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기에 앞서서 지금 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여러 전시들 중에서도 이 <능수능란한 관종> 이라는 전시가 현 시대 젊은이들의 문화와 이슈들을 잘 반영한 가장 '트렌디'하고 MZ스러운 감각적인 전시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성세대 작가들 뿐만 아니라 인스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막 떠오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따끈한 작품들이 함께 혼합되어있어 굉장히 흥미로우면서 트렌디한 센스와 감각이 돋보이는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전시란 바로 이런것이다. 그 시대에 가장 화두가 되는 이슈, 문화, 갈등, 트렌드 이런것들을 잘 자극하고 건드리면서도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런 주류 문화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이점이 뭔지, 또 어떤 것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등등에 대해서 사고하고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만드는 그런 전시 말이다.
"관심받는게 좋아요, 관종은 뭘 의미하는걸까?"
이 전시의 주제는 '관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있다. "능수능란한 관종". 뭔가 이름만 들어도 관종미가 뿜뿜 넘치는 느낌을 자아내는 기분이 든다. 대게는 '관종'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지 않나. 흔히 저새끼 저거 원래 좀 관종이야. 이런 식으로 관심에 굶주린 정신나간 미친사람마냥 취급하듯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아티스트, 인플루언서들은 바로 그런 '관종력'이 없다면 사실상 종사하기 불가능한 직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관종력을 잘 가꾸고 브랜딩화 하는것이 요즘 사회에서는 이것도 하나의 마케팅 능력으로써 인정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관종'이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전시의 매력적인 작품들 이외에도 사실 이 주제를 매우 설명적으로 자세히 이야기 해주는 책자를 읽으며 깊은 영감을 받았다.
위의 책자들은 전시관에서 무료로 가지고 올 수 있으니 꼭 챙겨오기를 추천한다. 위의 책자들 중 나는 '김준혁'님이 쓴 "관종은 무엇일까?"라는 글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는데 현대사회에 있어서 관종, 즉 관심을 갈구하는 행위라는 것은 결국 '생존력'에 대한 갈구로 동일시 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어쩌면 이 포스팅은 이 짧은 책자를 위주로 한 리뷰일지도 모르겠다.
"관심을 바라는 배경은 기회의 불균형이 만든 경쟁이다."
첫 단락이 이렇게 시작한다. 일단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유전자 번식을 통한 자기복제라는 개념에서 매우 본능적으로 관심을 바라는 것인데 생물의 존재 이유를 '유전적 불멸'에 있다고 했을 때 매우 원초적으로 타인을 향한 관심의 근원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먼저 이해해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나의 유전자가 번식에 성공하지 못한채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흔히 요즘 말로 얘기하는 '도태'되어 멸종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관심을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쟁을 만드는 진짜 근본적인 원인을 성비의 불균형 보다 '기회의 불균형'에 더욱 더 큰 초점을 맞추고 본다는 부분이다. 사실 만약 세상의 암수의 성비가 아주 완벽한 비율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바람대로 한명에 한명씩 알맞게 서로에게 관심을 주고받는 이상적인 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월한 조건과 능력을 갖춘 자들이 관심과 인기를 독점하고 독차지한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자연의 법칙 같은것이니 말이다. 그럼으로 쓰니는 성비의 불균형 보다도 기회의 불균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 불균형을 그나마 상식적으로 맞춰주기 위하여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문명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 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관심을 바라는 이유는 자기를 유지하려는 본능이다."
그러나 이 단락에서는 인간이 관심을 갈구하는 이유가 유전자의 불멸을 바라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다시금 주장한다. 즉 종족번식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거다.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이 겪고 있을 많은 어려움들 중에서도 몇가지 손꼽을 수 있는 것들을 말하자면 예를들면 실업난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어려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더 나아가서 국가적으로는 자원고갈과 기후 재난 등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의 미비. 이런 것들은 결국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는데 있어 '난이도'를 결정짓는 주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난이도를 버텨내지 못한 자들은 쉽게 소외되고 결국 소외된다는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그것은 또 생명유지 즉 나를 유지하려는 힘과 직결되어 심리적으로 생명 연장에 불리함, 어려움을 느낄 때 인간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삶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번식욕 뿐만이 아니라 '나를 연장하고 유지하려는 본능'으로 부터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인간은 가장 초조해지고 괴로워진다. 내가 안전하다 라고 느끼지 못하는것,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지 못한 것, 적절히 관심 받지 못하는 것 이런것들이 나의 생명 유지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이 새삼 흥미로운 부분이다. 나는 요즘의 젊은이들은 종족 번식 실패에 대한 불안함보다 바로 이 자기유지본능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부터 압도적인 스트레스를 받는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종을 가르는 기준은 부정과 악감이다."
