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2,3을 총 통틀어 전체적인 리뷰를 적어 볼까 한다. 이 드라마에는 '라라 진' 이라는 한국계 미국 여자아이 캐릭터가 주인공이다.어릴 적 부터 짝사랑 하는 모든 남자 아이들에게 남 몰래 편지를 쓰고 혼자 간직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여자 아이다. 편지 봉투에는 짝사랑하는 남자애의 집 주소까지 적어놓지만 부치지 않은 상태로 몰래 판도라의 상자 처럼 비밀스러운 곳에 영원히 보관 해 둔채 평범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던 와중, 개구쟁이 그녀의 여동생의 발칙한 장난으로 인해 그만 그 모든 편지가 짝사랑남에게 우편으로 전송되고 만다. 총 5명의 짝사랑 상대에게 편지가 전달되어 버리고 그 중에는 친언니의 전 남친(조시)을 포함해, 어릴 적 부터 절친이었지만 중학교부터 사이가 멀어진 친구(젠)의 현재 킹카 남자친구(피터)도 포함되어 있었고 더 어린시절 짝사랑(존 앰브로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심지어 라라진에게 언니의 전 남친 '조쉬'에 대한 감정은 애매하게 현재 진행형이었던 상태.
라라진으로부터 갑작스런 연애편지를 받게 된 남자아이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 편지에 대한 얘길 꺼내려고 하는데, 그 중 피터가 가장 먼저 그녀와 마주치게 되고 라라진이 지난날동안 숨겨 왔던 짝사랑 연애편지를 손에 쥐고 있는 피터를 보고 충격에 그만 라라진은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리고 만다. 정신을 차리기도 잠시, 저기 멀리서 이번엔 언니의 전 남친 조시가 걸어오는데 그의 손에 쥐어진 것도 다름아닌 라라진이 몰래 썼던 연애편지. 그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라라진은 눈 앞에 있는 피터에게 입을 맞춰 버리고 그 모습을 본 조쉬는 깜짝 놀라 멈춰선다.
어쨋든 그녀의 모든 연애편지가 탄로나게 되고 난감한 상황에서 '피터'는 라라진에게 특별한 제안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젠'과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던 피터는 '젠'의 질투심 유발을 목적으로 '라라진'에게 진짜로 우리가 사귀는 것 처럼 학교에서 '가짜 커플' 행세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조쉬에 대한 짝사랑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피터에게 기습 입맞춤을 했던 빚을 진 라라진에게 '너도 날 이용 했으니, 나도 너를 이용하도록 도와 달라'는 제안. 그렇게 둘은 서로서로의 계약 조건을 맞춰 가며 본격적으로 학교에서 '가짜커플' 행세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 쯤 되면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 스토리의 하이틴 드라마 라고 할 수 있다. 가짜로 연애를 시작했지만~ 결국 둘은 정말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으며~ 다른이에게 썼던 연애 편지 대상 남자애들과도 새로운 삼각 관계로 엮이게 되고 어쩌구 저쩌구~ 말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전개가 예상되는 스토리 라인이다. 그럼에도 내가 시즌1을 푹 빠져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10대에만 느낄 수 있는 그 감수성에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고 '라라진'이 겪은 생각과 감정들이 나의 10대때 감정과 꽤나 일치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라라진 이라는 캐릭터에 깊숙히 감정이입 할 수 밖에 없었다. 주책 맞은 이야기지만 풋내나고 흔한 10대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즌1을 보면서 괜시리 눈시울이 젖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라라진이 그동안 왜 또래 남자 아이들과 쉽게 관계를 맺지 않았는지에 대해 피터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장면이 왜그렇게 와닿았나 모르겠다. 영화 분위기는 그 어디에도 심각하거나 눈물을 유발할 만큼의 감정선은 없다. 그저 내가 라라진이라는 여자아이의 캐릭터에 과하게 나 자신을 이입해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라라진은 애초부터 어쩌면 '관계'에 미숙한 여자아이였는데 어린시절 부터 일찍 엄마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갑자기 끊어지는, 혹은 누군가 자신을 떠나가게 될 것이 두려워, 시작도 전에 두려움으로 인해 16세가 되기까지도 단 한번도 남자 친구를 사귀지도,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온 상대의 데이트 신청도 일일히 거절해가며 스스로 '관계'를 차단해 온 아이였다. 그 굳게 닫혀진 마음이 어쩌면 나의 지난 어린시절과도 비슷해서 그렇게 마음이 아펐나보다. 그 어느때보다도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10대 시절에 관계에 대한 첫번째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관계든) 멘탈적으로 건강 할 경우엔 얼른 그 상처를 최대한 잊고 또 다른 다음 사람이 내 자리에 들어 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 아이라면 아마도 그 상처가 마치 내게 영원할 것 처럼 생각하고 자신을 꽁꽁 싸매두기 때문에... 라라진의 모습을 보면서 그 섬세하고 여렸던 지난 감정들이 다시금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는걸 좋아하고 상상, 공상하는걸 좋아하고 즐기지만 그 모든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두려운 그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가짜의 관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솔직할수 있었던 라라진."
