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에 '도림천'이라는 하천 양쪽으로 산책로가 있는데, 갑작스럽게 서울 친구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처음 와보게되었다. 근데 길고양이는 그렇다치고 오리가 떠다니고 두루미(?)로 추정되는 큰 새가 날아다니는 것이 내겐 약간의 신선한 경험이었다. 마치 넓은 생태공원에나 있을 법한 두루미가 이렇게 도심 중심에 위치한 산책로 하천에 사는 풍경이라니... 되게 이 동네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일부분이겠지만.. 지방러인 내겐 꽤나 신선한 풍경이었달까.
운동하고, 휴식하고, 힐링하기
달리기로 충분한 유산소 운동을 끝내고 쉬엄쉬엄 산책하면서 이곳에서 만난 동물들을 위주로 사진을 촬영했다. 사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지만 동물들을 찍느라고 그 모습은 별로 담지 못했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대낮부터 저녁 늦은시간 까지도 산책하고 휴식을 취하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나처럼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사람부터 큰 대포카메라로 뭔가를 열심히 찍고있던 아저씨도 있었고 어린 친구들이 모여서 마치 학교 캠퍼스처럼 자리를 펴고 치킨먹는 모습까지. 제각각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고 운동하는 사람들 모습이 왠지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사람을 1도 경계하지 않는 이곳 야옹이들을 단연 마스코트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산책 중 한 아주머니 옆에 팔자좋게 누워서 그르렁대고 있는 치즈태브냥이를 봤는데 집고양이인 우리 냥이보다도 더 개냥이스러운 모습에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하천의 마스코트로 나는 '개냥이'들을 손에 꼽긴 했지만 사실 이 두루미인지 백로인지 뭔지 모를 왠지 털이 풍성하지 않아 어딘가 초라해 보이는 이 친구들이 처음부터 가장 눈에 띄이긴 했다.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삼락공원처럼 커다란 생태 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 커다란 새가 그냥 평범한 도심 한가운데 있는 하천에 그저 살아가고 있다는게 신기했다. 털이 아주 풍성하고 건강한 예쁜 모습은 아니었던것 같지만 그래도 존재감 하나만큼은 얘네가 갑이다.
어쨌던 부산 본가에서 가장 아쉬우면서도 가끔은 불편하다고 느꼈던 것이 바로 집 주변으로 조깅 할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는것이었는데, 이곳 주민들은 언제든지 나와서 조깅하고 산책하고 물소리 들으며 힐링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단게 한편 부럽기도 한 부분이다.그리고 이곳 도림천에서 좀 더 나가면 '보라매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 곳 또한 역시 운동하고 산책하기에 너무나도 괜찮은 장소였다. 큰 공원과 하천이 흐르는 산책로가 근처에 함께 있다는게 이 동네의 장점인 것 같다.
MBTI 테스트는 사실 예전에도 해본적이 있었는데 요즘 다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길래 몇년만에 다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한번 더 테스트를 실행해보았다. 나의 기억으로 옛날의 테스트 결과는 INFP (열정적인 중재자) 유형이었는데 최근 다시 테스트 해본 결과, ENFP (재기발랄한 활동가) 유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맘에 몇번 더 진지하게(?) 테스트를 실행해본 결과 역시나 ENFP라는 똑같은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와서 아마 나는 'ENFP'가 확정적(?)이지 않나 싶다.
당신이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저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가슴 저리게 동경하는 것이 있는지, 당신 마음속 깊은 바람을 감히 충족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위해, 당신의 꿈을 위해, 그리고 삶이라는 모험을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꾸다!
타인을 즐겁게 하는 사교적인 특성만이 이들이 가진 전부가 아닙니다. 활동가형 사람은 통찰력 있는 비전으로 호기심과 에너지 사이의 선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이들은 인생을 하나로 연결된 크고 복잡한 퍼즐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인생을 체계적인 일련의 과정으로 보는 분석가형 사람과 달리 인간의 감정이나 인정(人情), 신비로움을 프리즘에 투영하여 그 안에 숨어있는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다소 과하리만치 독립적인 성향의 이들은 안정적이거나 안전한 삶이 아닌창의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갈망합니다.