이런 원인들을 두루 살펴보았을 때 사실 관심을 바라는 행위 자체에는 결코 문제가 없다. 매우 본능적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과 애정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관종'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어감은 사실 부정적인 느낌에 가깝다. 흔히 도가 지나친 병적인 관심을 바라는 사람들을 향한 감정인데, 그래서 도대체 왜 이렇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관종'을 혐오하기 시작했으며,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는가. 관심 병자, 관심 종자 라고 칭하게 된 원인이 뭘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생긴다. 여기서 바로 글쓰니가 주장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관종'의 다섯가지 조건에 대해서 나는 매우 크게 공감하며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다섯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기회의 불균형이 만든 경쟁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을 유지하려는 자
2. 자기를 유지한 조건이 충분함에도 동종에게 기회를 나누지 않는 자
3. 그것이 생물로서 본능이라 여기며 자신의 지능을 그러한 본능을 억누르는데 사용하지 않는 자
4. 관심 밖에 놓인 이들을 돌보고자 지능으로 만든 질서를 어지럽히는 언행을 일삼는 자
5. 그런 삶을 사는 자기에게 긍정과 호감에 기초한 관심을 주길 바라는 자
나는 이 다섯가지 촌철살인과 같은 조건들을 나열한 글쓰니의 깊은 통찰과 예리한 관찰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껴왔지만 뚜렷하게 형용하지 못했던 '관종'에 대한 왠지모를 부정적인 감정과 불편한 생각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정확하게 다섯가지 예로 완벽하게 설명한 것이 매우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저 다섯가지 조건에 해당하는자로 높은 확률로 '나르시시스트'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내가 극도로 상종하기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들이 어쩜 '관심종자'와 이렇게도 데칼코마니 같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있을까 라는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당신은 어떠한 기준으로 '관종'을 가를것인가?에 대해서도 동시에 질문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글쓰니와 매우 밀접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인간의 성향은 각자의 개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타인에게 직, 간접적으로 불편한 영향을 주는지 정신적이든 물리적으로든 불쾌감을 주고 피해를 주는가. 그리고 그렇게 피해를 끼치는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사람, 즉 자신만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불편함과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물불 가리지 않는 비도덕적 인간인가 등등 이러한 여러 기준에 따라서 그 사람의 고유 성향을 개성으로 인정할 가치가 있냐 없냐를 판가름 하는 편이며 쓰니가 제시한 다섯가지 조건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귀여운 관종, 밉지않은 관종 이라는 것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적정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의 자유와 관심의 갈구를 추구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것이며 말 그대로 관심종자, 병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매우 양심이 없으며 뻔뻔한, 이기적인 사람들을 향해 일컫는 말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관심을 바라고자 하는건 인간의 타고난 본능과 같은 것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중에 공감도 지능이라는 말이 많지않나. 지능과 공감을 갖춘 진화한 인간이라면 건설적인 방법으로 타인의 관심을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적절한 예로 유튜브 조회수에 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도덕적인 선을 넘는 유튜버 아니, 사기꾼들이 도처에 깔려있지 않은가. 동물 구조 영상으로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을 사서 조회수를 올리겠다는 목적으로 일부러 동물을 잡아다가 구해주는 것 처럼 자작극을 꾸미는 채널이라던지 한때는 틱장애가 있는 장애인 흉내로 돈벌이를 했던, 논란이 된 유튜버 등등.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창작활동은 매우 지적인 버전의 관종 행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종종 사회적 금기를 향한 도전 정신을 담은 도발적인 아티스트들 역시 존재하지만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파렴치한 관종들에 비교하면 그들은 매우 양반인 셈이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합리적인 선 안에서 관종력을 추구할 수 있는가에 가장 도가 튼 부류들이 바로 아티스트들 아닐까. 바로 이 전시에서 말하는 '능수능란한 관종'이란 그들은 뜻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나 휴식 따위의 것과 비교되지 않는 새로운 환기 방법을 제안한다. 세 명의 작가는 당신을 평화로운 일상으로부터 강하게 나꿔챈 장대비이자, 폭풍우다. 우리는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이 전시를 디자인하였는데, 발칙하게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는 당신을 위해 진심으로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도록 전시를 기획했다. 당신은 목적으로부터 멀어질 때 불안을 느낀다. 이루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멀어진 일이 중요한 일 일수록 불안은 더욱 커진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쓸모없는 정보들로 가득한 이 전시를 감상하는 시간 동안 그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고 더 큰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전시는 그대를 위해 휴식과 감상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 전시를 보는 것에 드는 에너지는 이 전시를 탈출하는 것에만 쓰이길 바라며, 아무 짝에 쓸모없는 정보들은 그대에게 견딜만한 스트레스를 선물하길 원한다. 폭풍우를 만난 배처럼 예기치 못한 전시를 만나 전시장에 어쩔 수 없이 표류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당신은 항해 중 표류했다. 작품을 보기 전에 당신의 캘린더를 보길 바란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당신의 목표를 끊임없이 떠올리길 바란다. 당신은 이곳에서 끊임없이 원하지 않는 무언인가를 끊임없이 알게 되지만 당신에게는 감상할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며 쓸모없는 것을 긍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 전시에 대한 호기심보다 쓸모없는 감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크길 바란다.
결국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과 목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길 바란다.
지금 발전이 멈춰있는 당신이 불안과 평안 중 무엇을 느끼는지 감각하고 전시장을 나가길 원한다.
8월에 관람하고 온 전시 리뷰를 뒤늦게 작성해보고자 한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한 작가님의 초대를 받아 찾아가게 되었는데 장소는 전포동에 위치한 ‘별일’이라는 작은 갤러리이다. 이곳에서 진행했던 전시 제목은 “Drifting in the balchic sea”이다. “발칙해로 표류하다, 떠다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표류’라는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전시다. 전시 팜플렛을 보면 독특한 표류수칙이 몇가지 적혀있다. 그 첫번째, 표류자라는 것을 잊지 말 것. (전시장을 나갈 때 까지) 두번째, 작품을 보기 전에 내 할일을 상기 할 것. 세번째, 작품이 쓸 데 없다고 느낄 것. 네번째, 전시장에서 작은 휴식도 갖지 말 것. 다섯번째, 작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지 말 것. 이라는 총 다섯가지의 수칙이 적혀있다. 이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은 부디 이 조항을 염두하며 관람을 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번째, 다섯번째 조항 때문에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이 수칙을 실패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특히 다섯번째 조항은 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조건이 아닌가. 아무튼 팜플렛부터 발칙하기 그지없는, 도대체 이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표류’가 무엇일까 상상하며 이 난파호에 발을 딛어보았다.
전시에서는 '표류'를 마치 조금은 불안한 휴식과도 같이 묘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시를 보고있는 이 시간만큼은 그다지 목적성이 없는, 말 그대로 별 생각 없는, 별 의미없는 행동들을 관람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이리저리 경쟁에 치이며 숨 쉴 틈 없을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한번쯤 바다 위에 둥둥 표류하는 목적지 잃은 난파선 마냥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미없는 시간'들을 보내보자 라는 것이 이 전시의 궁극적인 목표였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표류라는것은 내게는 휴식의 의미보다는 '고립'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목적지가 있지만 잠시 쉬어가는 것과 아예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정체된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정말로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휴식의 시간으로 절대로 여기지 못할 것이고, 그 말은 즉슨 진정으로 하루하루 인생을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이 전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표류=휴식' 이라는 의미가 비로소 성립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연 이 난파호에 발을 딛어 잠깐이라도 의도적인 표류를 즐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비슷한 예로 옛날에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2008년도 쯤 이제 막 장기하와 아이들이라는 인디밴드가 '싸구려커피' 라는 곡으로 급부상 할때였다. 이 노래의 가삿말중에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라는, 누가봐도 평범한것 보다는 조금은 궁핍한 처지가 연상되는 노래가삿말이 있는데 누군가 이 노래를 듣고 이런 평을 했더랬다. 장기하가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의 이미지를 미학적이고 위트있는 가삿말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사실 가난과 전혀 무관하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인데,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아주 잘 설명해주는 적절한 예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즉 인생에서 의도적인 표류의 시간 (쓸모없는 시간)을 가져보자 라고 말하는 시도가 사실은 정말로 목적지를 잃은 채로 표류해 본 적이 없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바쁜 인생을 살아가는 작가들이 모여서 이 전시를 기획 하였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로우면서 아이러니한 부분이 아닌가라는 감상을 해보았다.사실 내가 지나온 표류의 시간들은 고립 그 자체였고 어쩌면은 사회,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시간이 내게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정체' 라고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영영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전시가내게 주는 표류의 의미는 의도적인 불안한 휴식이 아니라 그냥 '불안' 그 자체였는지도모른다.