어쨌던간 시즌1은 학교 킹카인 피터와 다소 인기 없는 아이 이미지였던 라라진의 가짜 커플 행세로 학교생활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그녀의 생활들을 보여주고 젠의 질투심 유발에도 결국 성공하며 셋의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은 피터와 라라진의 서로의 진실된 마음을 확인하는 부분까지 보여주면서 시즌1이 마무리 된다.
시즌2 에서는 마냥 행복할줄 알았던 피터와의 연애가 어느 순간 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버린 라라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터에게서 젠의 흔적 떠올리며 괴로워 하게 되고 그로인해 혼란스러움에 빠진다. 그러면서 그녀의 짝사랑 연애 편지 대상이었던 또 다른 남자 아이(존 앰브로스)를 우연히 봉사활동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새로운 갈등 구조를 맺는데 다른 리뷰들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피터와 꽁냥꽁냥 연애 하는 모습을 기대 했는데 또 다른 인물을 바로 등장시키면서 너무 갈등 위주로 전개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평이 많았다. 글쎄 모 나는, 그녀가 새로운 남자 아이의 등장으로 전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자친구 피터와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동시에 새로운 설레임이 찾아오는 '진귀한(?)' 상황을 겪는 라라진의 모습을 보는 게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사실상 굉장히 이게 현실적인 얘기니까.
이제 고작 16살의 소녀에게 심지어 남자친구를 처음 사겨보는 소녀에게 벌써 영원한 '사랑'같은 스토리를 기대하기는 글쎄.. 그것이 더 무리수가 아닐까~ 왠지 나같았어도 라라진과 비슷했을 것 같은데. 내가 한번씩 짝사랑했던 과거의 또래 남자아이가 조금의 세월이 흘러서 훈훈한 모습으로 재 등장하고 그 아이 역시 내게 여전히 관심 있어 보이는 눈치라면 15, 16살의 나도 스스로도 주체 할 수 없는 호르몬 변화에 그 정신적 혼란과 육체적 혼란을 과연 잘 감당해낼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런지.ㅎㅎ 무튼 내게는 이만하면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미국 하이틴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이 드라마는 하마터면 주연이 백인 여자 아이가 될 뻔 했다는 사실. 이 드라마 작가가 처음부터 라라진 이라는 한국계 동양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스토리를 썼지만 제작사 측에서 미국의 어느 하이틴 드라마에도 '동양 여자'아이를 주연으로 쓰는 경우는 없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동양 여자아이를 주연으로 썼을 때 보다 백인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쓰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인기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꽤 작가를 계속해서 설득하고 했다고... 하지만 작가가 꾸준히 '동양인 여자아이'로 밀어 부쳤고 결국 초기 바램대로 '라라진'이라는 사랑스러운 동양 여자아이 캐릭터가 탄생 할 수 있었다.