다른 성격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활동가형 사람들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이들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단 창의력에 발동이 걸리면 이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되어 동료나 사람들로부터 리더 혹은 전문가로 추앙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독립적이며 자유를 최고로 여기는 활동가형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는 아니며, 만일 반복적인 관리 업무를 요구하는 자리에 있는 경우라면 더욱이 그러합니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찾는 데서 큰 자부심을 얻는 활동가형 사람에게 혁신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의지 여부가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그들 자신이 지루한 일상적인 업무에 갇혀 있다고 생각될 경우, 이들은 쉬이 낙담하거나 인내심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
다행히도 활동가형 사람은 언제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일할 때는 열정적이며 진취적인 모습이었다가 단숨에 무대 위 열성적으로 몸을 흔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으로 단숨에 변모하기도 하는 이들은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로 종종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다양한 성격적 면모는 다른 이들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가능하게 하며, 특히나 친구 혹은 동료들에게 색다른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영감을 불어 넣기도 합니다. 활동가형 사람은 모든 이들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귀 기울이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인간 감정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이들과 대화 시 단골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가형 사람에게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만일 이들이 그들의 직관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사람들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 오해가 생겨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데, 이는 단도직입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길입니다. 이러한 사회생활에서 빚어지는 스트레스는 협력과 조화를 중요시 여기는 성격의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잠을 설치게 하는 근심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혹 실수로 누군가의 발을 밟았다 할 경우, 이들 역시 발을 밟힌 사람과 같은 고통을 느끼는 감성적이면서도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활동가형 사람은 인간관계나 사람의 감정, 혹은 생각과 관련하여 이들이 원하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그들이 원하는 답을 찾는 그 날, 이들의 상상력이나 인간애, 그리고 용기는 어마어마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돌고 도는 ENFP를 표현하는 수많은 짤들 중에서 내가 가져온 것은 바로 ENFP 빙고판인데 해당하는 것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ENFP에 해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그리고 나는 아래 빙고판을 거의 다 동그라미 치다시피 하였다.
나는 여기저기 인터넷을 서칭하면서 읽은 ENFP유형에 대한 설명 중에서도 기억에 남고 크게 공감하는 부분과 결과적으로 내가 느끼는 ENFP 유형의 인간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하고 아래에 요약/정리를 해보았는데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똑같은 업무를 오래 견디지 못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일에는 흥미를 갖기 어렵다. 호불호가 강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 걸 좋아한다. 여러가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많고 망상, 공상을 즐겨해서 아이디어는 많으나 실천력과 추진력이 다소 떨어진다. 변덕이 있고 싫증을 잘 느껴 여러가지 일을 벌리는건 잘 하나, 끝마무리가 늘 약하다. 대체적으로 솔직한 성격이라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난다. 얽메이는 것과 강요, 억압은 ENFP에게는 지옥이다. 즉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또 한가지 독특한 부분은 '외향적인 사람들 중 가장 내향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쉽게 요즘 단어로 설명하자면... 인싸들 사이에선 아싸이며 아싸들 사이에선 인싸? 또 다른 표현으로는 '쩌리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외향성과 내향성이 정말로 골고루 존재하는 인간이므로 너는 외향적이야 내성적이야?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둘다 가지고 있어. 어디에도 크게 치우친 것 같지 않아." 라고 거의 얘기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ENFP에 대한 길고 긴~ 서두를 얼른 마무리하고 내가 사실 진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ENFP가 회피성 성격장애에 걸린다면 그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에 대해서 얘기 하고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회피성 인격장애'에 대해서 잘 몰랐을 때 나는 다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게 좋지만 내게 너무 가까이 오진마. 나를 너무 깊히 알려고 하진 마. 니가 좋은데 싫어."와 같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선천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너무 혼란스러웠고 거기에 대해 나홀로 깊은 고민에 빠졌던 경험이 많이 있었기때문이다.
근데 어쩌면 이제서야 조금 스스로에 대한 그 이상한 궁금증이 마치 퍼즐 조각이 끼워맞춰지는 것 처럼 이해가 되는 사건이 마침 벌어지게 된것이다. (mbti 테스트 뿐만 아니라, 회피성 인격장애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크게 작용) 거의 31년만에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 이상한 관계의 키를 마침내 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위에서 살펴봤듯 ENFP들은 호기심이 많고 사회적 상호관계를 중요시 생각하며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은 부류다. 그러나 ENFP라고 해서 트라우마에서 늘 자유로울순 없는 법.. 그들도 어떤 계기나 원인으로 상처를 받고 그 후유증으로 인격장애를 형성하는 정신병력을 앓을 수도 있고 특히나 내가 말하는 '회피성 성격장애'는 ENFP에게 정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활발한 그들에게, 인간을 멀리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의 병을 앓게된다는 것은... 마치 고양이가 의지와 상관없이 생선을 멀리하고 기피하는 병에 걸린것과 똑같은 상황인거다.
바로 그 엄청난 스트레스가 내가 겪어왔던 어린시절의 이야기이고 이제서야 나의 혹독하고 외로웠던, 우울했던 지난 시간들이 이 mbti라는 성격테스트와 심리상담사 유튜버 채널에서 알게된 '회피성 성격장애'를 이해하고서 모든 실마리가 풀려나간 것이라는게... 참 웃기면서도 안타까운 부분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ENFP에게 뿐만 아니라 회피성 성격 장애란건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것이겠지만 특히나 ENFP들에게는 더욱 혹독할 수 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고싶다.
인터넷을 서칭해보니 ENFP들의 알수없는 감정기복의 변화를 잘 컨트롤 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그 간극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만한 취미 활동을 만들어야 하고 그 안에서 나름 규칙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인내하고 현실에 충실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동시에 말한다.