표류를 즐길 자격에 대한 생각을 논하다보니 문득 또 생각나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몇년째 계속 하나의 트렌드 마냥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어로써 자리매김 해왔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번아웃'이라는 단어 역시 마치 힐링이라는 단어의 짝꿍처럼 sns나 여러 플랫폼에서 사람들의 지친 감수성을 자극하는 단어로 종종 등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이 그동안 번아웃 상태였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는데 사실 이 번아웃이라는 단어 역시도 절대 아무에게 아무렇게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파고들어 체력을 완전히 다 소진한, 열정적으로 뭔가에 쏟아부은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꽤나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었던 것이다. "당신은 그것에 진심으로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에너지를 다 소모 했으므로 번아웃 상태로 진단 할 수 있겠습니다." 라는 말은 결국 내가 가진 열정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부었다. 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일에 쉽게 질려서 끈기가 부족했거나 혹은 적성이 맞지 않아서 마음을 붙이지 못한것 그 외에도 그냥 그저 게으른 사람이라서 등등 여러가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로 사소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더군다나 그 스트레스의 근원을 찾는 노력 보다는 그저 그것들을 모른척하고 회피 해 오기만 했었던 사람들이 어느날 문득 '번아웃'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아, 내가 번아웃 이었구나." 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당신은 그렇게 말 할 자격이 없다"라고 냉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이 전시에서 작가님들이 의도하고자 했던 '표류'는 정말로 열심히 살아온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짜릿한 '일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산적인 '목적성 잃음'을 실행할 수 있는, 열심히 살아온 작가님들의 노고가 새삼 대단하고 부럽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시 맨 위 상단 전시 안내문의 일부를 가져와보자. "이 전시를 보는 것에 드는 에너지는 이 전시를 탈출하는 것에만 쓰이길 바라며, 아무 짝에 쓸모없는 정보들은 그대에게 견딜만한 스트레스를 선물하길 원한다. 폭풍우를 만난 배처럼 예기치 못한 전시를 만나 전시장에 어쩔 수 없이 표류하는 것이다." , "결국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과 목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길 바란다. 지금 발전이 멈춰있는 당신이 불안과 평안 중 무엇을 느끼는지 감각하고 전시장을 나가길 원한다." 라고 아주 단호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관람자들에게 마치 경고하는 듯 얘기하고있다. 이 난파호에 몸을 실어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편안한 정신적 안식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되려 견딜만한 스트레스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점,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인식하길 바라며 불안과 평안 중 무엇을 더 강하게 느꼈는가를 감각하고 전시장을 나가길 바란다고 말해주고있다. 내가 이 전시에 대해 마치 '불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 같다 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이 전시소개글은 관람자들에게 인위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사실 너 불편하지?" 라고 꽤 공격적인 태세로 질문을 하는 것만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위에서 다 얘기한 셈 이지만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내게 있어서 표류는 '불안'에 가까웠고 의도적으로 쓸모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역설적이고 독특한 발상은 그럴만한 자격이 주어진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달콤한 '일탈'이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일탈의 시간을 스스로가 누릴 자격이 있다고 판단 될 만큼, 매사를 의미있고 진정성 있는 시간들로 채워가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나 자신에게 바래본다.
KT&G 상상마당 부산 갤러리는 2020년 9월 4일부터 10월 25일까지 개관을 기념하는 첫 번째 기획전시로 <ANOTHER REALITY: 밤의 미술관>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부산 지역 아티스트 6팀이 지금까지 서면, 부산을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와 공간을 경험하며 축적된 기억과 그 이면에 자리해온 정서에 대하여 설치, 회화, 사진, 에세이 등으로 표현해낸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전시가 시작되는 갤러리 1층에서는 부산 대표 설치아티스트 정혜련의 시공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TREASURE ISLAND”를 거닐고,
갤러리 2층 “이 도시를 사는 법(The ways we feel this city)”에서는 키미앤일이 와 이슬아가 건네는 따뜻한 글과 그림, 그리고 신진 포토그래퍼 딜런 반스(dylan barnes), 김굳건, 김성준의 개성 뚜렷한 사진을 감상해보세요. ※ QR코드를 활용한 무료 오디오도슨트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으니, 전시 관람시 QR스캔이 가능한 휴대폰과 개인 이어폰을 지참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산 서면에 최근들어 언제부턴가 상상마당이 새로 생겼다. 부산 사람이라면 옛날에 메가박스, 런투유 있는 자리라고 하면 대부분 알 건데 상상마당이 지어지고나서 처음으로 전시를 볼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런투유'라는 90년대 컨셉 헌팅 나이트포차 있을 때 보다 주변 훨씬 분위기가 고급스럽게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지어서 건물도 깔끔하고 아주 깨끗한 편.
이번 전시는 부산 상상마당 개관기념 기획 전시였는데 사진,회화,설치 작품들로 구성되어 1층 2층 동시에 전시를 하고있었다. 관람료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일반 성인 6000원. 그 외 디자인전공 재학생이거나 단체에서 올 경우에는 4000원에 관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는 저녁에 전시를 보러 갔었는데 독특한 점은 티켓을 한장 구매했을 때 총 2번 전시를 볼 수 있도록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안내 매표소 직원이 "낮에 또 오셔서 한번 더 관람이 가능하세요." 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꼭 낮에만 다시 보러 갈 수 있는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튼 티켓 1장으로 2번 전시를 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는 부분이 독특한 부분이다.
1F - TREASURE ISLAND
1층은 설치미술 작품들로 채워져있었는데 입장하자마자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는 기다란 선의 화려한 조명이 눈에 띄었다. "빛으로 공간을 기록하는 작가" 라는 소개글이 있었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 작가가 철저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서면' 이라는 지역을 탐구하여 만든 작품들이라고 한다. 작가는 어릴 적 읽은 책 '보물섬'에서 영감을 가져와서 '서면'이라는 지역 또한 각자의 보물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모인 '보물의 섬'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고 "TREASURE ISLAND"를 구현해 보았다고 설명했다.