식물 포스팅을 하게 될 지 몰랐다. 우리집 베란다에 아빠가 가져다 키우는 화분이 꽤 많은데 솔직히 아빠는 식물 가꾸는 취미를 갖고 계시지만 치명적인 단점 또한 갖고있다. 산에서 식물을 뽑아와서 화분에 옮겨 심는걸 매우 좋아하시지만 그때 뿐, 그 이후로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란다에 물난리가 났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화분 물받이를 제때 비우지 않아서ㅜㅜ) 그럴때마다 아빠에게 폭풍 잔소리 폭격을 해댔지만... 화분을 방치하는 아빠 때문에 베란다에 식물을 가져와 키우는걸 반대하기도 하고 여러번 싸우고 소리 친 적도 있었는데 (진짜 심각할 정도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어쨌거나 오늘은 아빠가 갖고 온 야생 식물이 꽃을 피운 지가 꽤 됐다. 우연히 아침 햇빛에 비친 그 모습을 봤는데 너무 예뻐서 아침부터 이러저리 몇장씩 사진을 찍어두었다. 화분 관리만 잘 해주시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은데... 아무튼,
사실 찍고 보니 문득 꽃 이름이 너무 궁금해서 다음 포털에 '꽃이름 검색'이라는 기능을 처음 사용 해봤는데 모바일로 다음 포털에 '꽃검색' 이라고 치면 아래와 같은 화면이 나오고 중앙에 꽃검색을 누르면 바로 꽃을 촬영할 수 있는 화면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화면이 뜨면 꽃에 가까이 가져다 대서 촬영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다음에서 이미지를 분석하여 최대한 싱크로율이 일치하는 꽃을 찾아서 이름을 찾아준다. 그랬더니 나왔던 결과가 바로 '자주괭이밥'이었다. 북아메리카 원산 식물이고 3월부터 10월 사이에 꽃이 피고 나면 6월-11월에는 열매도 핀다고 나와있다.
이 얘기는 사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입에 담고 싶지도 않았고 나름 대로 가까운 친구 몇명에게도 공개 한 내 블로그에 굳이 사회적 이슈를 언급하여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마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요 몇일동안 이 생각은 계속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불편한 생각들을 혼자서라도 분명히 정리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터링을 장착하여 이야기를 조심스레 서술하겠지만 사실 마음 같아선 필터링 따위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나마 필터링을 장착 하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이성과 예의를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랄까. 아무튼간 서두가 길었지만 결국은 내가 기피했던 그 단어를 입에 올려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n번방이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는 바로 그 뉴스. 굳이 n번방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어떤 사건인지는 모두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다. 그동안 많은 대한민국의 성 범죄 사건이 얼마나 우습게, 아무렇지않게 취급되어 왔는지 모든 성범죄 사건을 비롯해서 이미 승리 버닝썬 사건을 정점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들, 특히 여성들에게 그들은 큰 무기력감을 안겨 준 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정말 '무기력감'이었다.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될 지 모르겠다. 이것은 수치심과 분노를 뛰어넘어 늘 법원의 어처구니 없는 판결은 그 자체로 피해 여성들에게 또 한번의 2차 가해 및 정신적 폭력을 가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파렴치한 범죄자가 결국 아무렇지 않게 두발을 깎고 교도소가 아닌 군대로 도망치듯 입대 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확인해 버렸고 전 국민 모두가 그의 범죄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왜 누구도 그를 처벌 할 수가 없었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답을 아는 사람이 없다. 도대체 왜? 그 무력감도 채 가시기 전에 (물론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빈번한 일상속의 성 범죄는 언제나 늘 일어나고 있었다.) 가수 구하라와 그녀의 전 남친 최종범과의 법적 공방. 그리고 법원의 판결은 집행유예에 그쳤고 그 후 어느날 들려온 그녀의 자살 소식... 이 모든 기사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 만으로도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충분히 심리적인 불안한 영향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때 그 판결을 내렸던 '오덕식' 판사 라는 이름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번 n번방 사건 역시도 구하라 사건을 맡았던 '오덕석' 판사가 텔레그램 성착취물을 유포한 대화명 '태평양' 16세 이모군의 재판을 맡게 된 걸로 또 한번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성범죄 오판 판사들의 성범죄 사건 배당 취소 및 금지를 청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실 나는 n번방 사건 만큼이나 소름 끼치는 불편한 경험들을 주변을 통해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주변 친구 및 지인들과 같이 소속 된 단톡방에서 누구나 한번 쯤 얘기를 해본적 있을 거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이 사건은 솔직히 말해서 애초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건이다. 