아무쪼록 억압과 강요를 당하는 환경에 소속되어 있는 ENFP가 있다면 얼른 그 환경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창의적이지 않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을 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ENFP라면 얼른 적성에 맞는 다른일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내게 맞지 않는 '쥐약'같은 것이 무엇인지. 장기적으로 도통 우울함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ENFP가 있다면 아마 ENFP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환경이나 업무에 지속적으로 노출 된 것이 아닌지 염려하고 자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고싶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심리상담사웃따'라는 채널을 알게되었다. 그분 채널 영상을 통해서 '회피성 성격장애'와 '게으른 완벽주의'성향에 대한 설명을 보게되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나는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회피성 성격장애'와 약간의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으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것 같다. 어쩌면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회피성 인격'이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또한 부수적인 역할로 사회적 불안과 우울증을 동시에 앓았던 기억이 났다. 사회적 불안과 우울증으로 오랜시간동안 나를 많이 힘들게했던 첫번째 원인이 어쩌면 바로 이 '회피성 성격장애/인격장애'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신기하게도 회피성 성격장애와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은 묘한 교집합이 존재했다.
회피성 성격장애 특징
웃따 채널에서 설명하는 회피성 성격장애의 특징은 이러하다. 그전에 먼저, 회피성 성격과 회피성 성격장애는 다르게 구별되어야 한다. 회피성 성격은 친숙하지 않은 사람과 말을 잘 섞지않고 불편해 하지만 친숙한 사람과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는 특징을 얘기하는데 이 회피성 성격이 더 극대화되고 발전하면 말 그대로 '회피성 성격장애'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회피성 성격장애는 우울 증상 및 사회불안장애도 잇따라 발생시킬 수 있는데 대부분의 신경 정신 질환들이 그렇듯, 뭐든지 극대화되면 우울증/불안장애가 뒤따라온다는 것은 정신병의 종류를 막론하고 대부분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 마저 든다. 아무튼 남들의 시각에서 보았을때는 이 회피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그저 아주 차가워 보이고 냉정하고 내성적인 사람 정도로만 비춰진다는 것이다.
즉, 낯선 사람에게는 그들이 나를 수용해줄 확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친숙한 사람들 외에 인간관계에서는 '회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회피형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강한 욕심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어째서? 왜?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바라면 더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행동하고 다가가는게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강렬히 원한다는 것의 의미가 동시에 타인에게 거절이나 거부 혹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을 듣는것을 죽을만큼 꺼려하고 힘들어한다는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인간관계를 맺지 않겠다! 라는 식의 '극단적' 행동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나아가서 '타인이 보는 나', '타인에게 비추어 지는 나'에 대한 의식의 과잉이 온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의 과잉은 즉 '자의식 과잉'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왜냐면 나는 타인에게 조금의 부정적인 평가도 받아들일수가 없으니까. 그것은 내가 죽을만큼 괴로우니까.
누군가의 거절이 두려워. 두렵고 그것은 너무 무서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예 관계를 포기하고 직면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싫어하면 안되기때문에 처음부터 거리를 둔다."
회피성 성격장애와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닮은점?
하지만 중요한것은 이 아이러니한 행동이, 이렇게나 '비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사실은 너무나 '사회적'이고 싶은 마음에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저 차가워 보이고 남들에게 냉정하게만 보였던 그들의 속마음은 오히려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튜버 웃따님은 이소라의 노래 가사 한구절로 이 묘한 상황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주었다.
"내가 사랑하면 사랑한단 말 대신, 차갑게 대하는걸 알잖아"
by 이소라 - 처음느낌 그대로
그래서 내가 발견한 회피성 인격장애와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교집합이란것은 이런것이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역시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평소 자신의 이상이 너무 높고, 그런 높은 이상때문에 무언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인 사람들이다. 왜냐면 이상은 너무 높고 실천하기엔 벅차며, 그 이상을 쫓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많은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도저히 받아들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 " 라는 생각인 것이다. 또한 그런 생각은 굉장히 이분법적인 흑백사고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실패와 성공 두가지로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0과 100 그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숫자들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아주 극단주의자이기도 한것이다. (중간을 생각하지 못한다. 중간을 객관적인 '중간'의 상태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
'타인의 거절이 두려운 회피성 성격'과 '실패가 두려운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참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놀랍게도 나는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시간이 흘러서 성인이 된 '나'는 그때보다는 달라지고 변화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회피성 성격과 게으른 완벽주의의 후유증이 어느정도 남아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지난 날들의 '나'를 떠올리는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그런 상황에 내가 놓이게 되면 괜시리 다시금 우울해지고 슬픈 상태에 빠져버려서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릿속의 기억은 내가 경험했던 일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수가 없으므로 이 회피성 인간들에게 제안하는 해결방법으로 영상에서는 '직면'을 추천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는 '고슴도의 회피튜브'라는 유튜버의 동영상에 링크되어있던 '성인애착유형테스트' 주소이다.
이 유튜버는 또 회피형을 3번과 4번유형으로 나누는데 위의 테스트로 나는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 할 수 있다고 하여 해보았다. 물론 현재가 아닌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테스트에 임했더니 자기부정/타인부정의 4번 유형이 나왔고 지금의 상황을 기준으로 생각하여 다시 검사 했을때도 수치가 좀 떨어진 것 말고는 여전히 4번유형으로 나타났다.