"태화, 복개천, 조방, 서면로타리 등 과거부터 지금까지 서면을 구성해 온 상징적인 공간들은 이 곳에서 별로 빛나고, 물줄기와 산을 이루며 돌맹이가 되는 등 각자만의 또 다른 세계를 가진 채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와서 너무나 아쉬운 부분은, QR코드를 인식하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오디오로 들을 수 있는데 집에 있는 '버즈'를 챙겨가지 못해서 작품 설명을 듣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 아쉬웠다. 특히나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설치작품 같은 경우엔 작품 설명이 더더욱 궁금한데, 다음에 낮에 또 한번 방문하게 된다면 잊지말고 꼭 챙겨가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번 들어보고 싶다.
2F - 이 도시를 사는 법
"어쩌면 이 도시를 살아가기 보다는 버텨내고 있는 당신을 위한 온전한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1층 전시가 한눈에 눈길을 확 사로잡는 설치 작품이었다면 2층 전시는 "이 도시를 사는 법" 이라는 주제로 회화작품과 사진작품, 글귀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2층에서 관람했던 작품들이 여러가지를 사유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제공해 준 것 같다. 특히나 외로운 도시의 사회인들, 이방인들의 모습을 담은 익숙한듯 고독한 도시의 모습에 대해 조명한 것이 와닿았고 관람자인 나의 입장에서도 '도시'라는 주제는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저 일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 화려한 곳이며, 그만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가치들로 늘 넘쳐나는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회화작품들에서는 외롭지만 동시에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감성이 느껴졌고 사진 작품에서는 좀 더 깊은 고독한 정서들이 많이 느껴졌다.
"반짝이는 불빛, 높은 빌딩, 사이렌소리 스치는 이방인. 별을 그리워하는 밤과 작은 기계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반짝이는 불빛들이 별 대신 밤하늘을 채우는 곳. 사람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목적지를 알 수 없다.
내가 살고 당신이 사는 도시."
"우리는 풀과 무척 닮아있다. 그 자체로 얼마나 강인한지, 얼마나 스스로 치유 능력이 뛰어난 지, 또 작은 실수들로 얼마나 나약해 질 수 있는지. 미풍에도 흔들리는 가벼운 존재이지만 언제나 자기만의 멋짐을 잃지 않는 풀처럼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상업사진들 보다도 이런 다큐멘터리 주제의 사진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가장 순수하다고 여기는 영역이기도하고 사진을 들여다 볼 때 찰나를 포착한 이미지 한장으로 그 안에서 담아내는 스토리나 분위기, 고스란히 느껴지는 감성들을 해석하는 일들이 내겐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보면 '인문학적 감수성이 깃든 사진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게 있어서 사진을 보는 재미는 미적 감각과 센스도 포함되지만 그 보다도 '스토리텔링'을 느끼는 것이 중점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특히나 필름과 흑백사진이 주는 감성은 더욱 나의 개취에 맞는 부분인데, 아니나다를까 2층 전시실에 '다크룸'이라는 작은 암실을 함께 전시하고 있어서 꽤나 반가웠다.
DARK ROOM
'암실'이다. 2층 전시공간 모퉁이 쪽에 작은 '암실' 공간이 있었는데 이 곳 역시도 전시의 일부다. 새빨간 조명과 벽에는 많은 사진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나 또한 대학시절 사진찍기에 빠져서 타 전공 이수과목으로 들었던 사진수업이 생각났다. 학기 개강전부터 포토그래피 수업에 관심을 갖고 학교에 수업과 관련해서 문의전화를 걸었었는데 디지털 포토그래피인지, 아날로그 포토그래피수업인지, 내가 너무나 원하는 '암실' 수업이 수업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미리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마침 '암실' 수업을 진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기쁘게 친구와 함께 수강신청을 했었고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사실 대학시절을 통틀어 내가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수업이 내게는 바로 '포토그래피' 수업이었기 때문에 그 추억을 지금도 나름대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아무튼 지금은 현상하는 과정에서 현상액을 얼마나 어떤 비율로 섞는지, 교반을 몇번이나 돌리는지, 타이머를 몇초에 맞추고 해야하는지 등등 그때 배웠던 모든것들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흑백 필름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처음으로 현상, 인화했던 그때의 사진들은 아직까지 추억의 파일함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물론 포토그래피 수업을 들은 이후에도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이 필름카메라로 몇번 더 흑백 필름을 꽂고 사진찍는 취미를 23-24살까지 간간히 이어 갔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오랜 시간동안 전혀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 사진이라고는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것들이 전부. 가끔 이렇게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사진 전시를 보러가게 되면 늘 그때의 기억에 마구마구 소환당하는 편이다.
마침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전시 관람을다 마치고 나가는 길에 우연히 이걸 보게 되었는데 실제로 상상마당의 현상인화실에서 흑백필름 현상, 인화 체험과 사진전문 인력 교육과정이 진행된다는 나름대로 반갑고도 솔깃한(?) 정보가 있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보니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행 정보가 다 올라와있진 않은 것 같았고, 평소에 사진에 깊은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한번쯤 상상마당에서 진행하는 교육 과정을 들어보는 것도 재밌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현재 총3개의 무료 전시를 진행중이다. 전과 달라진점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서 전시 관람 전 "온라인 예약"을 필수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미술관 공식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사전예약을 받고 있으며 1시간당 50명 선착순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예약을 했다 하더라도 마스크 미착용시 출입이 제한된다는 점을 미리 염두해두어야 한다. 바로 아래 링크에서 예약이 가능하며 '예약하기' 버튼을 누르면 로그인 페이지로 넘어가는데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관람 예약은 부산시 홈페이지 ID로 로그인 하여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물론 비회원 로그인도 가능하도록 되어있지만 나같은 경우는 회원가입을 통해 예약을 했다.