일말의 논쟁이 될 만한 여지가 1도 없으며 100%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존재하는 끔찍한 성 착취 범죄 사건임에 틀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마치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공감하는 것과 같은 애매한 발언을 내뱉는 남자들이 존재 하는 것인지, 그런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내 가까이에 있는 지인이라는 것에 대한 당혹감을 겉으로 크게 티내진 않았지만 나는 적잖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그들 중 누군가 볼 수도 있을 이 글을 나름대로 허심탄회하게 용기내어 쓰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주장은 똑같았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여 싸잡아 욕하지 말아라." 라는 얘기다. 나는 이 말에 100번 양보하고 100번 동의 할 수 있다. 나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성인데 그들이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의 범죄로 인해 정상적인 남성 마저 함께 욕받이가 되는것은 억울한게 당연한 일. 암, 그렇고 말고. 그러나 왜 그들은 다소 '분노'섞인 격앙된 목소리로 얘기 하는 걸까. n번방에 대한 팩트는 인터넷 뉴스 기사를 통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26만명이라는 접속자의 숫자가 어디까지가 유료 회원인지 아닌지가 확실하지 않고 중복 회원수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쨌든 몇만 이라는 숫자라는 건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몇만이라는 숫자 또한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아역배우 김유빈 페이스북 스토리.
이 사건이 부디 모든 남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번지지 않길 정말로 바란다면, 여성에게 모든 남성을 싸잡아 욕하지 말아라. 라고 퉁명스레 말하기에 앞서서, 팩트에 대한 사실을 먼저 인정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치 여자들이 근거 없는 허황된 뇌피셜로 남성에 대한 '공포심', '불안감'을 형성 하는 것 마냥 취급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들이 성 범죄에 가담 했고 같은 남성으로써 매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라는 배려에 의한 호소가 아니라 그저 격앙된 말투로 "모든 남자 싸잡아 욕하는 여자들이 무척 짜증난다." 라는 식의 발언을 뱉는 남성들이 적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그들의 억울한 마음을 100번 이해하는 바이지만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말은 부디 우선순위를 먼저 인지 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눈치없는 소리 하지 말라'. 는 말이다. 알겠는가? 너희들이 정말로 억울하다면 여성들에게 "싸잡아 욕하지 말라."는 분노를 먼저 표출 하기 보다, 범죄에 가담한 남성들을 향해 불만을 소리 쳤어야 한다.너희들은 뭔데 멀쩡한 우리까지 잠재적 범죄자 취급 받도록 남성으로써 수치스러운 범죄를 저질렀느냐. 라고 분노 하는 게 먼저 옳은게 아닐까.
"전에 그런 트윗을 본 적이 있다. 남자가 전부 그런 건 아니니 걱정 말라고. 그럼 지뢰밭을 걸어가봐라.
전부 지뢰가 있는 건 아니니까 안심해라"
너무나 비유 적절한 표현이라, 전에 저장해뒀던 짤이다. 어느 책에 쓰인 글인지에 대해서는 정보는 없다. 그저 인터넷에 떠돌던 이 사진을 우연히 보았고 세상에! 이만한 적절한 비유가 또 있을까 싶어 저장해뒀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조금이라도 이해 할 수 있을까?
자, 그럼 이제 좀 더 유치한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다. 이 외에 또 다른 이의를 제기한 남성의 주장을 언급해 보려 한다. 뭐 이제는 설마 그런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초반에 n번방을 단순 '야동' 혹은 '포르노'와 비교해서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분명히 있었다. 물론 n번방에 대한 정확한 사실 이해 없이 초반에 그런 생각을 했던 남성들이 다소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없겠지. 라고 부---디 믿어본다. 애초에 포르노 배우가 등장하는 것과 성 착취 영상은 성격 자체가 다른 것이다. 돈을 받고 영상 촬영에 대한 사실 합의 후 제작 된 성인물과,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수준의 협박과 폭력으로 얻어낸 영상을 어찌 같은 선상에 두고 볼 수가 있다는 얘긴지.