'회피성 성격/인격장애'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다. 첫번째로는 대부분 유아기때 부모님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그 이후에 여러 사회적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것이 발전하여 '회피성 성격장애'를 유발한다고 하는데 아마 이 유형의 사람들은, 힘들지 않게 지금의 내 성격 고착화에 큰 영향을 받은 여러 사건들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을 여전히 조금 가지고 있고 회피성 인격 장애는 전보다 많이 사라졌지만 이따금씩 '회피성 성격장애'를 떠올리는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는 일들이 발생했을 때, (앞으로도 있을것이고) 그럴때마다 나를 다시 조용히 잠재우는 것이 아직도 가끔 힘들고 고통스럽다. '회피성 성격장애'를 겪은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 인생의 '텅 빈' 시간을 갖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삶을 살아가면서 그 텅빈 상자를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며 지나쳐 왔지만 종종 다시 그 빈 상자를 맞닥드려야 할때가 어느순간 발생하고, 그럴 때 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의 해결방법의 끝은 결국 진부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서 내 자신을 찾고 집중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저 내게 집중함으로써 지나간 그 텅빈 기억의 상자를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내 앞에 다가오는 상자들을 의미있는 노력과 경험으로 가득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만이......
물론 이 과정에서도 현실과 이상의 부딪힘은 발생하겠지만 그 부딪힘은 꼭 '회피성 성격장애'유형의 사람만 겪는게 아닌 다른 일반 사람들도 똑같이 겪는 갈등, 즉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장애물이기에 우리에게만 특별한 에러사항이라고 생각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이 글을 보며 내 얘기라고 생각하며 읽고 있을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도 얘기하자면, 그런 현상들을 겪은게 모두 내 탓, 나만이 잘못이 아님을 잊지 말자. 그저 나 혼자만의 탓도 잘못도 아니다. 누구보다 좀 더 민감하고 예민함을 타고났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장애'로 발전되기 까지는 건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훨씬 어린시절의 경험도 무의식에 반영되고 저장되기 때문이라고 하니, 자신을 너무 자책하며 우울함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진 말자는 얘기를 꼭.. 전달하고 싶다.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현재 총3개의 무료 전시를 진행중이다. 전과 달라진점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서 전시 관람 전 "온라인 예약"을 필수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미술관 공식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사전예약을 받고 있으며 1시간당 50명 선착순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예약을 했다 하더라도 마스크 미착용시 출입이 제한된다는 점을 미리 염두해두어야 한다. 바로 아래 링크에서 예약이 가능하며 '예약하기' 버튼을 누르면 로그인 페이지로 넘어가는데 부산현대미술관 전시 관람 예약은 부산시 홈페이지 ID로 로그인 하여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물론 비회원 로그인도 가능하도록 되어있지만 나같은 경우는 회원가입을 통해 예약을 했다.
'미술’과 ‘기술’의 결합/융합은 이미 지난 세기 초부터 주요한 관심사이자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테크놀러지와 IT가 전면적으로 유입, 확산되고 있는 근자에 이르러서는 ‘미술’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모하고 있으며, 그 개념이나 정체성에 관해서도 보다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근대 이후 예술은 과학적 사고와 기계적 논리에 입각한 이성적 활동과 분리되어 아름다움을 규범이나 목적으로 삼는 인간행위로서 스스로의 자율성을 추구해왔으며, 급격한 사회변화를 동반한 산업혁명 이후 예술가들은 도구로서의 테크놀러지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래주의를 비롯하여 러시아 구성주의, 순수주의, 바우하우스운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일군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는 기술과 과학적 합리성을 예술의 원천이자 이념으로 삼고 그로부터 미적‧정신적 가치를 찾음으로써 보다 이상적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들어 적극적으로 모색된 미술과 기술의 결합은 미술의 형식과 내용의 확장을 초래하였으며, 더욱이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와 IT기술, 그리고 생물학과 화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발전은 확장의 폭과 깊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은 이러한 미술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목도할 수 있는 현장인 동시에, 과거의 미술관과 다름없이 관람객이 미술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자리이다. 따라서 유례없는 미술의 변화에 대해 그 의미를 파악하고 진단하며 나아가 관람객이 이러한 상황을 수용‧이해하도록 하는 미룰 수 없고 쉽지 않은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동시대미술관으로서 그 층위와 지향을 달리하는 미술의 기술 수용과 융합의 수많은 양상들을 살펴 관람객과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미술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시대미술의 여러 동향 가운데 미술관의 주요 과제의 하나인 ‘테크놀러지’를 대상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소위 로우-테크놀러지(Low-Technology)를 그 범위로 삼아 기계장치(mechanism)을 기반으로 하는 근작들을 통해 그러한 기술을 수용한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기술’과 ‘미술’에 관한 인식 전반과 그것의 구체물로서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의미를 미적 관점에서 살피고자 한다.