'미술’과 ‘기술’의 결합/융합은 이미 지난 세기 초부터 주요한 관심사이자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테크놀러지와 IT가 전면적으로 유입, 확산되고 있는 근자에 이르러서는 ‘미술’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모하고 있으며, 그 개념이나 정체성에 관해서도 보다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근대 이후 예술은 과학적 사고와 기계적 논리에 입각한 이성적 활동과 분리되어 아름다움을 규범이나 목적으로 삼는 인간행위로서 스스로의 자율성을 추구해왔으며, 급격한 사회변화를 동반한 산업혁명 이후 예술가들은 도구로서의 테크놀러지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래주의를 비롯하여 러시아 구성주의, 순수주의, 바우하우스운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일군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는 기술과 과학적 합리성을 예술의 원천이자 이념으로 삼고 그로부터 미적‧정신적 가치를 찾음으로써 보다 이상적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들어 적극적으로 모색된 미술과 기술의 결합은 미술의 형식과 내용의 확장을 초래하였으며, 더욱이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와 IT기술, 그리고 생물학과 화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발전은 확장의 폭과 깊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은 이러한 미술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목도할 수 있는 현장인 동시에, 과거의 미술관과 다름없이 관람객이 미술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자리이다. 따라서 유례없는 미술의 변화에 대해 그 의미를 파악하고 진단하며 나아가 관람객이 이러한 상황을 수용‧이해하도록 하는 미룰 수 없고 쉽지 않은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미술관으로서 그 층위와 지향을 달리하는 미술의 기술 수용과 융합의 수많은 양상들을 살펴 관람객과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미술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시대미술의 여러 동향 가운데 미술관의 주요 과제의 하나인 ‘테크놀러지’를 대상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소위 로우-테크놀러지(Low-Technology)를 그 범위로 삼아 기계장치(mechanism)을 기반으로 하는 근작들을 통해 그러한 기술을 수용한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기술’과 ‘미술’에 관한 인식 전반과 그것의 구체물로서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의미를 미적 관점에서 살피고자 한다.
따라서 전시는 미술과 기술의 결합이 야기하는 ‘극적’, ‘서사적’ 측면보다는, 미적 의미체로서의 작품에 관심을 둔다. 즉, 작가의 예술적 이념이 그 둘의 결합을 통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강화되고 구체화되고 있는가, 새로운 기술의 적용이 미술을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그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게 하는가 등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 미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에서 드러나는 미술과 기술에 관한 관점들을 가능한 대로 정리하고 동시대미술 전반에 시사하는 점들을 추려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이 내포하고 있듯이 다양한 인간 활동의 한 범주를 규정하고 지시했던 용어인 ‘테크네(technē)’와 ‘아르스(ars)’로부터 파생, 분리된 ‘테크놀러지(technology)’와 ‘아트(art)’가 다시금 의미상 ‘복원/환원’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자 한다. 오늘날 미술의 양상을 기술과 미술이라는 분리된 두 범주의 결합이라는 측면보다 더 근본적인 지점으로부터 해석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 번의 전시가 수많은 미술가들의 폭넓고 다양한 생각과 작품을 포괄하여 의미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미술과 미술품, 그리고 작가에 관한 다각적인 관점과 고찰의 하나로서 우리나라 동시대미술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의 한 시도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나는 총 3개의 전시를 어떤 순서로 볼 지 잠깐 생각해보다가 B1>1F>2F 순서로 보기로 하고 가장 첫번째로 보게 된게 바로 '기술'에 관하여 라는 전시이다. 위의 전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와 '미술'의 접목을 주제로 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 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으며 '기술'과 '미술'의 관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의 기술에 따른 여러가지 시대 변화와 그것이 '미술'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미술계와 아티스트들의 포지션과 견해들을 일목정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몇가지 작품들을 아래 이미지 및 동영상으로 소개하며 짤막한 나의 감상평을 남겨본다.
김대홍 Daehong Kim, 로봇, 로봇 동물원, 로봇댄서, 2020, 움직이는 로봇, 가변설치
A Robot, 2020, Moving Robot, Dimension Variable
'로봇'동물원 이라는 전시 제목부터가 꽤 흥미로운 작품 이었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로봇 동물들의 움직임이 귀엽게 느껴진다.
벽 너머 작은 공간 안에 설치된 듯 보이는 깃발과 푸른 조명이 마치 굉장히 아득히 멀리 있는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왠지 가까이 있지만 멀리 느껴지게끔 했고 한동안 서서 깃발을 예의주시하며 집중해 보았다. 자연스럽게 공간적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는데 작품에 쓰인 소재를 읽어보니 LED란다. 내가 본것이 공간이 아니라 화면이었나? 푸른 조명의 역할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몽환적이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을숙도 세레나데'라는 작품인데 작품의 앞/뒤 모습을 함께 촬영했다.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을숙도 세레나데'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조명을 이용해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노래가 굉장히 경쾌하고 독특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함께 왠지 모를 기이한 발랄함에 웃음이 나왔다.
한진수 Jinsu Han, Red blossom, 2008, 철, 구리, 모터, 팬, 비눗물, 안료, 딸기향, 시간에 따라 크기 변화
Red blossom, 2008, Iron, Copper, Motor, Fan, Soapy water, Pigment, Strawberry flavor, Time Based Dimensions
벽을 향해 비누방울들을 계속 쏘고있다. 작품에 쓰인 소재에 '딸기향'이 적혀있었는데 내 코가 마비된건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도통 딸기향을 맡을 수 없었다... 그저 강렬한 핑크빛, 블루빛 안료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2020소장품전 : 오늘의 질문들>은 2017년 개관을 준비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부산현대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수집해온 작품들을 공개함으로써 시민과 소통하고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전시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지금’, ‘현재’의 맥락을 중심으로 동시대미술문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현대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산시립미술관과 차별점을 둔다. 따라서 미술관은 회화·조각 등의 전통적 방식에서부터 다채로운 시지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융·복합 형태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의 사회·경제·문화적 함의를 내포하는 현대미술작품들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전시는 전체 187점의 소장품 가운데 미술관 수집정책의 핵심가치를 효율적으로 표방하는 작품 22점으로 구성된다. 그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미술관으로서 부산지역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적극 반영하고자 한다. 공립미술관은 한 도시의 얼굴로서 지역성의 특화라는 기초 하에 전국 또는 국제적인 커뮤니티로 확장하는 글로컬 미술관의 모습을 지향한다. 따라서 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 동시대미술의 생생한 역사를 완성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지역미술에 관한 애정어린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
두 번째,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한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미술을 통한 인식의 확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미디어 이론 연구가 마샬 맥루한에 따르면 각 시대에 쓰이는 기술이 새로운 인간환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조건 지어진다. 첨단기술의 발달은 미술의 영역을 아날로그 기반의 작품들과 더불어 기계공학적 전자매체를 활용하는 전혀 다른 미학적 장르로 확대시켰다. 전시는 시각예술의 형식을 넘어 청각에 초점을 맞추는 사운드 아트를 비롯하여 동력을 이용한 움직임을 주(主) 수단으로 하는 키네틱 아트,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를 포함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새로운 차원의 시지각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계를 감각하고 체화하는 방식에 대한 관람객 스스로의 실험을 유도하는 바이다.