그리고 어떤 커뮤니티에서 유연히 보게 된 게시물인데
"피해 여성들이 성매매를 목적으로 n번방에 접근했다면 피해자가 결국 피해자가 아닌 것 아닌가요.?"
벌써부터 여기에 대해 얘기 하려니 왠지 숨이 턱 막힌다. 어떻게 이렇게도 답답할 수가 있을까. '성매매'는 그것 따로의 문제이고 'n번방 성착취' 사건과 별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설사 피해 여성중 누군가 성매매를 목적으로 n번방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접근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여성에게 가한 범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였다면 그에 따른 처벌은 나중에 별개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거다. 성매매로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서 피해 여성들이 살해협박 받은 사실에 대해 입을 함구 하거나 숨기는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그 피해 여성들은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영상촬영을 스스로 찍을 것을 협박 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며, 칼로 몸에 글씨를 세기는 등의 위협적인 영상을 찍게 될 걸 예상하고 그 댓가로 돈을 벌기 위해 n번방에 접근했다는 말인가? 고액 스폰 및 알바 권유로 여성들을 유린했고 물론 그 제안에 동의 하고 접근한 피해 여성들의 어리석었던 판단도 지적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은 범죄의 본질적 처벌을 먼저 해결 하고 나서 비난 해 볼 문제다. 그래서 애초에 제시 했던 고액 스폰 거래가 이루어 졌냐는 말이다. 그래서 그 영상을 찍은 댓가로 돈을 지불 받은 여성이 있는가?
제발 더이상 말이 되지 않는 웃기는 소리로 피해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것으로 몰아가는 몰상식한 말을 뱉는 남자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피해자가 성매매를 하려는 목적이었으면 피해자가 피해자 아닌 것 아니냐?" 라는 말은 또 다른 말로, 매춘녀는 강간 당하고 살해 당해도 매춘녀이기에 피해자가 될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 시 할 수도 있다. 사실 애초에 성매매의 '공급'과 '수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이렇게 여성 혐오적인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들이 늘 크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성매매녀 혹은 매춘녀 또한 성폭행을 당할 수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n번방 사건은 '매매'도 아닐뿐더러 100% 일방적인 성착취, 성범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피해자가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무엇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가해자가 저렇게 된 이유가 뭔가 있었겠지." 라는 발언을 내뱉은 누군가의 말에도 답변 하자면 그래, 단순 범죄의 목적과 범죄자의 심리, 범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의 표현 방식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정말 범죄자의 심리가 궁금해서 분석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저런 강력 범죄자들은 어떻게 생겨나는걸까?"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것이다. 저렇게 된 이유가 있겠지 라는 발언은 누군가가 듣기에는 간접적으로 범죄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것 처럼 충분히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눈치 없는 발언을 꼭 해야만 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했다면 혼자 인터넷을 서칭 해보던지. 굳이 n번방에 대한 예민한 논쟁이 오가는 상황속에서 저런 말을 뱉었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가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저 눈치가 없고 할말 못할 말 구분 하지 못한다고 밖에 더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다. 논쟁에 대한 회피성 발언이었다고 할지라도 이미 담을 수 없는 말 실수를 뱉어버렸다.
범죄에는 결코 타당한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 뭔가 이유가 있었다고 한들 그걸 이해해 줘야 할 가치도 없다. 그렇게 가해자인 남성의 편에 서서 쉴드 치고자 하는 공감능력이 있다면 왜 먼저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는 공감해 주지 않는가? 그게 그들이 말하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고 판단 방식인가? 이것이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이성적인 논리' 라 주장하며 n번방 엄벌을 반대하여 논란을 빚은 랩퍼 '심바 자와디' 인스타 스토리.
꽤 몇년전에 구매했던 책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서점에서 무심코 이 책을 발견하고 구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예술가, 창작가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사실 그 보다 '예술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예술가들이 흔히 직면하는 두려움, 그들이 작업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많은 불안과 혼란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조언해준다. 창작을 하는 사람,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냉정히 현실세계를 알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위로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모든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말에서 '창작'과 '예술'이 얼마나 평범한 이들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인지를... 느낄수가 있다.