따라서 전시는 미술과 기술의 결합이 야기하는 ‘극적’, ‘서사적’ 측면보다는, 미적 의미체로서의 작품에 관심을 둔다. 즉, 작가의 예술적 이념이 그 둘의 결합을 통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강화되고 구체화되고 있는가, 새로운 기술의 적용이 미술을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그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게 하는가 등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 미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에서 드러나는 미술과 기술에 관한 관점들을 가능한 대로 정리하고 동시대미술 전반에 시사하는 점들을 추려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이 내포하고 있듯이 다양한 인간 활동의 한 범주를 규정하고 지시했던 용어인 ‘테크네(technē)’와 ‘아르스(ars)’로부터 파생, 분리된 ‘테크놀러지(technology)’와 ‘아트(art)’가 다시금 의미상 ‘복원/환원’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자 한다. 오늘날 미술의 양상을 기술과 미술이라는 분리된 두 범주의 결합이라는 측면보다 더 근본적인 지점으로부터 해석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 번의 전시가 수많은 미술가들의 폭넓고 다양한 생각과 작품을 포괄하여 의미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미술과 미술품, 그리고 작가에 관한 다각적인 관점과 고찰의 하나로서 우리나라 동시대미술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의 한 시도가 되기를 기대한다. 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나는 총 3개의 전시를 어떤 순서로 볼 지 잠깐 생각해보다가 B1>1F>2F 순서로 보기로 하고 가장 첫번째로 보게 된게 바로 '기술'에 관하여 라는 전시이다. 위의 전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와 '미술'의 접목을 주제로 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 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으며 '기술'과 '미술'의 관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의 기술에 따른 여러가지 시대 변화와 그것이 '미술'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미술계와 아티스트들의 포지션과 견해들을 일목정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몇가지 작품들을 아래 이미지 및 동영상으로 소개하며 짤막한 나의 감상평을 남겨본다.
김대홍 Daehong Kim, 로봇, 로봇 동물원, 로봇댄서, 2020, 움직이는 로봇, 가변설치
A Robot, 2020, Moving Robot, Dimension Variable
'로봇'동물원 이라는 전시 제목부터가 꽤 흥미로운 작품 이었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로봇 동물들의 움직임이 귀엽게 느껴진다.
벽 너머 작은 공간 안에 설치된 듯 보이는 깃발과 푸른 조명이 마치 굉장히 아득히 멀리 있는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왠지 가까이 있지만 멀리 느껴지게끔 했고 한동안 서서 깃발을 예의주시하며 집중해 보았다. 자연스럽게 공간적 감각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는데 작품에 쓰인 소재를 읽어보니 LED란다. 내가 본것이 공간이 아니라 화면이었나? 푸른 조명의 역할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몽환적이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을숙도 세레나데'라는 작품인데 작품의 앞/뒤 모습을 함께 촬영했다.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을숙도 세레나데'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조명을 이용해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노래가 굉장히 경쾌하고 독특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함께 왠지 모를 기이한 발랄함에 웃음이 나왔다.
한진수 Jinsu Han, Red blossom, 2008, 철, 구리, 모터, 팬, 비눗물, 안료, 딸기향, 시간에 따라 크기 변화
Red blossom, 2008, Iron, Copper, Motor, Fan, Soapy water, Pigment, Strawberry flavor, Time Based Dimensions
벽을 향해 비누방울들을 계속 쏘고있다. 작품에 쓰인 소재에 '딸기향'이 적혀있었는데 내 코가 마비된건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도통 딸기향을 맡을 수 없었다... 그저 강렬한 핑크빛, 블루빛 안료가 눈길을 사로 잡았다.
<2020소장품전 : 오늘의 질문들>은 2017년 개관을 준비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부산현대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수집해온 작품들을 공개함으로써 시민과 소통하고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전시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지금’, ‘현재’의 맥락을 중심으로 동시대미술문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근현대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산시립미술관과 차별점을 둔다. 따라서 미술관은 회화·조각 등의 전통적 방식에서부터 다채로운 시지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융·복합 형태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의 사회·경제·문화적 함의를 내포하는 현대미술작품들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전시는 전체 187점의 소장품 가운데 미술관 수집정책의 핵심가치를 효율적으로 표방하는 작품 22점으로 구성된다. 그 방향성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미술관으로서 부산지역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적극 반영하고자 한다. 공립미술관은 한 도시의 얼굴로서 지역성의 특화라는 기초 하에 전국 또는 국제적인 커뮤니티로 확장하는 글로컬 미술관의 모습을 지향한다. 따라서 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 동시대미술의 생생한 역사를 완성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지역미술에 관한 애정어린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
두 번째,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한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미술을 통한 인식의 확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미디어 이론 연구가 마샬 맥루한에 따르면 각 시대에 쓰이는 기술이 새로운 인간환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조건 지어진다. 첨단기술의 발달은 미술의 영역을 아날로그 기반의 작품들과 더불어 기계공학적 전자매체를 활용하는 전혀 다른 미학적 장르로 확대시켰다. 전시는 시각예술의 형식을 넘어 청각에 초점을 맞추는 사운드 아트를 비롯하여 동력을 이용한 움직임을 주(主) 수단으로 하는 키네틱 아트,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를 포함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새로운 차원의 시지각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계를 감각하고 체화하는 방식에 대한 관람객 스스로의 실험을 유도하는 바이다.