세 번째, 국내외 현대미술사에서 새로운 가치 구현에 기여하고 있는 역사자료의 총체로 역할하고자 한다. 동시대미술은 현재의 시점을 단순히 과거의 연장선으로 파악하는 개념에서 탈피하여 현재의 순간과 인간 사고의 지평이 서로를 탐색해나가는 과정을 제안한다. 전시는 당대의 기술적 환경 및 이슈 속에서 확고한 예술 실천의 태도를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감상자로 하여금 현재를 재사유함과 동시에 미술이 지닌 복수의 콘텍스트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전시는 작품들이 단선적 해설을 제공하는 일방적 의미전달 수단에 그치는 것을 지양한다. 다시 말하면 관람객 스스로가 의식체계를 정비하고 정체성을 발견하며 그것을 토대로 삶과 세계에 있어 유의미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덧붙여 미술관이 당대와 미래를 위한, 잠재력을 발굴하는 창조의 장소로서 시민들과 함께 발맞춰 나아감을 인식하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
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2017년 개관이래로 지금까지 현대미술관이 수집해온 작품들을 공개하는 전시였다. 움직임과 더불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독특한 작품들이 인상깊었다. 이 전시관에서도 역시 전자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이 대부분 많았고 몇몇의 아날로그 기반 작품들도 소량 전시하고 있었다.
허수빈, 방범창문과 햇살(ed.1/3), 2017, 특수거울필름, 로고라이트 벽면에 투사, 실제창문 크기 혹은 가변크기
-빛을 이용하여 실재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창초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듯 한 환영의 세계는 공간 속 관객들이 각자 상상하는 곳으로 은밀하게 연출되어 묘한 리얼리티를 제공한다.
허수빈, 욕실창문과 햇살(ed.1/3), 2017, 특수거울필름, 로고라이트 벽면에 투사, 실제창문 크기 혹은 가변크기
실제 존재 하지 않는 가상공간을 조명을 이용하여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 처럼 구성한 작품이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벽면을 단순 '조명'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독특한 가상 세계를 구현해낸 모습. 이 공간이 나를 이끈 내 상상 속 '은밀한 곳'은 내가 옛날에 살던 낡은 자취방의 화장실이었다. 지금은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쇠창살 느낌의 창틀인데 그 때의 허름한 자취방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아있었다.
정만영, 순환하는 소리, 2014, 사운드 장치, 수도꼭지, 마이크스텐드 외 혼합, 가변설치
-작가가 국내 외 다양한 곳을 다니며 물소리, 샘물소리 등을 필드레코딩 형태로 채집한 후, 그 소리가 다시 수도꼭지를 통해 나오도록 만들었다. 관람객은 수도꼭지를 틀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촉각과 시각, 청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 작품이다.
관객의 참여가 가능한 작품 이란것을 모르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함부로 손대지 못하고 그저 응시하며 감상하고 지나쳤었는데 팜플렛을 읽어보니 수도꼭지를 틀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았다. 지나친 동선을 다시 돌아와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리얼한 물소리, 샘물소리들이 흘러나왔고 아래 놓여진 양동이로 소리들이 쏟아지고 담기는 것을 상상 했다.
알렉스 베르하스트, 정지된 시간(세부구성 : 저녁식사, 인물연구, 테이블 소품)(ed. 4/5 +2AP), 2013, 애니메이션 루프, The Dinner : 110.7 x62.2, Table Prop : 24.5x29.5, Character Study : 29.5x24.5
-'가장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고 난 직후 가족들의 미묘한 심리를 연출한 작품으로, 가족의 공동 초상을 담은 <저녁식사>와 이들의 개인 초상인 <인물연구>, 그리고 인물들 내면의 알레고리인 정물화 <테이블 소품>으로 구성된다. 인물 간 대화는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일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섬세한 왜곡으로 기묘함을 더한 인물 묘사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허무와 죽음'을 상징했던 '바니타스 회화'의 변주를 통해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탐구하고 있다.
스틸만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세요. 라고 적혀있다. 다행히 통화료가 청구되지 않는다고 한다. 위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곧이어 '따르릉' 전화음이 전시관 내의 스피커로 크게 흘러나오고 스크린속의 남자의 폰에 신호가 울림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면 속 그는 내가 건 전화를 '별 것 아닌' 전화로 외면하며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기묘한 가족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루이비통 가방을 20여 조각으로 자른 후 순간접착제를 이용해 원형의 모습으로 재조합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과 그 결과물로 구성된다. 사물을 거칠게 부수는 작가의 행위는 다분히 공격적이며 의도적인 것으로 사물의 기능과 브랜드의 가치에 대한 환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또한 파편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는 과정은 작가가 가진 손과 노동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이 영상은 이제 막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루이비통 가방이 등장하고 작가가 제품을 조심스레 언박싱 하며 시작한다. 아마도 내 기억에 130만원대의 정품 루이비통 가방이었던 것 같고 친절히 정품 택과 정품 인증을 할 수 있는 마크들을 화면에 가까이 보여준다. 그리고 보기좋게 가위로 갈기 갈기 가방을 조각낸다. 마치 요즘 유튜브에서 한창 유행하는 '코스메틱 ASMR' 영상이 함께 연상됐다. 다양한 종류의 새 코스메틱 제품들을 깨부수고 파괴함으로써 느낄수 있는 아찔한 쾌감과 오감을 자극하는 사운드, 소리를 담은 인기 영상들 말이다. 이 작가의 작품이 언제 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의 ASMR 열풍 이전에 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유튜브에 이 작품을 올려도 꽤나 조회수가 올라 갈 것같은 영상이 아닐까 라고 상상해보았다.
오용석, 클래식 1978번(ed. 2/5), 2009, 단채널비디오, 1분30초
-작가의 유년시절 사진에 그 시절의 실제 소품들을 맞물리게 이어 붙여 당시의 기억을 추측하고 재현해낸 작품이다. 여러 시점의 공존을 통해 하나의 정지된 이미지가 내포하는 한계점을 고발하고 사진 너머에 존재하는 다각적 기억의 복원을 시도했다.
