 그런 부작용이 생겼다. 그렇다보니 가족간에 의사소통과 대화는 더 차질이 생겼고 그냥 모든걸 부모님으로부터 피해 있고 싶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다소 내 모든 결정과 행동은 일방적인 '통보'식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부모님과의 소통에 있어서 지레 회피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남아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러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예를들어 내가 집에 늦거나 '친구집에서 잘게요' 라고 연락을 남기는 날엔 그럴 때 마다 늘 엄마의 퉁명스런 말투와 의심을 눈초리를 늘 피할수가 없었는데 그 눈초리를 오랫동안 겪다보니 엄마가 애써 티내지 않으려 하지만 그 '티 내지 않으려는 모습' 마저 나는 직감적으로 거의 캐치하고 읽을 수 있게 됐다. 부모님의 과잉관심 그리고 그로인한 과잉걱정이 너무나 싫었던 나는 그것이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되다보니 별 것 아닌 상황에도 또 '의심'이라는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나의 뇌 회로에 살짝 짜증이났다.
무튼 영상통화로 전환이 되고나서 엄마의 첫 마디는 "응 그래~ 엄마 머리 했는데 머리 어떻노" 였다. 내 눈에는 글쎄 앞머리가 너무 댕강 짧게 잘려있었고 면적이 넓고 큰 검은 천에 반짝이는 펄이 있는 헤어 머리띠를 하고 있는 모습이 약간 야구르트 아줌마나 아니면 낡은 미용실에서 볼 법한 촌스러운 미용사 아줌마같은 머리라고 느껴졌다.
"어... 앞머리가 왜케 짧어?" "근데 엄마 집에서 맨날 그렇게 하고있잖아ㅋㅋ"
엄마가 요즘 밖에 외출할 때 마다 컬러풀한 색상의 옷이나 다소 화려한 악세사리로 나름대로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나가는지,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화사하고 예뻐졌다는 칭찬을 많이 들으셨나보다. 근데 사실 평소에 늘 집에서 하고 있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서 나는 딱히 무슨 차이 인지 잘 못느꼈지만 무튼 사람들이 칭찬을 해줬다 하니, "칭찬 들어서 좋았겠네~" 라는 대답을 해드렸다. 그러고 나니 엄마는 또 뭐가 신이났는지 이런 얘길 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 보고 얼굴이 폈단다. 인상이 확 밝아졌다하대~"
"내가 니 아빠랑 일하면서 부딪힐 일도 없고 따로 일 하니까 세상 편하고 좋다 하하하"
바로 엄마가 얼굴이 활짝 피게 된 이유는 '아빠랑 자주 마주치거나 엮이지 않아서' 였다. 요새 엄마가 부업으로 시작 한 일이 은근히 잘 되는지 나름대로 용돈벌이로는 쏠쏠한 수입이라 재미를 붙이고 기뻐하고 계셨는데 그러다보니 아빠와 오랫동안 함께 맞벌이로 해오던 일에서 잠시 발을 빼시다 보니 하루종일 내내 마주치지 않아서 그게 너무 기쁘다는 것이다.
"그래, 엄마 시작한 일 잘되서 다행이야. 힘들어도 엄마가 또 재미를 느껴서 다행이야."
엄마가 시집 온 후로 아빠가 하는 일을 같이 배우면서 맞벌이를 하게 됐고 평생을 지금까지 아빠와 같이 일해왔는데, 성격적으로 잘 맞지 않았던 아빠와 싫어도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늘 함께 있어야 했고 오랜시간동안 그것이 엄마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으며 또 심하게는 엄마의 우울증의 시작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찌됐건 떨어져 있어서 행복하다. 라는 얘기였다. 난 이미 우리가족은 애초에 좀 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단걸 오래전 부터 느껴왔지만 '부부 간의 거리둠'의 만족은 느끼시면서도 아직 '자식과의 거리둠'에 대한 생각은 크게 전과 달라지지 않으셨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왠지 씁쓸해졌다. 자신이 받은 속박은 자유롭지 못해서 너무나 괴로웠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내가 타인에게 속박을 할 경우에는 어째서 왜 자신이 '당하는' 입장에서 겪은 감정을 똑같이 대입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라는 섭섭함의 아쉬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도 속박을 당해왔기에 타인을 속박한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게 타인에게 사랑주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고 내 자유를 누군가로부터 오랫동안 통제당한 그 억압받은 스트레스를 또 나보다 어리고 약한 누군가(자식)를 통제하고 속박함으로써 그것이 타당하고 마땅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엄마가 아빠로 부터 편해지고 자유로워 지면서 요즘 부쩍 내게도 관대해지셨다는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빠와 함께 일하고 돈을 벌면서 다시 아빠로부터 생활비를 받고 사는 삶이 아니라 엄마가 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수익이 크진 않더라도 엄마가 일하고 노력 한 만큼 정당하게 벌고 얻는 수익이 엄마의 마음가짐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SH씨는(엄마의 스펠링) 요즘 부쩍 인상이 폈으며 활기차지고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 쏠쏠한 재미를 느끼신 모양이다. 그 영향이 내게도 좋게 다가와서 천만 다행인 부분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아빠의 일을 배우지 않고 젊을 적 부터 지금 하고 계신 부업을 일찍 시작 하셨더라면 또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됐다. 그치만 아쉬운건 아쉬운 것으로 뒤로 남기고, 어쨌든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법이기에 지금이라도 SH씨가 즐겁고 만족한다면 정말로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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