세 번째, 국내외 현대미술사에서 새로운 가치 구현에 기여하고 있는 역사자료의 총체로 역할하고자 한다. 동시대미술은 현재의 시점을 단순히 과거의 연장선으로 파악하는 개념에서 탈피하여 현재의 순간과 인간 사고의 지평이 서로를 탐색해나가는 과정을 제안한다. 전시는 당대의 기술적 환경 및 이슈 속에서 확고한 예술 실천의 태도를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감상자로 하여금 현재를 재사유함과 동시에 미술이 지닌 복수의 콘텍스트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전시는 작품들이 단선적 해설을 제공하는 일방적 의미전달 수단에 그치는 것을 지양한다. 다시 말하면 관람객 스스로가 의식체계를 정비하고 정체성을 발견하며 그것을 토대로 삶과 세계에 있어 유의미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덧붙여 미술관이 당대와 미래를 위한, 잠재력을 발굴하는 창조의 장소로서 시민들과 함께 발맞춰 나아감을 인식하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
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2017년 개관이래로 지금까지 현대미술관이 수집해온 작품들을 공개하는 전시였다. 움직임과 더불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독특한 작품들이 인상깊었다. 이 전시관에서도 역시 전자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이 대부분 많았고 몇몇의 아날로그 기반 작품들도 소량 전시하고 있었다.
허수빈, 방범창문과 햇살(ed.1/3), 2017, 특수거울필름, 로고라이트 벽면에 투사, 실제창문 크기 혹은 가변크기
-빛을 이용하여 실재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창초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듯 한 환영의 세계는 공간 속 관객들이 각자 상상하는 곳으로 은밀하게 연출되어 묘한 리얼리티를 제공한다.
허수빈, 욕실창문과 햇살(ed.1/3), 2017, 특수거울필름, 로고라이트 벽면에 투사, 실제창문 크기 혹은 가변크기
실제 존재 하지 않는 가상공간을 조명을 이용하여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 처럼 구성한 작품이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벽면을 단순 '조명'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독특한 가상 세계를 구현해낸 모습. 이 공간이 나를 이끈 내 상상 속 '은밀한 곳'은 내가 옛날에 살던 낡은 자취방의 화장실이었다. 지금은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쇠창살 느낌의 창틀인데 그 때의 허름한 자취방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아있었다.
정만영, 순환하는 소리, 2014, 사운드 장치, 수도꼭지, 마이크스텐드 외 혼합, 가변설치
-작가가 국내 외 다양한 곳을 다니며 물소리, 샘물소리 등을 필드레코딩 형태로 채집한 후, 그 소리가 다시 수도꼭지를 통해 나오도록 만들었다. 관람객은 수도꼭지를 틀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촉각과 시각, 청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 작품이다.
관객의 참여가 가능한 작품 이란것을 모르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함부로 손대지 못하고 그저 응시하며 감상하고 지나쳤었는데 팜플렛을 읽어보니 수도꼭지를 틀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았다. 지나친 동선을 다시 돌아와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리얼한 물소리, 샘물소리들이 흘러나왔고 아래 놓여진 양동이로 소리들이 쏟아지고 담기는 것을 상상 했다.
알렉스 베르하스트, 정지된 시간(세부구성 : 저녁식사, 인물연구, 테이블 소품)(ed. 4/5 +2AP), 2013, 애니메이션 루프, The Dinner : 110.7 x62.2, Table Prop : 24.5x29.5, Character Study : 29.5x24.5
-'가장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고 난 직후 가족들의 미묘한 심리를 연출한 작품으로, 가족의 공동 초상을 담은 <저녁식사>와 이들의 개인 초상인 <인물연구>, 그리고 인물들 내면의 알레고리인 정물화 <테이블 소품>으로 구성된다. 인물 간 대화는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일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섬세한 왜곡으로 기묘함을 더한 인물 묘사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허무와 죽음'을 상징했던 '바니타스 회화'의 변주를 통해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탐구하고 있다.