작가의 어린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찍은 한장의 사진으로 상상의 배경 이미지를 이어붙여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바닥에 있는 장난감들은 실제로 방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사진찍기'는 '빼기'라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다. 많은 부분 중 어느 한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포착한 피사체 주변으로 '삭제'되어버린 배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움직이는 이미지 표현으로 오래된 기억을 마치 가까이서 꺼내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생동감이 인상적이다. 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미지의 사용과 그 작용이 인류문명 발단 단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를 통해 신의 형상을 보고 싶어 했고, 욕망의 대상을 오랫동안 시각 구성물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미술은 이렇게 성스럽고 소중한 것의 기록 매체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미술에서 재현의 역사를 추동시켰다.
사람들의 욕망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는 대상도 ‘재현’의 범주에서 다루었다. 하지만 미술 매체가 한정되었던 시대에는 움직임 자체를 재현할 수 없었다.
카메라의 발명은 ‘재현’의 문제에 신기원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근대문명에서 리얼(real)과 팩트(fact)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철학의 문제를 낳았다. 아티스트들도 이러한 세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유럽의 미술계는 ‘역동성’이라는 새로운 모티브를 받아들게 되었다. 말이 달리고, 전구가 휘황찬란하게 불 밝힌 카페의 모습도, 발레리나가 아름답게 춤을 추는 모습도, 플랫폼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어 오는 증기기관차도 바로 그 역동성의 대표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움직임’자체가 아니라 그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이라는 은유나 움직임의 찰나를 포착한 정지된 한 장면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동시대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에 아티스트들이 고민했던 그리고 목표했던 많은 것들이 해결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미술의 중요한 문제의식에서 저만치 멀어졌고, 움직임은 실제로 가능한 재현이 되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작품은 움직임 자체에 대한 구현이 목표도 아니며, 역동성만을 재현한 것도 아니다. 영화의 발명은 시각의 재현을 넘어 시간의 재현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구현되는 첨단의 현대미술은 현대 과학기술의 척도를 보여줄 수 있지만 오히려 자연에 대한 향수와 현대문명이 예단치 못한 이기(利己)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한다. 이제 예술은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인공 기계문명의 역동적인 새로운 풍경에의 찬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예술의 이미지는 이제 서로가 눈을 맞추고 서로가 대상화한다. 인공의 것이 자연의 것처럼 움직임과 표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새로운 감성을 감지하고 소통한다. 영화나 사진의 광학적이고 기계적 매개 결과가 우리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여 울게도 웃게도 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제 어떤 운동, 행위나 표정은 근대인들이 목격한 생경한 것들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함의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움직임’은 감성이나 인식의 표상체가 된다. 기호학(Semiotics)은 이 표상체가 가지는 기표(記標 Signifiant) 를 분석함으로써 현대사회의 풍요로운 사회적, 문화적 의미(기의 記意 Signifié)를 번역해 준다. 예컨대 우리의 제스처가, 화장과 성형이, 패션과 과잉된 욕망의 다양한 기호품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또 다른 언어의 체계를 갖는다.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그 콘텐츠의 움직임(행위 motion), 표정이 우리에게 어떤 감성을 자극해 특별한 표상체가 되는 작품들이다. 우리는 부족한 형용사들을 나열하게 될 것이고 또한 특별한 표정과 움직임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게서 받은 자극이나 간섭으로 발생되는 변화는 풍부한 사회언어를 (재)생산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말하는 ‘작품’은 단순히 기표(시니피앙)만이 아닌, 동시에 기의(시니피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호들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움직임이 암시된 작품들을 통해 특별한 감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된다.
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인공의 것이 자연의 것처럼 움직임과 표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새로운 감성을 감지하고 소통한다."
"작품은 단순히 기표(시니피앙)만이 아닌, 동시에 기의(시니피에)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호들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움직임이 암시된 작품들을 통해 특별한 감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KEEN(정찬호 Jeong Chan Ho + 김수 Kim Su) ‘아무도 살지 않는다.’ (Nobody lives.)
키네틱 설치, 2020, 공간에 가변설치
- 들고 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문, 용도 폐기된 실제의 문들이 비현실적으로 배치되어 여전히 그 기능에 부합하는 움직임을 만든다.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문들은 아직 저쪽과 이쪽의 경계를 만들지만, 이미 저쪽은 추상적이고 상상의 공간이 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은 '폐기된' 문의 작동으로 우리 기억 속에 누군가 살았던 삶의 잔상을 만든다. 문들로만 이루어진 골목의 재현과 기억이 누적된 다양한 문들의 합주는 시간을 재현한다.
"작품의 설명 중,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은 '폐기된' 문의 작동으로 우리 기억 속에 누군가 살았던 삶의 잔상을 만든다." 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도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기억속, 마음속의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다.'의 의미 역시도 내 마음에 누군가 다녀갔던 방의 흔적들은 여전히 존재 하지만 사실 지금은 그 누구도 존재 하지 않음을 각인시키는 것 같다. 우리는 그 기억들을 잊고 살아가지만 시시때때로 기억의 서랍이 의도치 않게 열려 버리듯, 이 공간의 폐기된 문들도 자동으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최수환(Choi Su Hwan) 유령연습(ghost practice.)
키네틱 설치, 2018, 공간에 가변설치
-최수환 작가의 작업은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다. 그저 스쳐지나갈 만한 것들에 대해 낯선 상황을 덧붙여 눈여겨 관찰할 것으로 반전시킨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일상의 사물들이 특별한 동력이 부여되는 순간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작품 제목이 "유령연습"이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사물을 움직여 살아있는 유기체 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의도 였다면 가위와 못의 움직임은 그 의미에 부합하였고 신발의 움직임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 봤다. 벽면에 그려진 동그라미 선을 따라 나사 못이 빙글빙글 돈다. 그 원리를 대충 눈치 챌 수 있을 것 같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못' 이었다. 가위도 마찬가지. 기둥 밑으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은체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인데 비해, 신발만 기구를 이용하여 열심히 움직여 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생동감을 부여한 '자체적' 움직임처럼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었다.
-마무리로 이 총 3가지의 전시들은 무료로 7/26일까지 진행되며,
각각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움직임'과 '테크놀로지' 라는 공통의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다.
요즘 이래저래 크고 작은 전시들을 보러 다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힐링되는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곳은 아무래도 개인이 오픈한 사설 전시관이다보니 따로 입장료를 받고있다고 하셨다.
입장료가 오천원대 가격이었던걸로 기억하고 원하면 음료도 함께 주문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주제의 전시이니만큼 음료 빨대 또한 플라스틱이 아니라 옥수수로 만든 빨대라고
알려주셔서 자세히 봤는데 영락없는 플라스틱 빨대처럼 생겨서 약간 의구심을 품고 물었다.
"그냥 일반 빨대 같은데요....ㅎㅎ?"