한때 예술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 이제 막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 속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 예술을 가르치는 교육자들, 예술을 소비하는 관람객 및 대중들. 그 누가 읽게 되든, 이 책은 각자의 생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작게 나마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내가 살아 가고자 하는 방식, 열심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로 그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하지만 절대로 압박 받진 않되, 그저 지향하는 것' 이라 정했던 내 나름의 인생의 주제의식에도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생산적으로 살아감 그 자체가 곧=인생을 창작하는 것이기에.
기억에 남는 글들을 대략 발췌해서 아래에 적어 놓았는데 그중에서도 51p 완벽이라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는 질을 추구하기 위해 골똘이 고민하고 투자하는 시간과 그저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많은 창작과 습작을 시도했을 때 어느 쪽에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까. 라는 실험에 대한 내용이다. 결국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고민하고 전략을 짜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행동들이 가끔은 그저 거침없이 행동으로 추진했을 때 보다 어쩌면 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후 창작한 그룹보다 단순히 최대한 많은 작업물을 만들도록 지시했던 그룹에서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결과물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지나치게 '완벽'이라는 것을 추구하고 그 생각의 틀에 갇히게 되면 오히려 때로는 그것이 창작의 효율을 저하 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그저 행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주어지고 방법이 나타 난다는 것. 어디서 우연히 들었는데 게으른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단순 의지박약으로 게으른 것이 아니라 '완벽할 수 없다면 아예 시도 조차 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는 매우 엄격한, 혹은 겁 많은 게으름쟁이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면 어설프고 실수 남발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는게 너무 두려워 늘 외면하고 회피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므로... 여러모로 공감 가는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책은 아마 그런 마인드의 창작자들에게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뭐, 창작자 뿐만이 아니라 그 누가 됐던.
"예술가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천상의 것도 아니고 영웅적인 것도 아닌, 흔하고 익숙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천재가 아닌 바로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
"예술가들은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의 고통을 넘어서야만 작업에 임하는 법이다. "
16p 예술적 재능은 학습될 수 있다. '기교'는 배울 수 있는 반면에 '예술'은 신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마법같은 선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지않다. 크게 보았을 때 예술가가 되는것은 자신을 감수하는 법을 배워 자신의 작품에 개성을 싣는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따름으로써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분명히 이러한 특성들은 학습이 가능하다. 결국 재능이라는 것도 불굴의 인내나 노력과 다른 이름이 아닌 것이다.
17p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술은 장점만을지닌 인간들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결점 없는 존재는 예술을 할 필요도 없다. 이상적인 예술가는 이론상 절대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19p
예술작업은 다소 외롭고 보람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사실, 예술가 대부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품을 창조해 내는데에
자신들 시간의 일부를 (어떤 예술가들은 전부를) 쓰고있다.
예술 세계에서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반응의 결핍을 낭만화 하려고 느낄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이는 낭만적일지는 모르지만 잘못된 방식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냉혹한 진실이다.
사람들이 한 예술가의 작품 대부분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34p 예술 창조는 불확실 하며 예측할수 없는 과정으로, 불확실성은 예술 창조 욕구의 본질을 이루고 불가피하며 절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51p 훌륭한 작품은 완벽한 작품이 아니다. 완벽 그 자체가 역설적으로 결점 있는 개념
51p 완벽이라는 함정.
52p 훌륭한 작품을 완벽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에도 오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72p 예술가가 빠지게 될 딜레마는 명백하다. 즉 새로운 세계를 개척함에 따르는 대중의 거부반응의 위험을 감수하던가, 아니면 이미 다져진 길을 따름으로 인정을 구걸하던가 하는 것이다. 인정받는것이 목표인 경우에는 두번째 전략을 택하는 것이 압도적이다. 예술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라. 그러면 인정은 자동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길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그 길을 택하게 되면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위험보다도 미래를 위하여 어떤 새로운 것도 남겨놓지 못할 것이라는 위험이 더 커진다.