스틸만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세요. 라고 적혀있다. 다행히 통화료가 청구되지 않는다고 한다. 위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곧이어 '따르릉' 전화음이 전시관 내의 스피커로 크게 흘러나오고 스크린속의 남자의 폰에 신호가 울림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면 속 그는 내가 건 전화를 '별 것 아닌' 전화로 외면하며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기묘한 가족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루이비통 가방을 20여 조각으로 자른 후 순간접착제를 이용해 원형의 모습으로 재조합되는 과정을 담은 영상과 그 결과물로 구성된다. 사물을 거칠게 부수는 작가의 행위는 다분히 공격적이며 의도적인 것으로 사물의 기능과 브랜드의 가치에 대한 환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또한 파편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는 과정은 작가가 가진 손과 노동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이 영상은 이제 막 구매한 것으로 보이는 루이비통 가방이 등장하고 작가가 제품을 조심스레 언박싱 하며 시작한다. 아마도 내 기억에 130만원대의 정품 루이비통 가방이었던 것 같고 친절히 정품 택과 정품 인증을 할 수 있는 마크들을 화면에 가까이 보여준다. 그리고 보기좋게 가위로 갈기 갈기 가방을 조각낸다. 마치 요즘 유튜브에서 한창 유행하는 '코스메틱 ASMR' 영상이 함께 연상됐다. 다양한 종류의 새 코스메틱 제품들을 깨부수고 파괴함으로써 느낄수 있는 아찔한 쾌감과 오감을 자극하는 사운드, 소리를 담은 인기 영상들 말이다. 이 작가의 작품이 언제 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의 ASMR 열풍 이전에 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유튜브에 이 작품을 올려도 꽤나 조회수가 올라 갈 것같은 영상이 아닐까 라고 상상해보았다.
오용석, 클래식 1978번(ed. 2/5), 2009, 단채널비디오, 1분30초
-작가의 유년시절 사진에 그 시절의 실제 소품들을 맞물리게 이어 붙여 당시의 기억을 추측하고 재현해낸 작품이다. 여러 시점의 공존을 통해 하나의 정지된 이미지가 내포하는 한계점을 고발하고 사진 너머에 존재하는 다각적 기억의 복원을 시도했다.
작가의 어린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찍은 한장의 사진으로 상상의 배경 이미지를 이어붙여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바닥에 있는 장난감들은 실제로 방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사진찍기'는 '빼기'라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다. 많은 부분 중 어느 한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포착한 피사체 주변으로 '삭제'되어버린 배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움직이는 이미지 표현으로 오래된 기억을 마치 가까이서 꺼내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생동감이 인상적이다. 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미지의 사용과 그 작용이 인류문명 발단 단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를 통해 신의 형상을 보고 싶어 했고, 욕망의 대상을 오랫동안 시각 구성물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미술은 이렇게 성스럽고 소중한 것의 기록 매체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미술에서 재현의 역사를 추동시켰다.
사람들의 욕망은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는 대상도 ‘재현’의 범주에서 다루었다. 하지만 미술 매체가 한정되었던 시대에는 움직임 자체를 재현할 수 없었다.
카메라의 발명은 ‘재현’의 문제에 신기원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근대문명에서 리얼(real)과 팩트(fact)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철학의 문제를 낳았다. 아티스트들도 이러한 세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유럽의 미술계는 ‘역동성’이라는 새로운 모티브를 받아들게 되었다. 말이 달리고, 전구가 휘황찬란하게 불 밝힌 카페의 모습도, 발레리나가 아름답게 춤을 추는 모습도, 플랫폼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어 오는 증기기관차도 바로 그 역동성의 대표적인 주제였다. 하지만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움직임’자체가 아니라 그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이라는 은유나 움직임의 찰나를 포착한 정지된 한 장면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동시대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에 아티스트들이 고민했던 그리고 목표했던 많은 것들이 해결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미술의 중요한 문제의식에서 저만치 멀어졌고, 움직임은 실제로 가능한 재현이 되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작품은 움직임 자체에 대한 구현이 목표도 아니며, 역동성만을 재현한 것도 아니다. 영화의 발명은 시각의 재현을 넘어 시간의 재현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구현되는 첨단의 현대미술은 현대 과학기술의 척도를 보여줄 수 있지만 오히려 자연에 대한 향수와 현대문명이 예단치 못한 이기(利己)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한다. 이제 예술은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인공 기계문명의 역동적인 새로운 풍경에의 찬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예술의 이미지는 이제 서로가 눈을 맞추고 서로가 대상화한다. 인공의 것이 자연의 것처럼 움직임과 표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새로운 감성을 감지하고 소통한다. 영화나 사진의 광학적이고 기계적 매개 결과가 우리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여 울게도 웃게도 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제 어떤 운동, 행위나 표정은 근대인들이 목격한 생경한 것들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함의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움직임’은 감성이나 인식의 표상체가 된다. 기호학(Semiotics)은 이 표상체가 가지는 기표(記標 Signifiant) 를 분석함으로써 현대사회의 풍요로운 사회적, 문화적 의미(기의 記意 Signifié)를 번역해 준다. 예컨대 우리의 제스처가, 화장과 성형이, 패션과 과잉된 욕망의 다양한 기호품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또 다른 언어의 체계를 갖는다.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그 콘텐츠의 움직임(행위 motion), 표정이 우리에게 어떤 감성을 자극해 특별한 표상체가 되는 작품들이다. 우리는 부족한 형용사들을 나열하게 될 것이고 또한 특별한 표정과 움직임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러한 대상에게서 받은 자극이나 간섭으로 발생되는 변화는 풍부한 사회언어를 (재)생산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말하는 ‘작품’은 단순히 기표(시니피앙)만이 아닌, 동시에 기의(시니피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호들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움직임이 암시된 작품들을 통해 특별한 감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된다.