보기에 플라스틱 빨대와 거의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친환경 빨대라고 하니,
더욱 의미있는 마음으로 음료를 천천히 마시며 전시를 관람해보기로 했다.
I went to see a small art exhibition located near Jeonpo, Seomyeon. These days, I go to exhibitions that are big and small, and I personally have a very healing time.
Since this is a private exhibition hall opened by an individual, he said he was receiving admission fees separately. Remember that the admission fee was around 5,000 won and you can order drinks if you want. Since it's an exhibition of themes about the environment, beverage straws are also made of corn, not plastic. I looked closely because you told me that it looked like a plastic straw, so I asked with some doubts.
"It just looks like a regular straw..."
It looks almost indistinguishable from a plastic straw, but it's an eco-friendly straw anyway. With a more meaningful mind, I decided to drink slowly and watch the exhibition.
"만약 빨리 가고 싶으시면, 혼자 가세요. 만약 멀리 가고 싶으시면, 함께 갑시다."
If you want to go quickly, go alone
if you wnat to go far, go together
이 전시가 찾아보니, 2019.12.19. ~ 2020.02.01 이 기간동안 진행되는 전시였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요즘 호주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 때문에 sns며 각종 뉴스기사에서도 종종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사실 내가 그동안 대단한 환경운동가의 마인드로 살아왔던건 아니지만 야생동물들이 속수무책 죽어가는 영상을
유튜브로 접하면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관람하게 된 전시라서 그런지 더욱 관심있게 보았다.
심지어 자연 발화로 인한 화재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큰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내가 구독하고 있는 영어 관련 유튜버가 "도와줘" 라는 이름으로 구독자들에게 기부를
적극 권장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나도 그 기부에 동참하고 싶어서 결제 사이트에 접속했으나 왠일인지
"not allowed" 된 카드라는 메시지가 떠서 결제에 실패했다..
아마 해외 사이트 결제가 불가능한 카드라는 뜻인것 같다.
When I looked up this exhibition, it was held between December 19, 2019 and 2020.02.01. The timing was amazing, because of the massive wildfires in Australia these days, SNS and news articles often read about it. I was feeling sorry. In fact, I haven't lived with a mind of a great environmental activist, but I've seen wildlife dying helplessly. I was so sorry to see it on YouTube, but I was interested in it because it was an exhibition.
Even fires caused by natural ignition are a major cause of global warming and climate change, so it's an environmental awareness. I can't help but have. In fact, the English-related YouTubers I'm subscribing to donate to subscribers under the name "Help." I uploaded a highly recommended video, and I wanted to join the donation, so I logged on to the payment site, but somehow, The payment failed because the message "Not allowed" was displayed. I think it means that it is a card that cannot be paid on overseas sites.
무튼, 여러가지 환경에 관련한 문제들을 최근들어 많이 접하며 안타까워 하던 와중에 우연히 이 전시를 보게 된것이
어쩌면 너무나 굿 타이밍이었던것 같은 기분이랄까.
Anyway, I've been experiencing a lot of environmental issues lately, and I've been feeling sorry for the fact that I happened to see this exhibition. Maybe it was such a good timing.
첫번째로 작고 하얀 방에는 영상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새하얀 방에 몇몇 나뭇가지들로 꾸민 것들 제외하고 오로지 영상물 한개만 띄워놓은 방인데
시시각각 영상들이 바뀌면서 산림이 벌채되는 장면들을 포함해, 인간들의 모습을 여러장면으로 보여준다.
First, a small white room had a video on display. It's a white room with only one video, except for a few branches. Humans are shown in many scenes, including scenes of deforestation as videos change every minute.
그리고 흥미로웠던 메인 전시 작품은, "검은 숲" 이라는 제목의 작품인데 무려 폴리에스테르와 700개의 전구를
이용하여 인공 숲을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And the main exhibit, which was interesting, was titled "Black Forest," and it was a polyester and 700 light bulbs. It is said that they made artificial forest by using it.
중앙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두개의 영상물이 tv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고, 바람이 부는 효과와 숲을 연상하는 사운드들이
함께 어우러져 나오고 있었다. 벽 곳곳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많은 메시지들이 붙어있는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실제 숲을 거니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좋다.
If you go into the center, two other videos are coming out of the TV, and the wind effects and the sounds associated with the forest. It was coming together. There's a lot of alert messages all over the wall. It is good to read them one by one and enjoy them as if you are walking through a real forest.
구비되어 있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감상해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마침 평일 오후 시간대여서 전시 관람하는 사람이 나 뿐이라, 혼자서 조용히 공간을 느끼기에 너무나
한적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가끔 이렇게 비영리로 개개인이 주최하는 소소하지만 유니크한 미술 전시를 관람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글쎄, 아무래도 작은 소규모의 미술 전시관을 가면 괜히 작가의 측근이나 지인들을 위한 환영의 장소가 아닐까,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진행하는 전시가 아닐까 하는 부담으로 쉽게 관람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없지않아 있기도 하고 특히 내 경험상으로, 해운대 달맞이 길에 있는 작은 갤러리들이 그런
경우가 더러 있다. 또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정보를 얻기 힘들다보니)
근데 사실 작가 입장에서보면 그런 '일반 관람객'들이 찾아와주는거는 너무나 전시의 취지에 부합하는 기쁜 일 아닐까.
비영리의 private한 전시를 보러 가는데에 조금의 부담감을 덜어내면 더 많고 흥미로운 작품들을 볼 수 있기때문에
나는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이 전시는 '부산전시'라고 초록창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쉽게 이 전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It said, "Sit still on the sofa, close your eyes, and enjoy it." Just in the afternoon of weekdays, I'm the only one watching the exhibition, so I can feel the space quietly. It was a quiet and good time.
Sometimes I want to see a small but unique art exhibition hosted by individuals for non-profit purposes. Well, if you go to a small art exhibition hall, maybe it's a welcoming place for your close friends and acquaintances. Some people may not be able to easily watch the exhibition because of the burden of being held only in their own league. (In fact, that's not necessarily the case, especially in my experience, the small galleries on the Dalmaji road of Haeundae. There are some cases. Or, in the case of unknown writers, it is difficult to get information.
In fact, from a writer's point of view, it would be a great pleasure for such "general visitors" to come to the exhibition. If you take the burden off of going to a private exhibition of non-profit, you can see more and more interesting works. I highly recommend.
The exhibition is called "Busan Exhibition," and you can easily check the information of the exhibition by searching on the green portal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