출처 - 부산현대미술관
"인공의 것이 자연의 것처럼 움직임과 표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새로운 감성을 감지하고 소통한다."
"작품은 단순히 기표(시니피앙)만이 아닌, 동시에 기의(시니피에)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호들의 삶에 주목하는 것은 움직임이 암시된 작품들을 통해 특별한 감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KEEN(정찬호 Jeong Chan Ho + 김수 Kim Su) ‘아무도 살지 않는다.’ (Nobody lives.)
키네틱 설치, 2020, 공간에 가변설치
- 들고 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문, 용도 폐기된 실제의 문들이 비현실적으로 배치되어 여전히 그 기능에 부합하는 움직임을 만든다.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문들은 아직 저쪽과 이쪽의 경계를 만들지만, 이미 저쪽은 추상적이고 상상의 공간이 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은 '폐기된' 문의 작동으로 우리 기억 속에 누군가 살았던 삶의 잔상을 만든다. 문들로만 이루어진 골목의 재현과 기억이 누적된 다양한 문들의 합주는 시간을 재현한다.
"작품의 설명 중,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은 '폐기된' 문의 작동으로 우리 기억 속에 누군가 살았던 삶의 잔상을 만든다." 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도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기억속, 마음속의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다.'의 의미 역시도 내 마음에 누군가 다녀갔던 방의 흔적들은 여전히 존재 하지만 사실 지금은 그 누구도 존재 하지 않음을 각인시키는 것 같다. 우리는 그 기억들을 잊고 살아가지만 시시때때로 기억의 서랍이 의도치 않게 열려 버리듯, 이 공간의 폐기된 문들도 자동으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최수환(Choi Su Hwan) 유령연습(ghost practice.)
키네틱 설치, 2018, 공간에 가변설치
-최수환 작가의 작업은 너무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다. 그저 스쳐지나갈 만한 것들에 대해 낯선 상황을 덧붙여 눈여겨 관찰할 것으로 반전시킨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일상의 사물들이 특별한 동력이 부여되는 순간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작품 제목이 "유령연습"이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사물을 움직여 살아있는 유기체 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의도 였다면 가위와 못의 움직임은 그 의미에 부합하였고 신발의 움직임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 봤다. 벽면에 그려진 동그라미 선을 따라 나사 못이 빙글빙글 돈다. 그 원리를 대충 눈치 챌 수 있을 것 같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못' 이었다. 가위도 마찬가지. 기둥 밑으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은체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인데 비해, 신발만 기구를 이용하여 열심히 움직여 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생동감을 부여한 '자체적' 움직임처럼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었다.
-마무리로 이 총 3가지의 전시들은 무료로 7/26일까지 진행되며,
각각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움직임'과 '테크놀로지' 라는 공통의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다.
약 한달전 쯤, 갑자기 블로그에 무효트래픽 증가와 본인 블로그 광고 무단 클릭이라는 사유로 인해서 한달동안 구글 애드센스 광고 게재가 중단되었었다. 그리고 본래대로라면 어제 날짜로 그 중단 기간이 만료되고 다시 풀려야 정상인데 아직까지... 광고 게재 중단중인 상황이다. (ㅜ_ㅜ)그래서 다시 구글 애드센스 페이지에 접속하여 "의심스러운 무효클릭 신고 양식"을 작성하여 다시 보내봤다. 그런데 신고 양식을 제출하여도 따로 답변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신고 결과나 상황 처리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의심스러운 무표 클릭 신고 양식 링크를 클릭하면 아래와 같은 양식이 나오고.. 빈 공백을 모두 작성한 후 아래 제출하기 버튼을 누르면 완료된다. 웹게시자 ID는 구글애드센스 페이지에서 로그인 후, 계정에서 계정정보를 클릭하면 웹게시자ID가 나온다.
웹게시자 ID 찾는 방법 아래와 같다.
아직까지 광고 게재 중단이.. 풀리지 않아 상당히 의문스럽고 맘이 찝찝한데...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은 어느정도 실행 했으니, 좀 더 기다려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인 것 같다ㅠㅠ 어쨌든 4월 18일날 발생했던 직접유입량 급등은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누군가 혹은 제3자의 '광클'에 의한 의도적인 무효 트래픽이 아니었을까... 그저 의심하고 예상해 볼 뿐이다. (물론 내가 몇번 실수로 내 게시글 광고배너를 클릭한 적도 있었지만 왠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고 4월 18일날 폭등한 직접유입량에 큰 원인이 있다고 판단 중)
아모쪼록 힘들게 '애드고시'를 통과 한 만큼 소중한 나의 블로그 계정이 무효트래픽으로 광고 게재가 중단되고 나아가서 계정까지 위협받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ㅜㅜ 건강하고 생산적인 즐거운 블로깅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독자 블로거님들께도 알리자면, 서로서로 돕는다는 의미로 구독중인 타 블로거님들의 게시글에 게재된 광고를 '수익을 올려주겠다'라는 선의의 의도라 할지라도 '광클'을 하는 행위는 절대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드리면서..글을 마무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